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막에서 온 깡패, 하나님라는 글에 작은선물님이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손희송 신부(교수)님의 글이 올려 주셨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관심을 가질만한 질문 네가지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이다.

  1. 구약에 나타나는 야훼 하느님이 왜 고대 이스라엘 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가?
  2. 야훼의 폭력성.
  3. 오경의 내용이 글자 그대로 진실일까?
  4. 이스라엘과 의 보수 근본주의자들

글을 읽어 보면 알 수 있지만 비기독교도라고 해도 상당히 수긍가는 내용이 많다. 구약의 야훼에 대한 폭력성을 인정하면서 예수 이후의 사랑의 하느님을 들고 있다. 신약과 구약이 서로 배치하면 신약을 우선함으로서 사랑의 하느님을 앞으로 배치하는 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 개신교도들처럼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 아닌 진실, 과장, 비유임을 얘기하고 있다.

과연 장로교 목사들 중에 이 신부님의 글처럼 비기독교도까지 수긍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우리 나라 장로교도를 상대하다 보면는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다는 생각이들곤한다. 바로 역지사지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방법을 아예 모른다. 그리고 개신교에 대한 비판은 모두 비판하는 사람이 을 몰라서 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잘못 없음을 항변한다. 이런 잘못이 밝혀지면 무조건 이단으로 몬다. [두타 스님의 머리에 손을 얹은 사람에 대한 장로교도의 입장은 "그 사람은 이단"]이다.

문제는 이런 이단을 양산하는 장로교의 시스템(쉽게 교회를 만들 수 있는)과 이런 미친 신도를 양산하는 장로교의 시스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다는 점이다. 이런 개신교도와의 논의는 정말 끝이 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논의의 시작과 끝을 아전인수로 하기때문이다. 예수의 실존은 이나 기독교사로서는 절대 입증할 수 없다.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이기 위해서는 예수는 역사에 나타나야 한다.

예수 당시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의 업적록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는 평생 세번의 국세 조사(인구 조사)를 했다. 기원전 28년, 기원전 8년, 서기 14년. 모두 예수가 태어난 해와는 거리가 있으며, 그 대상도 외국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 것이 아니라 모두 국내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때 예수가 허구이거나 이 틀린 것 중 하나이어야 한다.

그러나 개신교도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오로지 과 기독교사를 근거로 예수가 태어났을 때 인구 조사가 있었다고 강변한다. 이렇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서 예수를 실존이라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 역시 개신교도는 눈감고 귀닫고 입만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얘기가 잠시 옆길로 샌 것 같다. 다음은 위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손희송 신부님의 답변이다. 기독교도이든 비기독교도이든 상당히 타당성있고 수긍이 가는 답변이다.

주님의 평화

안녕하신지요. 답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제기하신 질문들은 결코 유치한 질문이 아니라 모두 상당히 깊은 수준의 질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신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도 고민하는 그런 질문입니다. 질문하신 순서대로 답변을 시도해봅니다.

① 구약에 나타나는 야훼 하느님이 왜 고대 이스라엘 문화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는가?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당신이 누구이신지, 당신 뜻이 무엇인지를 계시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히브리 노예들을 종살이 땅에서 해방시켜주심으로써, 당신이 자유와 생명을 원하고, 억압자 편이 아니라 억눌린 이들을 보호해주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나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면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계명부터 3계명까지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라는 것이고, 4계명부터 끝까지는 인간 상호 간에 서로 해치지 말고 사랑하며 지내라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위로는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고, 인간끼리는 지배와 종속 관계가 아니라 형제, 자매의 관계, 가족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의 정신은 예수님이 주신 두 가지 계명, 즉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와 마찬가지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다른 백성들에게 빛으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른 이들도 이 백성이 하느님만을 섬기고 자기들끼리는 형제, 자매처럼 사는 모습을 보고서 야훼 하느님을 찾아 와서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만 구원하기 위해서 그들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다른 모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셔서 당신 도구로 삼으신 것인데, 그러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여러가지 특성을 존중해주셨습니다. 번제, 정과 부정의 규정, 병자에 대한 규정 등. 하지만 신약의 시대에 와서 우리는 이것을 지켜야할 의무가 더 이상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근본적으로 구약의 율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 선교를 하면서 이방인들에게는 유다인들에게 필수적이던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② 야훼의 폭력성

사실 구약성서에 보면 야훼 하느님이 자비로운 분이라기 보다는 폭력적이고 피를 요구하는 잔인한 신같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구약성서 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고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성서의 성격에 대해서 전제를 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는 하느님이 그 내용을 불러주시고 인간이 그 말씀을 듣고 쓴 것이 아닙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계시인 동시에 인간의 글입니다. 말하자면 그 시대 인간의 문화와 생각을 전제로 하고 그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톨릭 계통의 책방(예를 들어서 명동의 바오로 서원)에서 성서 입문서를 소개받으시기 바립니다.

어떤 신학자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야훼의 폭력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 인간에게는 폭력성이 내재해 있는데, 이것을 하느님께 투사시킨 것이다. 인간 자신이 폭력에 물들어 있어서 폭력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았고, 그래서 하느님 역시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분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구약성서는 서서히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구약성서의 내용은 자비로운 하느님과 폭력적인 하느님의 모습이 혼재해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끝이 나는데,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을 선포하면서, 이를 근거로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치신다. 실제로 그분은 십자가 상에서 자신을 못박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 하느님께 간청하신다." (참조, 장익 엮음, [폭력], 분도소책 40, 분도출판사, 25-41쪽).

저도 이 해석에 동의합니다. 구약성서, 신약성서 모두 하느님을 계시하는 책이지만, 구약은 약속이고, 신약은 그 약속의 실현입니다. 계시의 중심은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중심을 근거로 성서의 다른 내용들을 해석하는 것이 가톨릭의 오랜 성서 해석 방법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신약의 입장에서 구약성서를 해석하고, 신약에 입장과 반대되는 구약의 내용은 받아들이지 않거나 달리 해석합니다.

③ 오경의 내용이 글자 그대로 진실일까?

글자 그대로 진실인 내용도 있고, 비유도 있고, 때로는 과장도 섞여 있습니다. 성서는 자연과학적 언어나 매스컴의 언어가 아닙니다. 사랑의 언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 하느님을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자신들을 종살이 땅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신 그 하느님께 무한한 사랑과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표현할 때 비유와 과정을 자주 사용하듯이 하느님께 대해서도 비유와 과장을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구약성서의 모든 내용이 다 비유와 과장은 아니지요. 어떤 것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세월이 흐르면서 뭔가 덧붙여지고 과장이 섞인 것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려내기 위해서 바로 성서학 공부를 합니다. 가톨릭 계통의 서원에 구약성서의 형성과정에 대한 입문서가 비치되어 있을 터이니, 소개를 받아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에 관한 것은 제가 쓴 책, 생활성서사에서 나온 [주님이 쓰시겠답니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④ 이스라엘과 의 보수 근본주의자들

이스라엘 의 강경론자들은 구약의 질서 속에서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땅이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 무자비하게 행동하나 봅니다.

가톨릭 교회는 신약의 질서 속에서 더 이상 땅에 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불사하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의 보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를 전체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처럼 가톨릭은 신약성서가 계시의 완성이라고 보면서, 신약성서의 입장에서 구약성서를 읽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입장에서 구약의 폭력적인 내용들을 따르지 않습니다. 반면 보수 근본주의자들은 자기들 구미에 맞는 구절을 신약과 구약을 가리지 않고 뽑아내어 자기 이익에 맞게 해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성서에 대해 상당히 많은 의문을 갖고 계시는군요. 질문이 많다는 것은 관심이 많다는 것이고, 질문을 통해서 자기 신앙을 좀더 확실하게 다질 수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 자기 스스로의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

단, 의문을 다 해결한 다음에 믿겠다고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의문을 모두 해결하려면 아마도 일생이 걸리거나, 아니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으면서 의문을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나에게 정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확신하신다면, 신앙의 길로 들어서세요. 그리고 의문은 하나 하나 풀어도 늦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야 풀리는 문제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긴 대답이 되었습니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엇기를 바랍니다.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손희송 신부(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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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08:52 2007/08/1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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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체제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는 IT 블로거. IT 블로거라는 이름은 현재 시국때문에 시사 블로거로 바뀐 상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시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은 IT 블로거일 뿐이다. 컴퓨터, 운영체제, 시사, 가족, 여행, 맛집, 리뷰등과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이 블로그의 주제이다. 왼쪽의 아이콘은 둘째 딸 다예가 그린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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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수준 차이가 너무 난다

    Tracked from 우엉과 함께 무병장수를 2007/08/13 03:57 del.

    도아님의 블로그에 야훼의 폭력성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 이란 글이 올라왔다. 우선 읽은 소감부터 말하자면.... "신부님이 목사들보다 훨씬 낫다" 위 표현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음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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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빈둥이v 2007/08/11 09:01

    정상적인 신앙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신것 같군요..^^

    수긍이 가는 부분도 꽤 있네요
    이순신 사건등에 비하면 정말 비교되는군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1 09:26

      예. 상당히 차분하며 논리적인 글 같았습니다. 그래서 메인으로 올린 것입니다.

  2. Prime's 2007/08/11 09:46

    논리적인 해석과 반박(?)이네요.
    그 교회에 계시는 분들과는 사뭇 다르다는게
    처음 인사말에서부터 느껴지는듯 싶습니다...

    덧붙여..
    진짜 교회는 많더군요.
    12층 집에서 시장통을 내려다 보면.
    낮에 보이는 교회만더 대여섯개 됩니다..
    그중 하나를 제외하곤 장로교더군요..
    (나머지 하나는 제7일 안식교라고 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1 11:07

      예. 하늘의 별보다 십자가 많습니다. 교회에서 주장하는 예수의 지상 천국에 더 가까워진 것 같은데 다들 살기 더 힘들어졌다고 하더군요...

  3. Alphonse 2007/08/11 09:53

    글을 읽으면서 계속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캬... 다르군요. 진짜 달라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1 11:08

      예. 같은 신을 모시지만 천양지차입니다.

  4. snowall 2007/08/11 10:06

    음, 확실히 깨달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1 11:08

      기독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장 수긍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5. 2007/08/11 10:55

    장로교도 두 부류가 있습니다.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 두 교단 간에 신학적 입장이 다른데 우리가 흔히 장로교라고 하는 쪽은 예장으로 보수적인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이와 달리 기장은 성경 해석에 있어 열려 있기 때문에 위의 신부님과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신학의 스펙트럼은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수교단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기장 등 진보교단의 견해를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다 보수적이고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에 지쳐서 기장교단이나 감리교단의 열린 교회로 적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1 11:11

      저도 기독교에 관한 글을 쓰면서 진보 교단의 모습을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

  6. luzluna 2007/08/11 10:4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perm. |  mod/del. reply.
  7. fco 2007/08/11 13:40

    손희송 신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의 한사람으로서 성경의 내용이 의문이 되는 부분이 간혹 있습니다.
    제시하신 부분 역시 제 아무리 열심히 믿는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글자 그대로 보면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문을 가진다고 하여 그것이 믿음이 약하다거나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인간은 지성과 이성을 가졌으므로 어떤 사건을 바라보며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을 논리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논리가 아닌 믿음의 문제로 받아들일 부분도 있습니다. 신부님말씀대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풀리는 부분도 있더라는 것을 저도 느낍니다.
    무조건적인 믿음 강요는 저는 반대입니다.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전체를 이해하고 세부적인 것을 바라볼때 올바로 이해할 수 있지, 세부적인 것에 매달려 해석하다보면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와 메시지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2 08:21

      성경의 텍스트는 영을 받아 적은 것이라 단 한치의 오차도 없다는 개신교도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비해 카톨릭의 의견은 훨씬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8. 북천 2007/08/11 15:16

    아프간 사태의 여파인지 곳곳에 신앙관련 게시물들이 올라오는군요.


    신약에 나오는 구절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가복음 9장1절]
    "이 동네에서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10장 2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누가복음 9장 27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2~33절]
    "분명히 말해둔다. 이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이 이 세대에 내리고야 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6절]


    모두 예수가 살아 생전에 했던 말들입니다.
    읽어보시면 무슨 의미인지 아실거라고 봅니다.
    이미 심판의 날은 지난거나 다름없습니다.
    예수가 거짓말장이가 아니라면요.



    위에 장로회의 두가지를 말씀하신 분이 있기에 덧붙여서 씁니다.
    기장은 성서해석에 있어서 열려있는게 맞습니다.
    그네들의 주장은 '성서는 영감을 받아 쓴 것이지만 필자가 첨삭한 부분도 있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중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부분은 영감을 받은 내용이 아니다라는 것인데...
    어느 부분이 영감을 받은 부분인지 누가 판단을 하는가에 의문이 생깁니다.
    각각 교단, 교회가 자신들이 유리한 부분만 영감을 받은 부분이라고 주장하겠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도 아니고, 해석자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성서의 의미일까요?
    또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엉터리 책에 최고의 권위를 메기고 있는 종교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2 08:23

      아무래도 종교의 한계는 분명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개신교측에서 영감으로 적은 것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어지더군요.

  9. 작은선물 2007/08/11 16:16

    역시 도아님이 정리해서 (강조까지!) 올려주시니 비 기독교분들이 보시기에도 요점이 어디인지 확연히 구분이 가겠습니다. 게다가, 도아님께서 이번에 올려주신 글의 서두는 기독교와 개신교를 적절한 곳에 구분해서 (신경쓰신 듯한 느낌입니다.) 사용해 주신 점 더 감사드립니다.


    아……. 참고로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인들끼리 얘기하거나, 혹은 뭔가 종교적인 전달 (공적이든 사적이든)을 하고 싶을 때 첫인사를 신부님처럼 합니다.

    十. 찬미예수님

    이라고요. ^^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2 08:23

      천주교의 얘기이기 때문에 구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좋은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10. legendre 2007/08/12 02:0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차분한 글이네요.
    덧. 제목에서 "폭령성"은 "폭력성"의 오기인가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2 08:24

      예. 제목부터 틀렸군요. 수정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11. 한님 2007/08/13 00:49

    요즘 더욱더 맹신을 강요하는 종교 관련의 사람이 많이 보여서인지, 신부님 글의 "묻고 대답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는 구절이 특히 눈에 들어오네요. 그 구절과 이후의 의문을 해소한느 과정이 신앙 생활의 선상에 있기를 권하는 내용은, 카톨릭이나 개신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도 (용어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해당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대상 종교 안에 진리가 있다는 확신이라는 면은 좀 어려운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그냥 덧글로 남겨져있었으면 못 보고 지나쳤을텐데 이렇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3 07:32

      예. 답글로 남아 있기에는 너무 좋은 글이었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지는 않지만 단순한 맹종 보다는 깨달음의 과정이 모든 종교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12. 너른호수 2007/08/13 13:32

    기독교가 나쁜 종교가 아니군요.
    장로교가 나쁜 것이었군요.
    기독교쪽에서 나쁜 것들은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할듯 한데,..
    안 그러면 기독교 전체가 욕을 먹고 싸그리 없어져야 할 판인듯 합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특히 요즘엔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3 14:05

      옳지 않은 교인은 있어도 옳지 않은 종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로교도 교파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교도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13. 가즈랑 2007/08/14 14:29

    도아님 덕분에 저도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네요.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갖는 의문들에 대해서 성직자들이 신학적 '지식'으로 답변하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비종교적'인 태도로 비춰지지만요. (참고로 저는 천주교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이전에 쓰셨던 기독교관련 글과 이글까지 좋은 글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이 포스트의 (영문)제목이 Replay on Gangster Yahweh라고 되어 있는데, Replay는 Reply라고 표기하는게 좀더 의미에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14 14:33

      제목의 철자를 고치는 것이 힘듭니다. 제목의 철자를 고치면 링크가 모두 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목은 오타를 발견해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 문제를 해결한 플러그인을 만들 생각입니다.

  14. 신시다물 2007/08/30 18:23

    뒤늦은 댓글.

    신부님께서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해석하시려 한점은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안전인수식 설명입니다.

    저 신부님식의 해석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악행도 모두
    합리적인 변명이 가능해 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못된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저 신부님의 설명에서도 한치의 어긋남 없이 시도되는 부분입니다.

    결국 그것이 범 기독교의 기본적인 문제점인 것입니다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8/30 19:19

      어쩔 수 없는 부분 같습니다. 폭력의 인격신인 야훼를 유일신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건들이기 힘든 부분 같습니다.

      그러나 저 정도만 되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최소한 어울릴려는 노력은 하는 셈이니까요.

    • 2009/01/28 03:55

      저신부님은 믿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세지 입니다 .
      합리적인 변명이라 ..ㅎ
      제 입장에서 볼때는 합리적인 변명이라는 말은 한군데 정도?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ㅎ

  15. 지나가다 2009/07/07 20:53

    저런 내용은 신학교에서도 다 저렇게 가르치는걸로 알고있습니다만..?? 기독교라고 저렇게 설명 안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가는데는 보수적인 몇몇 교파뿐이죠ㅡㅡㅋ 그 교파에서도 저정도는 아니지만 신학교에서는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가르칠겁니다. 문제는 목사들이 배운대로 안가르쳐요..... 좀 나이든 목사님들은 특히 더하죠. 보수적인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거 같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보수주의 말고는 거의 저런식으로 가리킵니다. 우리나라에서 안그런 목사님이 많을뿐이지, 신부님의 말 자체는 새로운 내용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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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7/08 10:23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의 거의 대부분이 신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죠. 대부분 교회에서 교리를 배우는데 교회에서는 전혀 알려 주지 않죠. 대부분의 교회에서요.

  16. tiv 2010/12/23 00:32

    종교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이게 뭔짓일까요.
    그냥 자기혼자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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