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 I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일이다. 대학교 방학은 조금 긴 편이라 방학중에 15~30일 정도를 혼자 여행을 하곤했다. 물론 돈 한푼없이 무전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내 다른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로 친척이나 친구, 아는 형들을 만나곤 했었다.

할아버지는 빈농이다. 땅 몇평 가지지 못한 빈농. 부가 대물림되듯 가난 역시 대물림된다. 그래서인지 고모 역시 아주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갔다. 자식 복은 있으신지 상당히 많은 자녀를 두셨고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 열심히 사셨지만 여전히 가난한 그런 집이었다.

보성에 아는 형이 있어서 만나러 가는 길에 이 고모님댁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찾아온 장조카 때문에 고모부님 생신 때도 잡지 않은 닭을 잡았다. 고모님 댁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배낭을 매고 고모님 댁을 나섰다. 버스를 기다리며 배낭 앞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던 난 배낭 앞주머니에 덩그러이 놓여있는 피다만 담배 반갑을 보았다.

처음에는 웬 담배인가 했지만 이내 그 담배가 고모님이 넣어놓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찾아온 조카에게 용돈이라도 주고 싶으셨지만, 담배 한갑이라도 사주고 싶으셨지만 천원짜리 한장없어 고모부님께서 피우시던 담배 반갑을 넣어 두신 것이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선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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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체제의 모든 것을 운영하고 있는 IT 블로거. IT 블로거라는 이름은 현재 시국때문에 시사 블로거로 바뀐 상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시사와 사회에 관심이 많은 IT 블로거일 뿐이다. 컴퓨터, 운영체제, 시사, 가족, 여행, 맛집, 리뷰등과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이 블로그의 주제이다. 왼쪽의 아이콘은 둘째 딸 다예가 그린 내 모습이다.
2005/02/24 01:19 2005/02/2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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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고기집 아들 2005/02/24 07:19

    왜 가난까지 대물림 되는 것일까요.. 흑..
    괜스레 뭉클해지네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5/02/24 14:25

      사회의 민주화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중 하나는 계층의 수직 이동이 얼마나 자유로운가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나라의 민주화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일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2. 열렬팬 2005/02/25 22:49

    전 시골출신입니다. 어릴 때 도시로 유학와서 느낀 위화감, 자식을 낳는다면 물려주고 싶지 않네요... 사회 시스템이 역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난 그에 대해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perm. |  mod/del. reply.
  3. 1004ant 2007/04/18 02:46

    오래전 읽었던 글이지만... 계속 생각이 나서 댓글달아봅니다... 정말 가슴이 찡해요..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07/04/18 09:56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찡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연 배낭에 담겨있는 구겨진 88 담배. 무엇인가 해주고 싶으셨지만 담배 한 갑 사실 돈이 없으셔서 고모부님께서 피시던 담배를 넣어 주셨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나더군요.

  4. 시원한 겨울 2010/01/21 19:54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144649

    아고라에 올라온 글인데, 저만 읽으면 안 될 것 같고, 도아님과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도 같이 읽어 보시면 좋

    을 것 같아서요.

    주제에 맞는 도아님의 글을 찾아 댓글을 달고 싶었는데, 이 글이 어울릴까 모르겠습니다?

    맞지 않다고 생각하셔도, 도아님 용서해 주시겠죠.^^*

    어제 저 글로 인해서 눈시울에 정말로 불이 났는데, 끄느라고 힘들었습니다.

    도아님의 고모님처럼 심금을 울리는 저런 분들에게는 한 없이 제 자신이 작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에궁... 이거 감정이 또 흔들리네요. 저의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perm. |  mod/del. reply.
    • 도아 2010/01/22 06:52

      읽어 봤지만 구성을 보면 너무 소설 같더군요. 그래서 오히려 감동이 덜하더군요.

(옵션: 없으면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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