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무용론?
"한자를 배우면 공부가 쉬워진다."
사실일까? 적어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말에는 한자가 아주많다. 심지어 고유어라고 생각하는 말 중에도 한자가 많다. 또 한자를 어원으로 하는 순우리말도 많다. 따라서 한자를 쓰지는 못한다고 해도 많이 쓰이는 한자 정도는 읽고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한자 공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자를 배우면 공부가 쉬워진다.에서 가져 온 사진. 우리 말에는 한자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한자를 알면 공부가 쉬워진다. 한자를 쓰지는 못한다고 해도 상용 한자 정도는 읽고 뜻풀이 할 수 있는 수준의 한자 공부를 시키는 이유이기도 한다.
진보 vs 수구
서울과 경기는 진보성향의 교육감인 곽노현 교육감과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됐다. 진보진영의 모든 교육정책이 나왔다고 평가 받는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의 당선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선관위의 선거간섭으로 교육감 공보물 마저 배포하지 못한 곽노현 교육감의 당선은 어찌보면 공정택 교육감의 삽질에 대한 반대 급부로 보인다.
아무튼 경기권에서는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지만 내가 살고 있는 충북 지역에는 수구 계열의 이기용 교육감이 당선됐다. 진보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이 너무 낮았고 로또 번호라는 교육감 후보자 번호도 밀린 탓이다.
큰 아이가 4학년이고 둘째가 1학년이다. 그러나 두 아이의 교육 환경은 상당히 다르다. 작년부터 숙제가 무척 많아 졌다. 그 숙제의 수준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숙제는 별로 없다. 여기에 시도 때도 없이 시험을 친다. 일제고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달에 서너번을 시험을 치는 듯 아이 엄마가 툭하면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아이들 시험 공부를 시킨다. 물론 둘째는 1학년이라 아직 이런 시험은 없는 듯하다.
다예 이름
어제의 일이다. 다예가 숙제라면 자기 이름을 한자로 써달라고 한다. 다예의 이름은 많을 다(多)에 재주 예(藝)를 쓴다. '성 김'이나 '많을 다'는 글자가 쉽기 때문에 다예도 곧잘 쓴다. 그러나 재주 예는 다예가 쓰기에 너무 복잡하다. 비단 다예에게만 복잡한 것이 아니라 아이 엄마에게도 복잡하기 때문에 다예의 한자 이름은 내가 쓰곤 한다.
보통 글자가 복잡하면 약자가 있다. 약자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이 일본이기는 하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약자를 많이 사용한다. 따라서 재주 예처럼 복잡한 글자는 약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얼마 전에 소개한 아이폰 어플, 한자공부Q로 재주 예를 찾아 봤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재주 예', '심을 예'라는 똑 같은 뜻과 음을 가진 한자가 너무 많다.
- 藝(재주 예, 심을 예, 19)
- 㙯(재주 예, 심을 예, 15)
- 兿(재주 예, 심을 예, 13)
- 埶(재주 예, 심을 예, 11)
- 秇(재주 예, 심을 예, 8)
- 芸(평지 운, 재주 예, 심을 예, 8)
- 艺(재주 예, 심을 예, 5)
- 蓺(심을 예, 15)
1~7까지는 모두 재주 예, 심을 예자다. 여기서 6번은 원래 평지 운이었지만 일본에서 재주 예의 약자로 사용되면서 재주 예로 편입된 듯하다. 원래 재주 예자는 '심을 예'(蓺)에 '이를 운'(云)을 합쳐 만든 글자다. 과거 농경 민족에게는 농사가 중요하다. 따라서 풀(艸)을 심(蓺)을 수 있는(云) 재주라는 뜻에서 만들어진 글자로 보인다. 그런데 원자에서 '풀 초'(艸)를 빼도 재주 예자이다. 또 '풀 초'와 '이를 운'을 빼도 재주 예(埶)다.
아무튼 다예에게는 가장 간단한 7번째의 재주 예(艺)[1]를 알려 주었다. 학교에서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해 자존심이 상한 다예. 기껏 아빠에게 물어 봤지만 혼자서 쓰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포기했던 다예는 쉬운 글자를 알려 주자 열심히 자기 이름을 연습하고 있었다.
한글과 한자
개인적으로 난 한자무용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자만 사용해야 한다는 한자전용론자나 한자와 한글을 섞어 써야 한다는 혼용론자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한글 전용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 말에 녹아있는 한자의 흔적이 너무 많다. 따라서 우리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한자가 필요하다. 즉, 우리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한 한 수단이 한자다. 내가 원하는 한자교육은 이 정도다.
영어의 워드 파워(Word Power)처럼 우리 말의 어휘를 늘리기 위한 도구로 한자를 바라 보고 있다. 따라서 어려운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한자로 만들어진 우리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을 원한다. 얼마 전 단월강에서 투망을 던질 때 우영이는 투망(投網)의 뜻을 알고 싶어했다. 한자를 알면 투망의 뜻은 아주 쉽다. '던질 투'(投), '그물 망'(網)을 쓴다. 즉, 투망은 물고기를 잡기위해 던지는 그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한자 사용도 달가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난 "가급적"이라는 말 대신에 "될 수 있는 한"이라는 말을 쓴다. 즉, 내가 사용하는 한자의 사용도 적당한 우리 말 표현이 없을 때 사용한다. 또 적당한 우리 말이 없다면 우리 말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판올림이라는 말을 내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판올림을 낯설어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적어도 내 블로그에서 이제 이 말을 낯설어 하는 사람은 없다.
한자는 뜻 글자이다. 따라서 말을 만들기가 쉽다. 중국에서는 TV를 전형기라고 한다[2]. 전기로 형상을 비추는 기계. 글자만 붙이면 말이 만들어 진다. 그러나 우리 말로는 이런 말을 만들기 상당히 어렵다. 뜻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자 문화권의 영향으로 우리 말의 '말을 만드는 능력'(조어력)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조어력을 보완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옛말과 사투리라고 생각한다.
해살과 스포일러
또 찾아 보면 의외로 적당한 말이 많다. 일반적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미리 이야기함으로서 영화의 재미를 반감 시키는 사람이 있다. 식스 센스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누군가 "브루스가 유령이다"라고 외치고 가면 그 영화의 재미가 어떨지는 분명하다. 이런 사람을 스포일러라고 한다. 이 스포일러에 대한 우리말로 가장 적당한 말은 해살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꾼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는 스포일러와 잘 맞고 영화 감상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해살의 의미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소년 탐정 김전일이라는 만화에 범인이 누군지 표시한 헤살꾼. 화면은 한때 즐거 보던 김치 치즈 스마일에서 시언니 수영과 시누이 연지 사이의 헤살 전쟁을 그리고 있다. 111화.
결론을 말하자면 한자의 사용은 최소화하고 될 수 있다면 적당한 우리 말을 찾자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3세대만 계속된다면 우리는 한자 영향권에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삶이 한자 영향권을 벗어난다고 해도 역사까지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자는 우리의 국학으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모든 고문헌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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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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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열 2010/07/09 11:57
저도 한자를 배제하지는 못하지만 사용을 줄이는 것을 원합니다.
구지 한자로 표기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한자가 사용되는 곳이 생각외로 많더라고요..
그리고 예상외로 사회가 한자에 대한 능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듯 싶고요..
이런 말 하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자 능력이 딸리는 저로서는 순 우리말을 고집하는 북한이 조금은 부럽습니다... -
냐옹 2010/07/09 13:23
동감입니다.
하지만 한자를 열심히 해두는 것도 일본어나, 중국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사실입니다. -
이정일 2010/07/09 13:33
저희 애들도 4학년과 1학년이에요 :)
얼마전 학교 무슨 평가를 한다고 해서 아내가 그 동안 학교 불만이 있었던 거 다 쏟아 부었대요. 1학년 애 담임이 고유 번호의 통지서를 무작위로 나눠준 바람에 누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모르게 되었다능... -
kkochi 2010/07/09 13:48
해살꾼 괜찮네요..
'미리니름' 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순우리말 '미리'와 '니르다'의 합성어로, 일본식 표현을 순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라는군요..일본식 표현을 순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났긴 했지만 순우리말 같아서 쓰고있었는데,
해살꾼은 그냥 우리말이겠죠?ㅎㅎ -
이야기꾼 2010/07/09 17:14
우리 아들이 다섯 살 때 만든 말 물지우개 어떤가요?.
아들은 아직도 자동차 와이퍼를 물지우개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유치원엘 다니게 되면서 자꾸 우리말보다는
한자말을 좋은말이라 이야기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춤을 율동이라 하는가 하면
온갖 영어를 쓰는 일이 영 맘에 들지 않습니다. -
최면 2010/07/09 17:38
多艺겠네요.. 중국 간체로는요 ^^
저도 한자가 싫어서 자퇴도 했었지만.. 결국 전공은 중국어라.. -0-;;
한자를 알면 좋습니다. 다만 우리 말이 더 좋긴 합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는 경우는 뭐...
아참.. 현대 중국어에서 TV는 電視機(电视机)입니다 ^^ 전기로 보는 기계.. 결국 텔레비전 이라는 영어를 바꾼거네요 ^^ -
HDS-GTR 2010/07/09 17:45
저도 한자를 좀 줄였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옛 국어의 대부분이 한자어에서 말을 빌려왔다고는 해도, 순화시킬수 있는 표현도 여러개 있고..
무엇보다 저는 한자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이 됩니다 -_-;;; -
kalms 2010/07/09 18:44
한자를 배우면 좋다
=> 한자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한자를 많이 쓴다
=> 그런 사람이 늘어난다
=> 한자말이 점점 많이 통용되게 된다.
똑똑한 또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특히 '사'자 달린 사람들이 한자말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자말을 덜 쓰게 하고 안쓰도록 학교에서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건 저도 반대합니다.
한자를 쓰면 머리도 좋아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자를 충분히 익히고도 우리말을 사랑하는 습관.
다른 사람도 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어야겠지요. -
koc/SALM 2010/07/10 11:40
우리말을 쓰게 하려면 '국어사전'이 먼저 바뀌어야겠죠.
국어사전에 보면 '고유어'에는 한자어로 된 유의어가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한자어'에는 고유어로 된 유의어가 곧잘 나타납니다. 애초에 그 목적은 '고유어'를 쓰게 하자는 것이었겠지만, 실제로는 고유어 대신에 한자어를 써 버리죠. 더 큰 문제는 한자어는 거의 빠지지 않고 사전에 올라 있지만, 고유어는 아직도 빠진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표적인 말이 앞엣것과 뒤엣것이죠. 여기에서 '-엣-'이 아예 사전에 올라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귀엣말'이 쓰이므로 분명히 '-엣-'도 사전에 올라 있어야 하죠. 현재 '-엣-'이 쓰이는 말은 대부분 사전에 올라 있지 않고, '귀엣말' 등 극히 일부만 올라 있습니다.
덧// 埶(재주 예, 심을 예, 11)
저 한자는 '심다'라는 뜻보다는 '(논밭을) 갈다'입니다. 원래 뜻이 지금 쓰이지 않으므로 사전(자전)에 나타나지 않나 봅니다. 그 글자에 풀초가 들어가야 비로소 '심다'라는 뜻이 되죠.
예컨대 아들 자(子)는 원래 '아이' 또는 '(갓 태어난) 여자아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갓 태어난) 계집아이'라는 뜻으로는 전혀 쓰이지 않죠. 원래 사내아이 또는 사내를 뜻하는 말은 사내 남(男)이었고, 성인남자를 뜻하는 말은 정(丁)이었습니다. 계집 녀(女)는 원래 성인 여자 또는 여자를 뜻했고요. -
HOMM 2010/07/10 18:58
한글에서의 한자는 영어의 라틴 어근과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VOCA22000에 매몰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어 단어를 공부할 때 라틴 어근이나 그리스 어근을 알게되면 단어를 보고 유추하는 힘이 생기듯이, 한자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어휘력이 증가한다고 생각하네요. 물론 한자어에 맞는 우리말을 찾고 만드는 노력은 꾸준히 해야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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