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일단 이글을 읽고 마음에 상처 입을 진정한 기독교도께는 먼저 사과드립니다. 이 글은 비기독교도로서 40년 넘게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한 소시민의 솔직한 표현입니다. 얘기하고 싶어도 얘기할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심정. 오직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아마 절대 다수의 비기독교도의 심정일 것입니다). 이 글에 다른 편견을 갖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읽어 주기 바랍니다. 이제 기독교대한민국에 가장 큰 권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권력이 눈감고, 귀닫고 오로지 입만 살아 있다면 어찌되겠습니까?

부제: 나는 기독교가 싫다 III

나는 기독교가 싫다!

일단 제목부터 얘기하겠다. 중동 사막에서 온 깡패 새끼, 하나님. 상당히 자극적이다. 이런 제목을 사용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구약의 야훼 하나님을 표현하는데 깡패 새끼라는 표현이 너무 적당하다. 두번째는 나도 대학 시절 야훼 하나님을 깡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 새내기 때 이야기이다. 기독교 개론이라는 수업을 듣는데 학기말 리포트가 나왔다. 이 수업을 담당한 목사가 번역한 책을 읽고 원고지 50매의 독후감을 쓰는 것이다. 40매는 내용 요약, 10매는 독후감.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이 목사는 리포트를 내면서 다른 것을 몰라도 50매 중 마지막 10매(독후감)는 꼭 읽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금 기억으로 책 가격은 3000원이었다. 그런데 종교에 관한 쓸데없는 책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는 이 책이 총 6권밖에 없었고 이 사람 수업을 듣는 사람은 400명이 넘었다. 따라서 도서관에서 이책을 빌리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보다 어려웠다[1].

공업 수학 시간에 다른 친구가 빌려 온 것을 보고 공업 수학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다윗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곳 다윗왕의 영광을 위해 인구조사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없는 이스라엘 백성 7000명을 죽였다는 내용이 아주 자랑스럽게 적혀있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에게 죄없는 사람 7000명을 죽이는 행위가 타당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독교가 신자가 아니었던 나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독후감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예를들어 '한 깡패 새끼가 슈퍼에 들어와 돈을 달라고 한 뒤 돈을 주지않자 일가족을 몰살했다'고 치자. 이런 행위를 너희는 타당하게 보느냐? 내가 보기에 너희들이 말하는 하나님도 이런 강패 새끼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너희는 저런 것을 신으로 믿고 따르느냐? 내가 보기에는 마피아가 너희가 믿는 하나님 보다 낫다. 최소한 인정이 숨쉴 틈은 있으니까.

종교비논리위에 세워진 논리[2]라고 한다. 따라서 종교 논쟁비논리와 논리의 논쟁이며, 따라서 끝이 있을 수 없다. 또 믿지 않는 사람이 다른 종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다시 이야기하는 바보가 되기로 한 것은 우리 나라 기독교의 폐해 때문이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나는 기독교가 싫다는 글과 연이은 기독교에 대한 글 때문에 블로그가 상당히 시끄럽다. 사실 나는 기독교가 싫다라는 글은 기독교라는 종교 그 자체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기독교, 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 개신교 중에서도 장로교라는 어찌보면 상당히 제한적인 부분에 대한 내 경험을 이야기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 경험이 우리가 느끼는 공통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릴지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둘지 모르겠지만 나는 기독교가 정말 싫다.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야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증오의 하나님, 질투의 하나님, 이기심의 하나님(예: 다윗왕의 인구 조사)이기 때문이다. "야훼 하나님"은 유대교민족신에 불과하다. 또 야훼 하나님은 우리 정서에 맞지 않다. 즉, 야훼 하나님은 우리의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야훼 하나님은 다른 신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하도록 하는), 인간의 결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그래서 증오, 질투하는), 유대교의 민족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훼에 대한 참배신사참배와 같다는 도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본의 민족신에 참배하는 것과 유대인의 *민족신에 참배하는 것의 차이는 없다. 일본이 우리 나라의 침략자이고 유대가 세계의 침략자라는 점만 빼면 똑 같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신사참배를 문제 삼는 사람은 많아도 야훼 참배를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오늘 날 전세계에서 전쟁을 일삼고 있는 세 종교가 있다. 바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다. 이들의 뿌리는 같다. 이 세종교의 수장은 바로 중동에서 온 깡패, 하나님(야훼)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그 양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전쟁, 그 양자는 유대교와 이슬람이다. 마치 기씨와 유씨가 편을 먹고 이씨를 패는 형국이지만 이들의 성경(구약, 유대경)은 모두 같다(사실 형제다). 우리 나라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삼국사기라는 같은 역사책(성경?[3])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삼형제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래서 오늘 날 전세계 전쟁은 모두 기씨와 유씨가 일으키고 있다.

한 가지 덧 붙이자면 구약은 성서라기 보다는 유대교의 역사책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책을 연구까지 하면서 배우는 우리가 조금 우습다. 그러나 구약은 익히 알고 있는 것 처럼 유대의 역사를 다룬 책에 불과하다.

중동 깡패, 야훼 하나님

처음에는 '나는 기독교가 싫다'는 글은 나는 기독교가 싫다 I(시사), II(경험)으로 두개를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종교에 관한 글을 쓰다보니 왜 내가, 아니 우리 민족이 기독교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글(나는 기독교가 싫다 III)까지 쓰고 싶어졌다.

아무튼 예전에 올린 모든 기독교인들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에 댓글이 하나 올라왔다. 바로 "종교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주제로 쓰여진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의 소개 링크였다. 한겨례의 서평 대신 굳이 이 링크를 사용한 이유는 이 서평에 대한 관리자의 댓글 때문으로 보인다.

만들어진 신

[구약 성서]의 야훼는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다." 그 신은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는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로 등장한다.


관리자 댓글
야훼 하나님(구약에 나오는, 유일신이자 인격적인 신)에 대한 이런 글을 대할 때마다 대학 1학년 때 김용옥의『여자란 무엇인가』에서 읽었던, 하나님을 중동 사막에서 온 깡패새끼라 했던 문장이 떠오른다. 당시 그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놀랍고 통쾌했다. 지금도 "깡패 새끼"를 떠올리면 시원한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낀다.

깜짝 놀랐다. 똑 같이 깡패 새끼라고 표현한 사람이 있어서. 그래서 도올의 "여자란 무엇인가"를 찾아봤다.

여자란 무엇인가

하늘은 항상 무제한적이며 광막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왜소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이는 하늘은 어디서 보든지 그 모습이 같다. 서울에서 보는 땅과 목포에서 보는 땅과 부산에서 보는 땅은 모든 다른 땅들(many)이지만, 하늘은 서울에서 보든지 목포에서 보든지 부산에서 보든지 다 동일한 것(one)이다. 결국 이렇게 본다면 하늘은 일(一)을 상징하고 땅은 다(多)를 상징한다. 하늘은 추상성·보편성·절대성의 상징이고 땅은 구체성·국부성·상대성의 상징이다. 그리고 하늘의 숭배는 유일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universalization) 반하여, 땅의 숭배는 그 숭배가 이루어지는 사람과 장소에 따라 국부화될(localization) 수밖에 없다. 유목생활을 주로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땅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항상 이동을 하기 때문에 정착된 땅에 자기들의 존재의 근원을 삼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막에 있어서는 이동을 할 때도 여행의 기준이 되는 것은 하늘이지 땅이 아니다.

유목민족에게 있어서는 그들 삶의 양식을 제공하고 있는 자연대상은 동물(양떼)이고, 농경민족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대상은 주로 식물(벼·보리·감자·채소 등)이 된다. 유목의 대상이 되는 양떼는 항상 일정한 곳에 있지 않으며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牧者, shepherd)의 명령이다. 경험있고 현명한 한 사람에게의 다수의 무조건의 복종이 그 집단의 생존을 위하여 가장 에라가 적은 것으로 요청된다. 이러한 심리를 소위 명령심리(command-psychology)라고 하는데 이러한 심리는 유목과 유사한 이동집단에서도 공통된 것이다.

산악등반대의 캡틴이나 배의 선장에게도 무조건적인 복종이 요구된다. 매우 비민주적이고 종적인 상하굴종관계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캡틴이 실수하면 최악의 경우 다같이 죽게되는 한이 있더라도 에라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야훼하나님이나 주예수는 이러한 유목민족의 매우 비민주적 명령심리를 투사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목사(paster)라는 말자체가 "양떼지기"라는 뜻이다. 영어의 패스터(paster)는 원래 "초원에서 먹이는 자"란 어원을 갖고 있다.

목사(牧師)의 師는 스승사 자가 아니다. 師는 지금 우리가 군대용어로 사단(師團)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문의 원뜻은 군대의 단위를 뜻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농경민족의 농부와 식물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심리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식물은 자기가 뿌리박고 있는 땅의 自然(스스로 그러함)의 논리에 의하여 성장할 뿐이며, 간섭하고 지배하고 명령하고 휘모는 논리를 거부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농경민족은 항상 늑대나 이리, 그리고 가뭄의 사망의 골짜기에 항상 위협을 받고 있는 민족의 행태와는 다른 행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처럼 전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부정의 논리(logic of negation)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욱 발달되어 있는 것은 화해의 논리이며 공존의 논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적""원수""죄악""사망" 등의 『성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러한 극렬한 어휘가 우리 고전(古典)에는 매우 적다. 농사를 짓는 지혜는 대부분의 농부들이 골고루 가지고 있는 것이며 한명의 장로(長老)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수의 민주적 협동이며, 지혜로운 한사람에게로의 다수의 복속이 아니다.

목동은 양떼를 간섭하고 명령하고 인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시로 이리떼들로부터 막아야 하고 항상 그들이 길잃은 양이 되지 않도록 염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농부와 식물의 관계는 정확하게 그 반대이다. 인위적으로 조장(助長)하지 말아야 되고 간섭하지 말아야 되고 인도하지 말아야 한다. 식물이 스스로 그러한(自然) 자기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 줄 뿐이다. 우리 농경민족에게 있어서는 양떼도 없고 따라서 양떼를 지켜주는 목자도 필요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는 결코 인류문명사에서 보편성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가 "둘이 있다"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라는 제1계명은 이미 야훼 자신이 자기의 유일성(하나인 님)을 거부하고 있다. 즉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이미 존재론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유일성이란 남을 윽박지르고 후두려 패는 배타성일 뿐이다.

우리 농경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같이, 노경이 간신히 얻은 아들 하나를 태워 죽여 피를 보기까지 해서 그 복종을 시험하고 강요하는(아브라함-이삭의 경우) 그러한 야훼 하나님, 사랑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벌을 주고 공갈하고 협박하는("협박의 하나님"[God of intimidation]은 내 말이 아닌 신학용어임) 그러한 하나님은, 마피아의 두목보다도 더 무서운 깡패 새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깡패하나님"은 이스라엘인에게 너무도 정답고 친숙하고 또 든든하게 느껴지는, 즉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유목기질(nomadic temperament)에 너무도 적합한 신앙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 고요한 새벽의 나라 조선에 조용히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다.

내가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 우리 나라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기독교도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깡패 하나님"은 이스라엘인에게 너무도 정답고 친숙하고 또 든든하게 느껴지는, 즉 그들의 몸에 배어있는 유목기질(nomadic temperament)에 너무도 적합한 신앙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 고요한 새벽의 나라 조선에 조용히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이질적인 것이다.

도올의 기독교 비판

'여자란 무엇인가'를 찾다가 알게된 도올기독교 비판에 대한 글이다. 관심있는 사람은 한번씩 읽어 보기 바란다. 참고로 원래 이 글들은 X-Bible에 올라온 글이다. 그런데 X-Bible이 사라지며 글도 사라졌다. 사라진 글이 안티 예수 사이트에 올라와 있어서 안티 예수 사이트로 링크한다.

  1. 도올의 비판-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2. 도올의 비판-야훼참배는 신사참배와 동일
  3. 도올의 비판-예수탄생신화에 대한 분석
  4. 도올의 비판-기도는 골방에서 하라(김용옥 교수 vs 차범근 감독)
  5. 도올의 비판-노자의 하느님과 기독교의 하나님 비교
  6. 도올의 비판-예수는 무당이다
  7. 도올의 비판-예수는 무당이다 2
  8. 도올의 비판-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하느님개념
  9. 도올의 비판- 여성차별
  10. 도올의 비판-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일 뿐
  11. 도올의 종교에 대한 견해(1)
  12. 도올의 종교에 대한 견해(2)
  13. 도올의 종교에 대한 견해(3)
  14. 도올의 비판 여자란 무엇인가(1) - 성서의 여성차별
  15. 도올의 비판 여자란 무엇인가(2)
  16. 도올의 비판 여자란 무엇인가(3)
  17. 도올의 비판 여자란 무엇인가(4)
  18. 도올의 비판 여자란 무엇인가(5)
  19. 도올의 비판-로마제국의 환영 기독교
  20. 도올의 비판 - 정경(正經)이 교회를 성립시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라는 조직의 "정통성"의 타당화를 위하여 정경(正經)을 성립시켰다.
  21. 도올의 비판- 15세기 인쇄술이 개발되기 이전의 모든 성경의 판본은 하나도 동일 한 것이 없다.
  22. 도올의 비판-이스라엘의 역사만 하나님의 역사로 보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하느님의 역사로 보지 못하는 바보새끼들은 더 이상 역사를 운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3. 도올의 종교론-도올논어 20강(신종추원)
  24. 도올의 기독교비판 - '노자와 21세기' 종강
  25. 도올-기독교[인터넷 한겨레]
  26. 도올과 역사적 예수 연구
  27. 도올의 비판 - 하늘나라는 장소가 아니다. (번역의 잘못)
  28. 도올의 비판-"방언은 도둑놈의 발광일 뿐"
  29. 도올의 비판-연역적 대전제의 무비판적 수용
  30. 도올의 비판-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폐해는 바로 우리 사회를 광신적으로 만들었다는 점

한국 기독교 성서 포럼

참고로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찾다가 알게된 사이트가 한국 기독교 성서 포럼이다. 이 성서 포럼성서의 학문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운영되는 사이트바이블의 진실(X-Bible)을 배포하고 있다. 다음은 X-Bible 운영자의 사이트 소개 글이다.

이상훈([email protected])과 석동신([email protected]hanmail.net / 042-545-8463) 이 함께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저희는 바이블(Bible)과 기독교에 대하여 감정적인 비판보다는 학문적인 비판을 거리낌 없이 밝히고자 합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바이블은 다른 종교의 경전보다도 모순이나 오류가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가 안되는, 성서의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믿는, 미신적인 기독교신앙의 천국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미신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 민족에게 희망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 진리가 심하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도 본질적으로 멀어져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인간의 조작이 개입되었습니다. 본 사이트의 글들을 읽어 갈수록 이러한 사실들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기독교인들 중에서 본 사이트의 글들을 읽고 난 후에 세상을 보다 넓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고, 보다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변모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램이 없겠습니다.

관련 글타래


  1. 사실 이 책은 학생들이 과제로 사지 않으면 거의 팔리지 않는 책이었다. 
  2. 모교인 숭실대학교 전 총장님이었던 조요한 총장님의 말이다. 아직도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3. 유대인의 역사책을 '성경'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우리의 역사채은 삼국사기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