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노래, 아! 숭례문 by 도아
숭례문이 우리의 품을 떠난지 어언 8일이 됐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리의 전통도 지키지 못하고 사건 당사자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다. 불타기전 무인경비, 불탄후 유인경비라는 문화재 보호의 새로운 차원을 연 숭례문 화재.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점이다. 사건에 관여된 사람 중 그나마 책임을 진 사람은 유홍준 문화재청 장관이 유일하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책임은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책임 떠넘기기에 올인하고 있다.
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던 숭례문에 대한 도중 흥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바로 "숭례문 추모곡 만든 '독도는 우리땅' 작곡가 정산씨"라는 중앙일보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독도는 우리 땅",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힘내라 힘"등의 노래를 작사, 작곡한 정산씨가 곡을 쓰고 3년전 "나의 사랑 박정희"라는 노래를 발표한 심수경씨가 가사를 쓰고 노래를 했다고 한다.
아! 숭례문
출처: 아 숭례문 가사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누가누가누가 너를 불태웠느냐
까맣게 타버린 네 모습을 본 순간
내 가슴은 숯이 되었다.
미안하구나 너를 지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가슴만 태우니
아! 그리운 숭례문아
보고 싶은 나의 님이여
누가 너를 이렇게 아프게 했느냐
누가누가누가 너를 괴롭혔느냐
까맣게 타버린 네 모습을 본 순간
내 가슴도 무너져 내렸다
미안하구나 너를 지켜주지 못하고
이렇게 바라만 보다니
아! 그리운 숭례문아
돌아오라 나의 품으로
그런데 이 노래를 들어도 그리 애절함은 와닿지가 않는다. 이미 다 타버린 숭례문에 필요한 것은 애도가 아니라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분명한 책임 소재를 가리는 일이다. 그런데 벌써 책임 소재를 묻는다는 것이 물건너 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면서 수십년이 지나도 고처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고가 발생해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QAOS.com에 올라온 숭례문에 대하여...라는 글은 참 생각거리를 많이 준 글이었다. 원래는 데일리 서프에 올라온 컬럼(글, 김동렬)인데 미디어 다음에서 원본보기를 제공하지 않다 보니 출처를 알기 힘들게 된 글이었다. 이 글을 읽다 보면 흥미있는 이야기가 여러가지 나온다. 그 중 인상깊게 봤던 대목은 바로 다음 대목이다.
출처: 경제제일주의자 이명박 당선자, 숭례문을 태워먹다
부제: 부도덕한 정치인이 만연시킨 사회의 가치전도 현상배심원제도가 있는 미국이라면 그렇다. 예컨대 현대자동차가 판매한 트럭을 몰고가던 어떤 노동자가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가난한 소년을 치어서 부상을 입혔다면, 미국의 배심원들은 아무 관련이 없는 현대자동차에 배상책임을 물린다는 내용의 신문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현대자동차가 처음 엑셀을 들고 미국에 진출했을 때 미국사회의 이러한 관행을 몰라서 이런 식의 황당한 사건으로 무수히 곤욕을 치르고 거액을 물어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왜냐하면 소년은 다쳤고 누군가는 치료비를 내야 하는데 돈 나올 곳은 현대자동차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언제라도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해결책임을 묻는 것이다. 한국에 배심원제도가 있었다면 기름오염 책임은 당연히 돈이 있는 삼성에 물었을 것이다. 배심원들이 그렇게 평결을 내렸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가장 합리적인 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진다. 이 것이 진정 올바른 사회상이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은 이런 애도곡을 수백곡 만들어 바치는 것보다 우리 모두(일부 제외)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이외에도 생각할 거리를 참 많이 주는 글이다. 모두 한번씩 읽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