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지도력은 얼마나 될까? by 도아
정치가의 덕목
나라마다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다. 따라서 동서양에서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덕목도 다르다. 이탈리아 교과서에서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다섯가지 덕목으로 첫째 '불굴의 의지', 둘째 '자제력', 셋째 '지구력', 넷째 '지성', 다섯째 '설득력'을 꼽고 있다. 재미있지만 지도자 덕목에 '도덕성'은 없다!
나라마다 역사적인 배경이 다르다. 따라서 동서양에서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덕목도 다르다. 이탈리아 교과서에서는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다섯가지 덕목으로 첫째 '불굴의 의지', 둘째 '자제력', 셋째 '지구력', 넷째 '지성', 다섯째 '설득력'을 꼽고 있다. 재미있지만 지도자 덕목에 도덕성이 없다!
정치가의 덕목(동양)
도덕성이 없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성은 기본'이라는 뜻이다. 즉, 서양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항목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동양에서 요구하는 지도자의 덕목 중 첫번째는 도덕성이다. 원칙없는 우리사회라는 글에서 한번 인용했지만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진나라에 흉년이 들어 도적이 들끓자 도적을 잘잡는 사람(극옹)을 고용했다. 극옹이 도적을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저는 그자의 눈과 눈썹 사이를 봤습니다. 물건을 볼 때 그자의 눈엔 욕심이 가득 찼습니다. 사람을 볼 때 그자의 눈엔 부끄러움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가까이 갔을 때 그자의 눈엔 두려움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극옹은 며칠 뒤 도적의 공격을 받고 죽고만다. 이 소식을 들은 진경공은 이일을 예언한 양설직을 불러 하문하다.
대저 꾀로써 꾀를 막는 것은 마치 돌로 풀을 눌러두는 것과 같습니다. 풀은 반드시 돌 틈을 비집고 자나고야 맙니다. 무법한 놈들을 엄한 법으로 금하는 것은 돌로서 돌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두 개의 돌은 다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도적을 없애는 방법은 그들을 교화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즉, 그들에게 염치를 가르치는 것이 그 첩경입니다. 결코 도적을 많이 잡는 것이 도적을 없애는 길은 아닙니다. 그러니 상감께서는 문무 백관들 중에서 어질고 착한 사람을 골라 백성들에게 어질고 착한 길을 밝히게 하십시오. 마침내는 착하지 못한 자들이 스스로 감화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도적쯤을 근심하실 것이 있습니까?
다시 그런 인물을 묻는 진경공에게 양설직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사회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그는 '신용있는 말을 하며, 의리 있는 행동을 하며, 너그럽되 아첨하지 않으며, 청렴하되 소견이 좁지 않으며, 강직하되 반항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으되 사납지 않습니다'. 상감께서는 잊지 마시고 사회를 등용하십시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속담을 보여준 예이다. 동양은 지도자의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지도자의 높은 도덕성이 사회 전체를 깨끗하게 할 수 있다는 어찌보면 이상론적인 측면[1]이 있다. 반면에 이탈리아 교과서에 나온 다섯가지 덕목은 모두 지도자의 능력에 대한 부분이다.
지도자의 덕목(서양)
지도자의 도덕성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이야기하는 고위층의 '도덕적 의무감'과 지도자 개인이 아닌 '사회 시스템'에 맡겨 둔다. 예전에 클링턴과 르윈스키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난 적이 있다. 장자연 리스트 조차도 밝히지 못하는 우리나라라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미국의 시스템은 클링턴의 부적절한 관계를 밝혀냈다. 즉, 개인의 부도덕성을 바로 잡는 역할을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또 클링턴은 이런 부적절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클링턴은 자신의 임기를 무사히 다 마칠 수 있었다. 아울러 부인 힐러리를 돕는등 아직까지 사회활동을 열성적으로 하고 있다. 클링턴이 부적절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하는 서양인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다.
나 역시 지도자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지도자가 도덕적이며 능력까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정치가 가지는 속성상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2]이다. 따라서 내가 요구하는 도덕성은 청백리와 같은 청렴함이 아니라 상식적인 수준의 도덕성이다. 다만 우리사회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런 상식적인 수준의 도덕성 마저 위협받고있다.
권력은 그 획득과정보다는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으로 평가받는다. 전과14범이라고 해도 대한민국이 정한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되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된 뒤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이 정당하고, 능력이 있었다면 이명박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에서 요구하는 높은 도덕성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전과14범에 세계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하는 대통령에게 이런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명박의 자질
그러면 앞에서 이야기한 '지도자의 다섯가지 덕목'으로 이명박을 평가해 보면 어떨까? 먼저 '불굴의 의지'는 분명히 이명박에게도 있다. 온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부시의 카트를 몰기 위해 검역 주권을 넘긴 것[3]이나 '촛불이 전국에 들불처럼 일어도 고시를 강행'처리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과 미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없으면 분명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자제력이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듯이 이명박에게는 자제력이 전혀 없다. 이명박의 막말의 대운하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냥 있는대로 내뱉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창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뛰어 들고 '부산이 하계 올림픽 유치'에 뛰어 들고 있지만 일왕을 만나 일본 하계올림픽 유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4]이다. 이정도면 초등학생이 가지고 있는 정도의 자제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번째 지구력은 있는 편이다. '황소'라는 별명, '불도자'라는 별명, '컴도자'라는 별명은 모두 생각은 없지만 고집세며, 멈출 줄 모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네번째 지성은 없다. 서민을 보고 반말을 찍찍하며, 국회의원도 저게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최소한의 지성조차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다섯번째는 설득력이다. 문제는 이명박에게는 이 설득력도 전혀 없다는 점이다. 대화의 기본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이다. 그런데 이명박의 소통에는 듣기가 없다. 얼마 전 극장에서 대한늬우스를 상영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아이디어를 이명박이 제안했다고 한다. 참모진이 "일방적 홍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라며 반대를 하자 이명박은 "왜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느냐"며 질책했다고 한다.
참모진과 소통에도 듣기는 없다. 오로지 말하기만 있다. 이명박이 라디오 연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듣지 않고 말만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 이명박은 "왜 부정적으로만 보느냐"며 '국민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 것이 이명박의 설득력이다.
내가 이명박을 싫어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전과14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덕성을 빼도 그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두운 것은 경제때문이 아니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앞으로 3년 반동안 계속 삽질(ST, Sabjil Technology)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소망
제발 살릴 수 있을 만큼만 말아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