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과 김대중

불현듯 아버님이 생각난다. 암으로 9년간 투병하시다 돌아 가셨다. 돌아 가시기 직전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셨던 어버님 머리 맡에는 언제나 " 전집"이 놓여있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남을 속여 본적이 없었던 아버님. 그 아버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을 전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불현듯 아버님이 생각난다. 암으로 9년간 투병하시다 돌아 가셨다. 돌아 가시기 직전 그렇게 고통스러워 하셨던 어버님 머리 맡에는 언제나 전집이 놓여있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남을 속여 본적이 없었던 아버님. 그 아버님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었다. 을 전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당시 나는 을 지지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노태우, 김영삼, 으로 치뤄진 대선 패패의 이유를 에게 찾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두환의 계략에 빠져 분열, 결국 정권을 독재세력에게 넘겼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 선생님'이 아니라 '대중이'였다.

꽤 오래 전에 순천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당시 나는 모 학교에 근무하는 교수님들을 만나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들이었다. 에 대한 이야기 중 무의식적으로 또 '대중이가'라고 말했다. 앞에 앉아 계셨던 노 교수님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우리 선생님이라며 받았다. 전라도 사람에 은 단순한 이 아니었다.

은 자신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이정표였으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이었다. 그렇기에 끝없는 신뢰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15대 으로 당선됐을 때 한 광주 시민의 인터뷰를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제는 원도 한도 없습니다.

에 당선된 뒤 정치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오죽했으면 전두환 같은 이는 " 이 전직 을 자주 불러 줘서 행복했다"고 이야기 한다. 더 이상 '지역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전라도를 따로 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전라도민은 이런 의 결정을 묵묵히 따랐다. 그저 원도 한도 없이 따랐다.

며칠 전 김대중 대통령께서 돌아 가셨다. 나는 "김영삼이 김대중 대통령을 병문안 한 뒤 화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돌아가실 것을 예상했다. 이런 예상을 하면 조금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께 끝없는 열등감을 가졌던 김영삼이 화해를 했다. 그 의미는 의 모습에서 김영삼도 죽음의 그림자를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영삼이 원한 것은 권력이었다. 반면에 이 원한 것은 민주였다. 그래서 역대 독재정권은 권력을 원한 김영삼은 회유를 시도했고 민주를 원한 은 살해를 시도했다. 네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진 께는 보통 인동초라는 별명이 붙는다. 그러나 그 별명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 그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또 우리나라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국장이지만 6일장으로 치뤄진다고 한다. 아울러 사람이 모일 것을 두려워해 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꼭 국장과 노제를 바꾼듯한 기분이다. 올 2월에 우리나라 민주화에 한축을 담당하셨던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다. 또 5월에는 철학과 비전, 소신을 가지셨던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 가셨다. 그리고 올 8월 우리나라 민주화의 초석이셨던 마저 돌아가셨다.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쓰셨다는 일기는 40쪽 분량의 소책자로 만들어져 국회 분양소를 찾는 사람에게 21일 부터 제공될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의 서거는 의 서거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반쪽이 무너졌다 의 말씀이나 언제나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분이 '아이처럼 통곡'하는 모습에서 그 상심이 얼마나 컷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을 떠나 보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그분의 서거가 안타깝고 서글프다면 그분이 하신 말씀 부터 지키자는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
이 것이 고인의 뜻을 기리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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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체제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는 IT 블로거. IT 블로거라는 이름은 현재 시국때문에 시사 블로거로 바뀐 상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시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은 IT 블로거일 뿐이다. 컴퓨터, 운영체제, 시사, 가족, 여행, 맛집, 리뷰등과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이 블로그의 주제이다. 왼쪽의 아이콘은 둘째 딸 다예가 그린 내 모습이다.
2009/08/20 17:06 2009/08/2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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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김대중 서거’를 맞아 돌아본 ‘용산참사 7개월’

    Tracked from 앞산꼭지 2009/08/20 18:29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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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Subject : ‘한겨레’와 ‘경향’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00수퍼' 아저씨께

    Tracked from 앞산꼭지 2009/08/20 18:30 del.

    ▲ 이 반가운 신문을 보고는 가던 걸음을 멈출 정도로 대구에서는 이들 신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시내에서도 그런데 동네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이것이 2009년 대구의 현실이다. ⓒ 앞산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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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궁금이 2009/08/20 17:29

    87년 대선은 정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실수라고 봅니다.
    그때는 정말 김영삼에게 양보했었어야 옳다고 믿습니다.
    많은 김대중 전 대통령 추종자들이 그때 결국 등을 돌렸지요.
    그 중에 한 사람이 박찬종 의원이었구요.

    못 이룰 것만 같았던 대선 승리...

    IMF가 터진 후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선생님 왈
    "나는 대통령 되기 전에 고생만 하더니 대통령 되고 나서도 고생만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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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2009/08/20 17:45

      이 나라 정치는 어떻게 된게 옳은 일만 하면 바보처럼 보이는 걸까요?
      안타까워 죽겠습니다.

    • 도아 2009/08/20 18:14

      예.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그 다음을 노려도 충분했습니다. 다만 김영삼이 대통령이 됐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취급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김영삼이니까요.

  2. 럭스구구 2009/08/20 17:46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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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ImpactXP 2009/08/20 17:56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지금 이 때를 잊지 않고 다음 대선때는 확실한 투표를 해야 하겠습니다.
    민주화에 앞선 김대중 전 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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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0 18:15

      감사합니다. 꼭 투표해 주세요. 최소한의 행동입니다.

  4. 앞산꼭지 2009/08/20 18:34

    잔잔하지만 당찬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고인이 말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는 길은 크고 거창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
    일상이 작고 사소한 일부터 하나 하나 '행동'하는 것이 바로 고인의 뜻을 따르는 것이겠지요.
    결국은 그런 힘들이 모여서 민주주의가 완성되리라 확신합니다.

    참으로 반가운 추모사를 읽은 기분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일상의 작은 운동의 실천을 담은
    불로깅을 트랙백으로 남김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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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08:08

      감사합니다. 저 역시 작은 실천이 모여 민주주의라는 커다란 흐름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작다고 생각하지않고 그 작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 고인의 뜻을 따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5. 사랑여행 2009/08/20 18:53

    87년 김대중이 김영삼에게 대승적으로 양보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저도 그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지만..
    당시 87년의 관훈토론회를 지켜본 저로서는... 솔직히 김영삼을 대통령감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언론과 신문에서 보여주었던 김영삼의 능력과 토론회에서의 김영삼의 능력은 정말 초등.. 중등의 사고능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야당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니... 우리 사회의 뒤틀린 한 단면이죠...
    ..
    그리고 또 한편으로 권력의 세계에서.. 이번에는 내가 할께.. 다음에는 네가 해라라는 권력의 승계가 가능하느냐는 의문이 있습니다...
    만약 김대중이 양보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후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이 될 수 있었을까요...
    권력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다...
    3당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김영삼이 김종필..박태준..박준규..박철언을 거세했던 이후의 과정을 봐도 그렇고.....
    김대중은 김영삼이 정권을 잡으면 오래 키워온 자신의 꿈-민주화와 남북화해-을 이룰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김영삼의 능력으로는...)
    도아님의 말씀대로
    김영삼은 단순히 중학생때 부터의 객기로 권력이 필요했고
    김대중은 민주화와 남북화해를 위해 대통령직이 필요했던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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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08:09

      이명박이 김영삼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그 떨어지는 능력으로 대통령이 됐으니 이명박도 충분히 희망을 가질 수 있었죠.

  6. 其仁 2009/08/20 20:47

    ==>4년 뒤 떡 돌리는 그날.

    이 말, 아주 의미심장하네요. 기다려집니다. 아주 많이. 그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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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소로지 2009/08/20 21:49

    이 글을 보니 내가 어디에 온지 모르겠습니다.
    시사 전문.....?
    컴, OS전문.....?
    컴만 키면 QAOS에 로긴하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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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08:09

      요즘은 다들 시사 블로거로 아시더군요.

  8. goohwan 2009/08/21 00:26

    사실 저는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에 지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정치에 워낙 관심이 없어서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 관심갖게 된것은 탄핵사건 이후 부터였으며 서거 후 그분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 보면서 그분을 지지하지 못했고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던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살아 생전에 잘해드렸어야 하는데 말이죠...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 저도 유일하게 인정해온 대통령이 있었다면 그 분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어렸을적 짤막하게 주워들었던 이야기들 만으로도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초석"이었음을 알 수 있었고 이와 같은이가 또 나오기가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2009년 한해 소중한 분들을 너무 많이 엃게 되어 너무나 슬픕니다.

    아~ 혹시 모르겠군요. 난세에 영웅이 나듯이 MB정권 탓에 혼란한 이때 영웅이 등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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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08:10

      저도 비슷합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정직한 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영웅은 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9. pslion 2009/08/21 02:25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ㅠㅜ 올해 정말 많이 울게 되네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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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08:11

      예. 정말 많이 울게되더군요. 그런데 아이디를 보니 무척 오랜만인 것 같군요.

  10. 미르~* 2009/08/21 09:23

    예전에 삼김이라고들 해서..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 이렇게 세 사람은 동급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천양지차 더군요.. -_-;;
    김대중 전대통령은 다른 두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
    언론의 조작질에 속아서 그저 삼김.. 이라고만 생각했던게 부끄럽습니다..
    김전대통령께서 부디 하늘에서는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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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11:39

      예. 서로 격이 다릅니다. 머리는 김영삼이 가장 나쁘고, 교활하기는 김종필이 가장 교활하죠...

  11. 하늘기차 2009/08/21 09:26

    그날들을 기억합니다.
    초조하게 개표상황을 지켜보고, 마침네 당선되셨을때 그 함성들을 기억합니다.
    원없이 마셔 보았고, 원도 한도 없단 말을 저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의 치열했던 삶을 기억합니다.

    기억할겁니다!

    적어도 제게는 정치가 아닌 삶에 대한 힘과 가르침을 주셨던 두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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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1 11:40

      저도 비슷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찍지는 않았지만 무척 즐거웠습니다.

  12. 비온뒤햇살 2009/08/21 14:05

    "행동하는 양심" 이 말이 가장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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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3 13:39

      예전부터 항상 하던 이야기였으니까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죠.

  13. 공상플러스 2009/08/22 01:20

    저는 거의 김대중 대통령님이 대통령으로 있으실 때에 어린아이였어요.. 그때 기억이 잘 안나요. 지금도 정치는 잘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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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3 13:40

      그래도 공상님은 투표권을 가질 때에는 '쥐박쥐'같은 사람을 뽑지는 않을 것 같더군요.

  14. shyjune 2009/08/22 16:20

    민주화 영웅의 영전에 깊은 존경과 애도를 표합니다. 그러나 그저 유언비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의혹을 남기고 가신 점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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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3 13:40

      의혹도 있지만 나이도 있으시니까요.

  15. 성민장군 2009/08/23 01:36

    사실 저역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대학에 복학했을때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시기였고, 대학 운동권이 그렇듯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그 수장인 대통령을 곱게 보지 않았었죠.
    하지만, 615공동선언을 통해 다시한번 김대중 대통령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615공동선언이 아니었다면 가족을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구요.
    오늘 시청광장 분향소에 다녀왔는데, 비통한 심정때문에 계속 기분이 안좋습니다.
    도아님 말씀처럼 결의를 다져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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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아 2009/08/23 13:41

      저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87년 대선 출마때문에 그렇게 봤는데 지나보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옵션: 없으면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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