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철학, 과학

사람들이 나를 평할 때 붙는 수사가 있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깊은 공학도. 어찌 보면 칭찬처럼 들리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다. 분명 나에 대한 칭찬이지만 공학도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나 정도의 소양만 있어도 인문학적인 소양이 깊은 것이 되버리는 공돌이의 한계를 여기서 보기 때문이다.

종교, 철학, 과학

사람들이 나를 평할 때 붙는 수사가 있다. 인문학적인 소양이 깊은 공학도. 어찌 보면 칭찬처럼 들리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다. 분명 나에 대한 칭찬이지만 공학도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나 정도의 소양만 있어도 인문학적인 소양이 깊은 것이 되버리는 공돌이의 한계를 여기서 보기 때문이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

  • 종교: 생각하기도 귀찮으니 이 답은 저 멀리 신에게 맡기자!!!
  • 철학: 뭔가 있어 보이는 이유를 만들자!!!
  • 과학: 일단 눈에 보이게 만들자!!!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종교에서 구했던 시절은 르네상스 이전의 서구 문명이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철학에서 구했던 시절은 그리스 문명이다.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과학에서 구했던 시절은 르네상스 이후의 서구 문명, 즉, 오늘 날의 문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종교에서 구했던 르네상스 이전의 서구 문명이 인류 역사상 가장 암흑기였다는 점이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종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단순히 종교의 사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신을 기반으로 세워진 르네상스 이전의 '서구 문명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서구 문명은 신의 망상에서 벗어나 과학과 기술을 접목하며 오늘 날의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다. 세계 2차대전 이전에 인류가 이룬 발전보다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인류가 이룬 문명의 발전이 훨씬 더 크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힘, 이것이 바로 과학과 기술(공학)의 힘이다.

종교가 과학?

야훼 놀이

인터넷에서 구한 만화다. "마을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라! 딸들은 노예로 팔아라. 가축은 약탈하라. 마을에 역병을 퍼트려라. 여성들은 겁탈하라" 얼핏 보면 전쟁놀이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야훼 놀이'다. 실제 구약에는 아이들이 보기에 해로운 내용이 잔뜩 나온다. 그래서 기독경 만큼 아이들에게 해로운 책도 드물다.

그런데 공학을 하는 사람 중에는 과학의 다른 얼굴인 철학으로 빠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과학과는 전혀 다른 얼굴인 종교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특히 공학을 하는 사람이 종교에 빠지게 되면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종교를 과학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대학원 때 일이다. 같은 과를 다닌 녀석인데 이 녀석은 속된 말로 늦 바람이 든 녀석이었다. 즉, 늦은 나이에 종교에 입문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고 전자공학과 대학원을 신학대학원으로 착각하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하라는 공부도 하지 않고 같은 연구실의 구성원으로서 의무도 지키지 않는다. 오로지 아는 것은 기독경, 관심있 곳은 교회, 하는 말은 하나님이었다. 이 녀석의 말 중 가장 황당한 말이 바로 기독경과학적이라는 말이었다.

도아: '에너지는 생성, 소멸되지 않는다'. 이 것이 물리학의 대전제다.
도아: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수없이 많은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떻게 기독경이 과학적이니?
녀석: 세상에 그런 법칙이 어딨니?

중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나오는 수준의 과학도 모르면서 기독경을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다닌 대학교는 이다. 또 미션 스쿨이다. 이렇다 보니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수 없이 많은 개신교도에게 들었다. 첨단과학이라는 공학을 전공하면서 종교에 빠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첨단과학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것을 풀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과학으로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다만 우리는 푸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푸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0과 1의 차이는 아주 크다. 얼핏 보면 숫자 하나의 차이다. 그러나 '0'과 '1'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차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다. 0과 1의 차이를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로 받아드리는 것이 과학이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로 받아드리는 것이 종교다. 그래서 0은 하나님의 숫자다. 그래서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 중에는 우습지만 종교를 맹신하는 사람이 많다.

종교, IT 블로거의 금지된 영역

얼마 전 아이들에게 해로운 책에 달린 글이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후로 종교에 대한 글을 많이 올렸다. 그리고 휴지통에서 발견한 댓글.

아이들이 이 블로그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당신이 기독교를 증오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알고 싶지도 않음) 당신아이들도 당신처럼 자라는 것을 바라진 않아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네요.(진심)
컴퓨터에 대한 좋은 글이 있다고 해서 찾아오곤 하지만, 당신의 정신세계가 좋다고는 말을 못하겠군요. 이제 즐겨찾기에서 지워야 겠네요. 저질 블로그. 인정합니다.

기독경의 유해성을 적은 글이다. 그리고 신약은 구약보다 덜하지만 기독경의 내용은 아주 폭력적이다. 사람을 돌로 처죽이고 죄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아주 자랑스럽게 등장하는 책이 기독경이다. 그래서 그 내용을 적은 것을 기독교에 대한 증오로 이해한다. 여기에 아이들까지 등장시킨다. 컴퓨터에 대한 좋은 글 때문에 찾아 왔지만 종교에 대한 글 때문에 졸지에 저질 블로그가 된다. IT 블로거가 종교에 대해 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IT에 관심을 가지는 공학도들 중에는 종교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자기 성찰을 통한 믿음은 나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기독교'이든 아니면 '남녀호랑교'든, '몰몬교'든.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의 어떤 믿음도 이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믿음에 대한 가치는 두번째로 친다고 해도 그 믿음을 내가 예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신교에서 이단이라는 '여호와의 증인'도 인정하고, '통일교'도 인정한다. 내가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내가 종교를 비판하는 이유

그러나 개신교는 이런 믿음을 강요한다. 그리고 또 자기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강변한다. 개신교에 문제가 발생하면 개신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교회가 이단이기 때문이라는 말 하나로 간단히 회피한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숲과 들의 비유를 든다. 그러나 숲과 들의 비유보다 더 명확한 그림이 하나 있다.


출처: 그리스도교 비판

FreeSMS를 만든 신정훈님의 그리스도교 비판에 나오는 그림이다. 인터넷에서 구한 것이라고 하는데 출처를 몰라 신정훈님의 그리스도교 비판을 출처로 달았다. 또 이 글에는 기독교에 대한 각종 자료와 기독교 비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이 것이 기독교다. 이 것이 우리나라 개신교의 현 위상이다. 이 것이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것이 IT 블로거가 쓰지 말아야 하는 종교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이유다. 나는 적어도 그것이 종교라면 지금의 개신교 보다는 나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이야기

이전에 올린 글, IT 블로거가 쓰지 말아야하는 것 - 1. 정치의 댓글을 보면 악플에 상처받아 그 글을 쓴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악플에 상처받지 않는다. 신해철처럼 영생의 단계는 아니라고 해도 100살은 충분히 넘길 만큼 악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도아님 만큼 악플에 유연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강단있는 논리로 대응하는 분은 못봤다.

그래서 이런 평을 받는다. 다만 이 글을 쓰는 의도는 IT 블로거로서 이런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IT 블로거로서 IT 블로거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쓰겠다"는 반어법적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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