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말살형
로마에는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라는 형벌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기록 말살형' 정도로 번역된다. 이 기록 말살형에 처해지면 다음과 같은 조치가 취해진다. 1. 유죄 판결을 받은 황제의 조상은 모두 파괴, 2. 모든 공식 기록, 비문, 통화에서 당사자의 이름을 삭제, 3. 그 황제의 자손은 대대로 '임페라토르'를 사용할 권리를 박탈, 4. 황제의 치세 중에 이루어진 잠정조치는 모두 폐기. 쉬운 이야기로 '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 모든 기록과 흔적을 지워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 버리는 조치이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치고 이 보다 중한 형벌은 없다.
미실과 마야 부인의 예언
지난 주 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의 '진짜 여왕'이었던 미실이 죽었다. 상당히 인기를 끈 드라마이며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축이 미실이지만 '미실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미실이 등장하는 서책은 화랑세기이다. 화랑세기는 신라시대 김대문이 지은 풍월주(화랑의 우두머리)에 대한 기록으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전해 진다. 선덕여왕의 모티브가 된 '화랑세기'는 박창화가 일본 왕가의 보물 창고인 정창원에서 발견, 필사했다는 화랑세기 필사본이다. 아직까지 진위여부가 불확실한 책이며 따라서 미실은 아직까지 역사적인 인물로 받아드려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사실은 두번째 치더라도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은 정말 매력있는 캐릭터이다. 일단 역대 역사 드라마에 나온 어떤 인물보다 카리스마 넘친다. 전략적 사고 역시 뛰어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있어야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정한 우파였다. 지난 주 미실이 죽었다. 그러나 이 미실의 죽음에 통쾌해 하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악마처럼 잔인해 보인 미실이지만 '그녀의 죽음은 진정한 왕으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지난 주 덕만은 미실에게 합종을 제안한다. 그러나 미실은 "네가 뭘 아느냐, 사다함을 연모했던 마음으로 신국을 연모했다. 연모하기에 갖고 싶었을 뿐이다. 합종? 연합? 덕만 너는 연모를 나눌 수 있더냐"라며 덕만의 합종을 거절한다. 그리고 덕만과 미실은 내전에 돌입한다. 이때 속함성을 지키던 여길찬의 부대가 대야성으로 향하고 이어 백제가 속함성을 침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실은 내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여길찬의 부대를 국경으로 돌려 보낸다.
백성을 수탈의 대상으로 보고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를 구분하는 미실이지만 미실에게 권력은 국가통치를 위한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미실이 여길찬을 돌려 보낸 이유도 '권력 이전에 국가가 있다'는 것. 즉, 국가가 있어야 그 권력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발상은 지극히 우파적인 발상이다[1].
아무튼 덕만의 최대 정적이었던 미실은 드라마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미실역의 고현정의 말처럼 이제 사람들의 회상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로 바뀌었다. 그러면 몇대에 걸처 신국을 좌지우지하며 국정을 농단한 미실에게는 어떤 형벌이 적당할까? 이번 주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역사적 사실인 '칠숙의 난'으로 마무리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만을 기초로 하면 이제 남은 것은 비담의 난뿐인 셈이다.
그러나 선덕여왕에는 이 미실에 대한 또 하나의 복선이 있다. 다음은 천명공주가 죽자 마야부인이 미실에게 저주을 퍼붓는 장면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본 장면이고 마야부인의 연기가 압권인 장면이다.
마야부인의 예언
흔적도 없이 죽으리라!!! 역사는 네년의 이름은 단 한글자도 남지 않으리라~~~
로마에는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라는 형벌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기록 말살형 정도로 번역된다. 이 기록 말살형에 처해지면 다음과 같은 조치가 취해진다.
- 유죄 판결을 받은 황제의 조상은 모두 파괴
- 모든 공식 기록, 비문, 통화에서 당사자의 이름을 삭제
- 그 황제의 자손은 대대로 '임페라토르'를 사용할 권리를 박탈
- 황제의 치세 중에 이루어진 잠정조치는 모두 폐기
쉬운 이야기로 '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 모든 기록과 흔적을 지워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 버리는 조치이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치고 이 보다 중한 형벌은 없다.
흔적도 없이 죽으리라!!! 역사는 네년의 이름은 단 한글자도 남지 않으리라~~~
이 것은 단순히 마야부인의 저주가 아니다. '평생을 권력과 명예를 위해 살았던 미실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아울러 선덕여왕의 모태가 된 화랑세기와 이 화랑세기 이외에 미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전혀 없는 것에 대한 드라마 선덕여왕의 복선인 셈이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인재를 모두 수용하며 미실에게는 가장 중한 죄를 물은 셈이다.
역사와 다른 점[출처]
- 진흥왕은 43세로 사망하였으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진흥왕은 76세의 원로배우 이순재가 희끗희끗한 모습으로 연기하였다.
- 진평왕의 뒤를 이은 선덕여왕은 실제로는 진평왕의 맏딸이며 천명공주는 둘째 딸이나, 드라마에서는 이와 반대로 천명공주가 맏딸, 덕만공주가 둘째 딸이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이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따른 것이다) 더불어 서로는 쌍둥이라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는 서동 설화에서 진평왕의 셋째 딸이라고 알려진 선화공주나 세속오계를 지은 승려 원광 등의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 태종무열왕의 아버지는 김용춘인데, 드라마에서는 김용춘의 형 김용수(화랑세기에만 등장)의 아들로 되어 있다. 이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따른 것이다.
- 드라마에서는 미실이 왕위에 오르기 위해 칠숙, 석품과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픽션이다. 실제 역사서에는 칠숙, 석품이 주도하여 진평왕 말기에 난을 일으켰다는 점만 기록되어 있다.
남은 이야기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교역을 금지하는 중국 제후를 만난다. 사형의 위기에 처한 덕만은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는 자는 황제가 될 자격도 없다
고 한다. 로마와의 교역도 있고 함께 동행한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이라는 설정이겠지만 이 이야기는 로마의 5현제 중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일화이다. 시민이 청을 하기위해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다가가자 황제는 "시간이 없다"며 지나친다. 그러자 이 여인은 "그러면 당신을 통치할 자격이 없습니다"라면 받는다. 따라서 선덕여왕의 작가는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를 비롯 상당히 많은 로마의 고사를 참조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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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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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돌이 2009/11/17 09:36
지금 쥐박이 정권이 모든 정책을 노무현 대통령과 반대로 펼치고 4대강에 올인하는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지요. 능력도 안되는 것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분의 업적을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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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예쁘게 쓰고 싶어.. 2009/11/17 09:41
잘 읽었습니다. 명예욕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 정말 잔인한 형벌이군요.
기록 말살형이라고 하니, 순간 이집트의 그 여왕이 생각나는군요.
이집트식 이름에 익숙하지 못해서 기억못해서 적지 못하지만...
왕비였지만 아들 대신하여 후견인으로 나섰지만 나중에 가서 왕자를 누르고 여왕이 되어..
아니 남장을 함으로써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고 해요. 문화도 발전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암튼 억누르며 살아갔던 왕자가 왕이 되자마자 그 여왕이 남긴 흔적들을 모두 지우느라 애썼다고 해요.
그 여왕이 한 일이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들을때마다 왕자가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찬란한 문화재로 꽃피우고 있었을까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담나티오 메모리아이'라는 형벌..정말 무섭군요...동시에 자기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자기 이익만 탐하는 권력자에게 효과적인 형벌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
파리꼬뮌 2009/11/17 10:03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가 중국 원나라의 자문 역활을 할때 비리에 연류된 왕의 인척을 처벌하는데 공헌을 했는데 그 처벌을 받게 되는 자가 마르코 폴로에게 결코 역사에 기록게 하지 않으리라 저주를 퍼부었다죠.
역시 마르코 폴로는 중국 역사에는 기록이 빠져 있다더군요.
제 생각으로는 미실은 드라마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진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 진평왕이 강력한 왕권을 가진 왕으로 보여 지고, ...
미실 역시 유신과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준것 같고....
역사서가 많이 부족해서 이래저래 복잡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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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벌레 2009/11/17 11:09
생각할수록 잔인한 형벌이군요...
작가들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드라마가 아닌가 합니다.
구성도 치밀하구요.. 요렇게 이야기구조가 짜임새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인데요.
참 재밌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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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대유 2009/11/17 15:45
왕권시대에 미실정도면 성군은 아니더라도 폭군이나 무능한 왕은 절대 아니거라고 봅니다
왕권시대의 공포정치는 당연한거고 국내안정과 타국과의 관계에서도 밀릴것이 없었다면 왕자격 충분한거죠
진정 우파의 모습인데 우리시대의 우파는 매국과 비슷해지는 요즘 진짜 우파의 모습을 보여준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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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c/SALM 2009/11/17 18:39
흠... 역사적 오류에 대해 하나 더 추가하죠.
드라마에서 덕만(선덕여왕)이 지나치게 젊게 나옵니다. 천명과 덕만이 임술년생이라면 602년생이 됩니다. 문제는 천명의 아들 김춘추가 태어난 해입니다. ㅡㅡ; 603년에 태어났죠. ㅡㅡ; 어머니와 아들의 나이 차가 한 살밖에 안 되죠.
애초에 덕만을 20대에서 30대에 무렵에 왕위에 올리려다 보니 저런 문제가 생겼죠. 역사 속에서 덕만은 성골 남자가 없어서 40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왕위에 오릅니다. -
koc/SALM 2009/11/17 19:00
왕조시대에 현군/폭군/암군의 차이는 그저 나라를 어떻게 했느냐의 차이와 신하와 반대파가 그를 어떻게 평가했느냐의 차이뿐입니다. 다만 그들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독재자입니다. (심지어 세종대왕도 현대를 기준으로 말하면 독재자입니다.)
나라를 잘 발전시키고 신하를 잘 다스리면 현군입니다.
나라를 발전시킨 것과는 별개로 국가 정책을 폭압적으로 행하거나 왕을 위해서만 행할 때 폭군이라 불립니다. 또한 왕의 통치와는 상관없이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명분으로 삼아 왕을 폭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냥 어리석은 왕은 암군이라고 부릅니다.
다만 이러한 평가는 그 군주의 치적이나 통치 행위와는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예컨대 조선 세조는 많은 치적이 있지만 그 통치 행위는 폭압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를 현군으로 평가합니다. 조선 선조는 무능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역사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까댈 만큼 무능한 군주는 아니었습니다. (무능한 군주가 40년 동안이나 왕위에 있었다고 하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입니다.)
중국에서도 촉한의 유선을 암군이라 평가하지만, 유선이 친정할 때 촉한 국민에게는 대단히 살기 좋았습니다. 전쟁도 없었고, 적국이라 불리는 위나라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말년에 겨우 3~4년 정도 실정을 했습니다만, 제갈량의 후계자 강유는 유선보다 더 바보같은 짓을 했으니 피장파장이지요. (유선도 40년 이상 황위에 있었습니다. 더 대단한 점은 그의 치세에 복속민의 이탈은 있어도(남만인이 복속과 이탈을 반복합니다.) 내부인의 반란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또한 연산과 광해를 폭군이라 부르지만, 이것에도 이견은 있습니다. 연산이야 하도 폭정을 일삼았으니 뭐라 못하겠지만, 광해의 경우는 오히려 그 뒤의 인조가 훨씬 더 심했습니다. 인조 때문에 백성은 몇 배로 살기 힘들어졌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는 "인종"이 아닌 "인조"라 불립니다. ㅡㅡ; (선조도 처음에는 "선종"이었다가 나중에 "선조"로 격상했음을 볼 때 이것은 대단한 호평입니다.)
폭군 네로도 화재 당시에 그가 하프를 탔다느니 하는 낭설이 퍼져 있지만, 그는 화재 당시 흉년으로 굶주리는 로마 시민을 위해 식량을 꾸려고 로마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폭군이라 불린 그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선량(?)하지 않습니까? 뭐, 그가 여러 사람에게 자살 명령을 내렸으니 폭군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황제의 기분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다지 흠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따진다면 시저도 클레오파트라에게 자살을 명했고, 그밖에 많은 사람에게 자살을 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형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자살 명령은 오히려 사형수를 배려한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
흑천황 2009/11/17 19:55
뭐 그냥 대하 사기극이죠.
역사적 오류가 뒤범벅이 되어있는...
어제 선덕의 대사를 보면 작가의 천박한 역사적 인식이 들어 나더군요.
역사라는게 한사람의 힘에 의해서 소실되고 말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요.
역사는 그런게 아닌데 말입니다. -
글씨예쁘게 쓰고 싶어.. 2009/11/19 15:21
쥐박쥐 같은 경우 꼭 기록에 남겨져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국민들이 투표 제대로 안하면 이꼴 당한다는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수치이며 다시는 되풀이지 말아야할 짓입니다.
이런 점에서 꼭 국민의 수치의 상징으로 기록하여 앞으로의 역사에 그런 실수를 가능한 줄여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울나라 국민들 이번 일을 교훈삼아 더 이상의 만행을 보지 않기를. -
잠시 딴생각 2009/11/23 11:17
{담나티오 메모리아이}_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 에게 내려진 형벌(?)인데요....
잠시 예전에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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