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돼지들의 합창

나는 빈농의 아들이다. 그 당시는 다 그랬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머님,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얘기를 들으면 정말 그럴까 싶을 정도로 빈농이었다. 춘궁기. 당시 농촌의 한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춘궁기에는 먹을 양식이 떨어져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죽을 끌여 드셨다고 한다. 따라서 반찬 투정을 하는 날 보면 아버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저 자식은 소나무 껍데기 벗겨다 먹여봐야돼

였다. 빈농의 종가, 그리고 그 종가집의 종손이 아버님이셨다. 그래서 당시에는 노총각도 한참 노총각이라고 할 수 있는 29살에 혼례를 치루셨다. 어머님, 아버님의 소원은 하나였다고 한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대학교까지 보내는 것

얼마 안되는 논에서 나는 소출로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명의 고모와 세명의 삼촌, 어머님, 그리고 누나와 동생까지 먹고 살아야했다. 빈농의 끝은 도시. 결국 서울로 가는 차비만 달랑 들고 당시 네살이던 누나, 세살이던 나,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동생을 두고 서울로 상경하셨다.

그리고 노숙자들이 묵는 곳에서 하룻 밤을 자고 아버님은 날 품을 팔러가셨고 어머님은 장사 거리를 찾으셨다. 아버님이 날품 팔아온 돈으로 어머님은 다음날 부터 도깨비 시장(이문동)에서 생선 장사를 시작하셨다.

사실 어머님이 들려주신 이런 과거사를 들으면 우리 남매들은 모두 눈물을 흘린다. 가진 것이 없어서 한 고생, 가지지 못했기에 여기 저기서 받는 설움. 초등학교 시절 방위 성금 20원이 없어서 울면서 학교에서 집으로, 집에서 학교로 뛰어 다닌 기억. 어린 시절에 겪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배고프고 가난했던 기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 집의 생활이 나아진 것은 아버님이 당시 중동 건설 열풍을 타고 중동을 다녀오신 뒤였다. 열사의 나라에서 고생하시는 아버님을 생각하시고 어머님은 아버님이 보내신 월급을 모두 저축하셨다. 그리고 생활비는 어머님께서 일일공부를 돌리면서 받은 돈으로 충당하셨다. 그리고 집을 샀고, 가게를 차렸다.

이렇게 열심히 사셨던 부모님 덕에 '가난이라는 어찌보면 정말 벗기 힘든 굴레를 벗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때부터는 학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살았고 결국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가정 환경이 이러다 보니 우리 집안은 다른 집안과는 다르게 모두 급진적이다. 누나도 운동권 출신이고 매형도 운동권 출신이다. 나도 학생 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시위를 하다가 구류를 산적은 있다. 그래서 언제나 노동자의 편이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지금도 내가 하는 말이다. 골리앗에 올라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노동자. 그 모습을 보며 자본가와 에 대한 끝없는 분노를 토해냈다. 이 모습은 우리 집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이런 노동자가 사라져갔다.

그리고 이렇게 사라진 노동자처럼 우리의 인식도 변했다. '안타깝게 바라보던 파업은 이제 짜증으로 바뀌었다'. 노조 위원장을 하면 한살림 모은다는 소문, 또 그런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 사실 과거 골리앗에 올라 목숨을 걸고 싸우던 노동자는 사라졌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서글픈 이름으로 힘겹게 남아 있는 셈이다.

사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의 도움없이는 풀기 불가능하다고 본다. 파업조차 할 수 없는 이들을 대변할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같은 일(때로는 더 많은 일이나 힘든 일)을 하면서 받는 보수는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도 못받는다. 이들의 피땀, 착취가 이제는 이 나라의 동력이 되고있는 셈이다. 그러나 노조도 고용주도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일은

살찐 돼지들의 합창

혼자서도 잘한다. 그래서 이런 소식은 살찐 돼지 두 마리의 탐욕스런 합창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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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8 10:21 2007/02/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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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체제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는 IT 블로거. IT 블로거라는 이름은 현재 시국때문에 시사 블로거로 바뀐 상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시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은 IT 블로거일 뿐이다. 컴퓨터, 운영체제, 시사, 가족, 여행, 맛집, 리뷰등과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이 블로그의 주제이다. 왼쪽의 아이콘은 둘째 딸 다예가 그린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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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아크몬드 2007/02/28 15:38

    고개가 숙여지는 글이군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3/01 09:01

      사실 요즘 노조는 조조가 아닙니다. 말그대로 돼지들이지...

  2. 나비 2007/02/28 17:16

    정말이지 공감가는 말입니다..저희집도 당시 중동건설 열풍시절 아버지께서 꽤 오래 가셨었는데 예전생각나네요.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다니시던 회사가 지금 아랫기사의 현대네요...ㅎㅎ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3/01 09:02

      제 아버님도 두번을 갔다 오셨습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월급을 주었기에... 그리고 가난을 딪고 일어선 분들 중 상당수는 "중동 특수를 누리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3. 지나가는사람 2007/04/02 02:46

    꼭 연관지으려는 것은 아니지만,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도아님의 QAOS에서 No Cross, No Crown이 괜히 나온 건 아닌 것 같군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4/02 09:31

      No Cross, No Crown.이라는 경구가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아마 어렸을 적 경험이 많이 작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꼭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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