크래커
요즘은 크랙도 하지 않고 해킹도 하지 않지만 한때 나우누리 파워유저 그룹(PUG)에 올라오는 윈도우용 크랙 프로그램은 모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던 적이 있다. 해킹도 관심이 많아서 하이텔을 해킹한 적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사용할 수 있는 하이텔 ID가 상당히 많았다. 로그인 기록을 보고 암호를 바꾸면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식이었고 유료 서비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PC 통신과 텔넷
도스 시절 절대 강자였던 이야기를 물리친 프로그램은 의외로 새롬 데이타맨(Dataman Pro)이라는 상당히 간단한 프로그램이었다. 이야기처럼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윈도우에서 실행되는 PC 통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무주공산의 윈도우 시장을 쉽게 석권할 수 있었다. 새롬 데이타맨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전화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텔넷(Telnet)도 지원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화를 이용해서 모뎀으로 하이텔에 접속했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학교에서 LAN이 됐기 때문에 더 이상 하이텔을 전화로 접속할 필요가 없었다. 텔넷이라고 하면 유명한 프로그램으로 Netterm이 있었다. 영문 프로그램이지만 나름대로 한글도 잘 지원하고 터미널 모드도 나름대로 잘 지원하는 프로그램[1]이었다. 따라서 보통 텔넷을 사용할 때는 Netterm을 주로 사용했다.
새롬 데이타맨
'새롬 데이타맨'를 이용하는 때는 텔넷을 이용해서 PC 통신을 할 때가 유일했다. 새롬 데이타맨 프로에서는 PC 통신에도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통신사별 즐겨찾기가 가능해서 자주 가는 사이트는 이 즐겨찾기를 이용해서 바로 접속할 수 있다.
새롬 기술을 유명하게 만든 새롬 데이타맨. 기능적으로 뛰어난 부분은 없지만 갈무리, 책갈피, 모뎀 관련 기능등 PC 통신에 적합한 기능 때문에 무주공산의 윈도우 시장을 쉽게 공략했다.
당시 나우누리[2], 천리안[3]은 모두 텔넷 포트를 제공했다. 그러나 하이텔만 상당히 늦게까지 공식적인 텔넷 포트를 제공하지 않았다. 따라서 하이텔 사용자 중 상당수는 PC 통신은 전화로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렇다 보니 하이텔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도 있다. 물론 내 생각에는 재미있지만 당하는 당사자는 알았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크래커
요즘은 크랙도 하지 않고 해킹도 하지 않지만 한때 나우누리 파워유저 그룹(PUG)에 올라오는 윈도우용 크랙 프로그램은 모두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던 적이 있다. 해킹도 관심이 많아서 하이텔을 해킹한 적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사용할 수 있는 하이텔 ID가 상당히 많았다. 로그인 기록을 보고 암호를 바꾸면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식이었고 유료 서비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4].
하루는 하이텔 말방[5]에 갔을 때 일이다. 나우누리는 자기소개에서 서너줄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ANSI를 이용해서 화면을 쪼개고 나오면서 소개가 출력되게 만들어 두었다. 그러나 하이텔은 자기 소개를 한줄 밖에 쓸 수 없기 때문에 PF 명령으로 소개를 보면 '화면을 검은 먹통으로 만드는 ANSI 코드'를 심어 두었다. 또 별명에는 영어로 전환하는 ANSI 코드까지 심어 두었기 때문에 보통 나랑 채팅을 하면 골탕을 먹는 사람이 많았다.
추억의 말방
그 날도 말방에 모르는 아가씨가 접속했다. 그래서 간단히 소개를 하며 절대 "PF로 내 소개를 보지 말라"고 알려 주었다. 잠시 뒤...
"XXX님이 방을 나가셨습니다"
아마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다. 절대 보지 말라고 했는데 궁금해서 PF 명령으로 내소개를 본 뒤 화면이 먹통이 되자 할 수 없이 이야기를 종료한 것[6]으로 보였다. 보지 말라고 한 것을 보고 통장이 된 그 아가씨는 잔뜩 열이 받아 있었다. PC 통신상에서 흔하게 있는 장난이지만 이런 장난이 아주 못마땅한 듯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뒤로는 나와는 아예 대화를 하지 않았다.
당시 하이텔 대화방은 100개까지 밖에 개설하지 못했다[7]. 하이텔 사용자 수를 생각하면 방의 수가 너무 적었고 따라서 방을 하나 만든다는 것은 보통 실력이 아니면 힘들었다.
말방에서 방을 만드는 멤버는 몇명이 있는데 그 중 한명은 희명이라는 주부였다. 하이텔 단말기를 사용하는데 타자가 워낙 빨라서 방이 깨지면 항상 제일 먼저 방을 만들었다. 두번째는 나였다. 나야 타이핑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방만드는 스크립트를 짜두었기 때문에 방이 깨지거나 새로 만들 때는 스크립트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따라서 스크립트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 보다는 확실히 빨리 만들었다.
역시 방을 만들었다. 암호는 말방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ANSI 코드 때문에 골탕을 먹은 주희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와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텔넷으로 접속하기 때문에 "새롬 데이타맨을 하나 더 뛰우고 텔넷으로 접속하면 한명 이상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실행했다. 어차피 로그인할 수 있는 ID는 여러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ID로 로그인한 뒤 말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마치 다른 사람인 듯 주희에게 인사했다.
도아B:"안녕하세요? 저는 XXX라고 합니다."
도아B:"말방에서 주희씨는 처음 보는 것 같군요?"
대화할 상대가 없던 주희는 내게 바로 귓속말을 날렸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 일반적인 대화도 있지만 나에 대한 비난이 주를 이뤘다.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가씨는 나에 대한 욕을 다른 사람에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다른 ID로 가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날렸다.
도아A:"야. 니들 잠수타니?"
도아A:"왜 귀가 가렵지? 누가 욕하나?"주희:"그래도 지욕하는 줄은 아는 모양이지?"
도아B:"저 양반이 주희씨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나 보군요?"
지금 생각하면 한 때 추억이다. 다만 ANSI를 이용한 장난도 통하지 않을 만큼 당시 PC 통신은 상당히 예의가 있었다. 막말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대화방에서 "어삽솨"와 같은 통신체를 사용하기는 해도 지금 인터넷 보다는 예의있고 배려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Netterm을 사용하다 결국은 CRT로 바꾼다. 그 이유는 터미널 모드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당시 CRT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
- 나우누리 초장기 멤버로 하이텔에 "나우누리가 하이텔 보다 좋은 점 100가지"와 같은 글도 올렸다. 그러나 나우누리의 부당요금과 이에 답하는 상담원의 무개념 때문에 결국은 해지했다. ↩
- 전화요금 외에 사용료를 내야하는 천리안은 자료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 천리안을 몇년간 무료로 사용했다. ↩
- 아마 유료 서비스를 사용했다면 이자리에 있지 못했을 수도 있다. ↩
- 말띠이기 때문에 하이텔 말사랑, 말방, 삼동등에서 놀았다. ↩
-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ANSI로 화면이 먹통이 되면 Ctrl-F8을 누르면 복구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
- 후에 200개로 늘기는 하지만 사용자 수를 생각하면 여전히 부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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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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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 2009/03/03 18:48
그 때는 아직 인터넷 통신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고 해야될까요. 지금보다 소규모였으니까요.
반면 지금은 인터넷 자체가 하나의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에서 보여지는 그러한 '몰상식'한 현상들도 나타나는 거라고 봐요.
그건 그렇고, 저 때는 학교 공지사항 확인하는 정도로만 통신을 이용해서, 저런 말방 같은 개념은 몰랐었죠. 알았다면 참 재밌었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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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늘 2009/03/03 19:12
정말 추억의 프로그램이네요 ㅋ 저도 정말 많이 사용했던 프로그램인데,,,
저도 도아님 처럼 새롬데이터맨으로 텔넷을 이용했었습니다. 비슷한 장난(?)도 쳐 보았구요 ㅋ
불과 10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한 것 같습니다.
정보 통신 문화도 그렇구요.
통신윤리 문제에 있어서 학교에서의 교육도 충분히 잘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엔스 2009/03/03 19:18
새롬 데이터맨 기억이 남니다.
저도 오랫동안 천리안을 거의 10년 동안 유료사용자로 사용했었는데..
처음 사용 때부터 학교 컴퓨터 실에서..
전화가 아닌 telnet 으로 접속해서 밤새 채팅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집에는 모뎀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없었기에.. ^^;
그래도 무사히 졸업은 했습니다. :) -
화이팅 2009/03/03 20:04
텍스트뷰어로도 괜찮지 않았나요?
21세기가 되면서 점점 채팅공간이 이상해지더군요.
2000~2001년까지만 해도 그나마 어느정도는 괜찮았는데,
그 이후로는 채팅을 위한 채팅은 관두고,
irc에서 아는 사람들 하고만 놀다가 완전히 접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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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주 2009/03/03 21:05
제가 인터넷을 알았을때 거의 PC통신 막바지 였었습니다. 21세기니깐요. 그때 하나로통신을 설치하면 천리안이 무료였는데 그것도 얼마 못가 서비스가 종료 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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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연 2009/03/03 22:25
아...새롭네요...우연히 들렸는데...저도 ANSI 로 여러가지 저장해 놓고 써 먹곤 했었는데...예전에 천리안 안시나라동호회 시삽이였습니다...초대 시삽형은 지금 뭐 하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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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ister 2009/03/04 00:09
이거 '추억'시리즈에만 댓글 다는 듯 합니다...^^
저는 좀 색다른 걸 해봤죠.
학교 전산실 서버가 VAX였는데, 터미널을 이용해서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94년? 95년?) 노트북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로 터미널 대신 연결해보려고 COM port 연결부분의 배선을 바꿔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노트북에 랜포트가 없었거든요. -
최면 2009/03/04 00:04
저는 채팅이랑 머드 게임하느라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가출을;;
저 결국 다시 텍스트큐브로 돌아왔습니다. ㅎㅎ 텍큐 쓰다보니 티스토리 못쓰겠더라고요.. 아직은 그냥 1.7.6 정식판으로 돌릴려고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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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2009/03/04 01:42
마지막 말씀이 공감이 가네요. 그러고 보니 21세기 들면서는 아예 공개 채팅을 접은 거 같네요. 하이텔(아니면 케텔?) 채팅방에서 폭탄 놀이하던 때가 그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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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2009/03/04 07:26
예전의 추억글을 써주셨네요 ㅎ,.ㅎ;;;
하이텔 공개 채팅방 기억 나실려나요 ??
거기 항상 1번과 2번 쟁탈전이 한참 많았지요...
그곳에 보면 1번은 한상 이야기님이 했었고...
2번은 컴사모 분들이 많이 했지요 (거진 24시간 풀 채팅이였으니까요...)
그러다 1번 쟁탈한 기쁨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기억도 납니다...
( 제가 컴사모 회원이였습니다... )
하이텔 IUG(인터넷 동호회) 초창기 시삽이였던 당균쓰는 어케 지내나 모르것구...
풀뿌리 동호회 회원 이셨던 최오길 형님도 요샌 모하는가 몰것네요 ㅎ,.ㅎ;;;
( 칸타타 카페에서 놀고 풀뿌리 동호회 MT 간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도었네요 ㅠ,.ㅠ )
한사모 회원이셨던 정한형 Mdir 하다 경제적인 여건으로 아예 이길을 떠났다고 하구
바람둥이(??) 우혁형님은 따로 홈피를 만들구...
( 그 형님 이제 날 알려나 몰러 예전에 술도 같이 하고 했는데... )
평거회 샤다이님은 현재 PD님은 현재 PD 라고 하죠 ㅎ,.ㅎ;;;
새싹, 피카, 빛고을, 난초에, 두리하나, 시사랑, 윈도우, 오스크, 등등...
( 아는 사람들 많은데 여기까지만 쓸랍니다 ㅎ,.ㅎ;;; )
아직도 나의 아련한 글들이 제 파란 블로그에 남아있어요...
( 그거 정리하고 있는데 너무 많아서링 천천히 하고 있답니다 ^,.^;;; )
암튼 이 글을 보고 방가와서 그냥 주저리 주저리 쓰네요...
새롬 이 좋기는 하지만... 이야기 처럼 SSH 가 안되서링...
텔넷으로 접속해서 유닉스 명령으로 다른 서버를 접속하지요
그럼 잘 되더라구요 ㅎ;;;
잘 보고 갑니다 ^,.^;/
참 그때 제 아이디는 kwondoh 였고 닉네임은 예나 지금이나 나그네 랍니다 ^,.^;/
( 여기서 날 아실려는분이 있나 몰러;;; )-
도아 2009/03/04 08:54
많이 적으셨군요. 하이텔 공개방 쟁탈전은 워낙 유명했죠. 보통 방이 깨져야 1번과 2번을 차지하니까요. 말방 회원중 하이텔 직원이 있어서 일부러 방을 깨고 몇번 시도했는데 역시 1, 2번은 힘들었습니다.
저는 주로 OSC 동호회에 많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모임은 삼동과 말사랑에서 했습니다. 빛고을은 제가 전라도 출신이라 가입했었지만 활동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95년 경에 PC 통신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제가 올린 글을 저도 백업하고 싶지만 이제는 방법이 없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이야기에서 텔넷이 됐었나요? 저는 6.x대까지 쓰고 7.x대는 거의 사용을 안했습니다. 이때는 모두 텔넷으로만 접속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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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키드 2012/07/30 13:43
그 방법은 대부분 하이텔 채팅방 개설 당시에,
o 으로 개설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숨김 명령어로
o 1 하면 무조건 1번방이 개설되었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스파이로 쳐들어가서 1번방을 빼앗기는 등등... 대화방 연결 명령어로 1번과 2번을 다 합친 기억이 새록새록하는군요
저도 컴사모회원중 하나였지만, 아뒤는 기억나실라나요..
김종한(jonghan) 지금은 어디서 뭘할지 내 그딴 알바 아닙니다. 사기사장아래에서 뼈아프게 고생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최형숙(형남), 이종오, 김숭기(맑음), 장준채, 서경수(sks9028, 현재 고인이 되심), 등등.. 많은 사람이 저를 만나고 사라지셨거든요.
평거회 말고 TE31 호기심해결방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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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양 2009/03/04 08:26
아련한 기억들이네요..ㅎㅎ
1M짜리 야사한장 다운 받으려면 30분은 기다렸던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사이 전화 요금이..ㄷㄷㄷ -
미르~* 2009/03/04 08:57
전 새롬데이터맨 세대였죠..
통신을 대학교 기숙사 텔넷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는 그저 '구시대의 유물' 이었을 뿐..;;
그 당시에 Quake2 라는 게임에 빠져살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당시에는 최고의 3D기술이 집약된 게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 스타하는 동안 전 Quake2 멀티플레이에 푹~ 빠져살았죠~ :) -
dawnsea 2009/03/04 09:22
새롬 이후에 저는 토큰2라고 썼는데..
지금도 씁니다 -_-;
일의 특성상 시리얼 터미널을 자주 쓰는데 이만한 놈이 없어요..
헥사 덤프도 되고.. -_- -
구차니 2009/03/04 10:08
터미널로는 저는 putty를 사용하고 있답니다. 저번 버전부터 시리얼까지 포함되서(기존에는 별도 프로그램) ssh/telnet/시리얼 용으로 편하게 쓰고 있답니다. sftp가 지원되지 않아 아쉽지만, winscp로 사용하니 편하더라구요. 친구녀석은 xshell을 추천하던데 putty가 더 가벼워 putty만 사용중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전 중학교 때 부터 천리안을 사용하다가(아부지 회사 아이디) 고등학교 와서 제 아이디를 하나 개설했었답니다. SLIP으로 하다가 PPP로 바뀌면서 인터넷을 지원하는 천리안 접속 프로그램이 나오고 그러면서 인터넷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때 뜨게 된 녀석을이 세이클럽, 스카이러브였죠. 확실히 천리안 자체 대화방들 보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네티켓이 없어서 금세 질리게 되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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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tian 2009/03/04 13:18
휴..그 당시 사설 BBS까지 운영했던 저로서는 남의 얘기 같지 않습니다. 전화선 한 포트늘리는데 초기비용으로 30여만원인가 들었으니까 10포트를 유지하는것은 대단한 것이었죠..
그러다 집단 전화국이 들어가 있는 오피스텔에서는 초기비용이 안든다는 걸 알고 사무실을 오피스텔로 옮겨 100회선을 따서 오픈하고, 리눅스서버에서 운영되던 TT선서비스(T1라인 두개를 물려, 이용자에게 전용전화선인 TT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해주면, 전화요금부담없이 TT선의 월 고정액만 지불하고 인터넷을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를 시작하면서 IT업계에 본격진출한 셈입니다..^^;;
TT선을 이용한 인터넷 무제한 서비스는 참 좋은 아이템이었는데, 한국에 너무 빨리 ADSL이 보급되었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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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라기 2009/03/05 23:42
한 번은 제가 하이텔, 유니텔 사용자이기에 어떤 사람과 천리안, 나우누리 쪽 아이디 체인지를 즉, 서로의 PC통신사 아이디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유용한 PC통신을 즐겼는데......
아이디 공유한 사람이 제 아이디로 PC통신사 여러 게시판에 독일 등 외국에서 보따리 해온 수면제 같은 약을 판 겁니다.
각각의 PC통신사 모니터요원에 걸렸고(개인이 신고했을 수도) 이것이 정식으로 식약청에 접수되어 제가 사는 관할 경찰서에 호출되어 용의자로 조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제가 범인이 아니기 때문에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요. 아뿔싸, 아이디 공유한 사람이 이름도 저와 아주 비슷해서(그 때 까지도 몰랐다는) 형제 또는 사촌 정도로 비춰질만큼,,, 아주 진땀 뺐습니다.
다행히 혐의를 벗어서 바로 풀려났지만 그 때 기억하면 지금도... 휴우...
"오해 받을 짓 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얻었습니다. 또한,, 쓸데없이 약장사 해도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하하하~
당시에 저는 새롬데이터맨, 95나 NT(4.0)의 보조프로그램인 하이퍼터미널을 병행 사용했습니다. 도아님과 여러분이 언급하신 넷텀, CRT 같은 프로그램은 명성은 알고 있었지만 사용은 못했고요.(수퍼세션도...) -
어린나무 2009/03/10 00:16
추억프로그램 이야기에만 글을 다네요
케텔부터 썼습니다..천리안, 나우누리 다 써봤구요.
채팅방 들어가면 몇개 남았나 세어보곤 했지요.
osc 동호회는 기억납니다..
블로그에 댓글 달지 않는 성격인데 늙었나 봅니다..죄송 겨우 말띠인데.. -
인디^^ 2009/03/11 22:04
이야기에서 새롬데이타맨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것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야기에서 "지란지교..."를 거쳐서 "데이타맨"으로 넘어갔죠.
참~ 정감가는 이름도 좋았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접속이 안정적이고 다운속도도 빠르고 안정적이란 점이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밀 수 있는 기능도 몇 있었구요....
제 기억으로는, 윈도 3.1 끝물에 나와서 윈도95 시절에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한 1~2년 반짝하고는 새롬 데이타맨에 밀려서 시들해졌던 것 같군요. -
사노라면 2009/03/14 17:56
희명이 선아 상훈이 정말 낯이 익은 이름인데..
이리저리 서핑하다가 이렇게 찾게 되네... 그냥 잘 사는지..기억은 하는지.
말방이라는 이야기와 희명이 - 미장원을 하였지 아마 나중에 - 이야기가 나와서 지나가다 한마디.. 영문윈도우에서 한글되는 텔넷찾다가 - 물론 토큰2를 찾았지만 이건 화면이 이상하게 나오네 - 이렇게 지나가다 들름... 말방..정말 오래 간만에 들어보는 이야기.. 나도 연구소에 있었을 적이니깐 맨날 텔넷으로 들어가고 그랬는데.. 그때 당시 아이들 참 열심히 통신 했던것 같아.. 지금보다 더 불편하고 그랬음에도 불구 하고 그속에서는 믿을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 지금은 반대지만 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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