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 11. 맛없는 음식점

2007/06/11 18:23

정통일식 본

블로그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가 맛집이다. 맛있는 집이라고 하면 국내 어디든 찾아갈 때가 있었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즐긴다. <사진: 충주에 있던 정통일식 본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상당한 맛집이지만 생긴지 3달만에 사라졌다. 충주에서는 맛집도 망한다는 대표적 사례로 꼽는 집이다.>

목차

맛집 관련글

미식취향

나는 음식맛을 상당히 따지는 편이다. 집에서도 맛이 없으면 물을 말아 먹지 맛없는 음식을 그냥 먹지는 않는다. 이렇다 보니 밖에 나와 음식을 먹을 때도 맛을 많이 따진다. 물론 밖에서 먹을 때는 '맛있다' '없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부터 그 집은 가지 않는다. 음식이 맛없기로는 목동 오피스텔 식당가도 손꼽는다. 목동만 벗어나면 맛있는 집들이 많다. 반면 목동에는 맛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는 체인인 '버거킹'도 맛이 없었다. 감자 튀김은 언제나 눅눅하게 나왔다. 따라서 목동에 있을 때는 '음식점이 맛이없다'고 타박을 무척 많이 했었다. 그런데 구로에 있는 동양 공전의 창업 보육센터로 사무실을 이전한 뒤에는 목동 오피스텔의 식당가가 정말 맛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로 동양공전 주변의 식당 중 음식을 맛있게 하는 집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먼저 동양공전에 와있던 후배에게 물었다.

도아: 여기 음식은 맛있니?
후배: 아뇨. 양으로 승부해요.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동양공전에 있을 때 경험한 맛없는 집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물론 그 사이이 주인이 바뀌었을 수도 있고 맛이 더 좋아졌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몇 년전 추억'으로만 보면 된다.

맛없는 집 쟁투기

용우동의 육개장

처음에는 한우동에서 주로 먹었다. 우동집을 가지만 일본식 우동보다는 예전 이리역[1]에 팔던 그런 한국식 우동을 더 좋아했다. 따라서 우동집을 가도 우동은 거의 먹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한우동과 용우동의 우동맛은 잘 모른다. 아무튼 다른 사람은 가끔 우동을 먹어도 나는 볶음밥과 같은 밥종류를 주로 먹었다. 그런데 한우동의 밥은 맛이 없었다.

그래서 용우동으로 갔다. 그리고 특이하게 '육개장'이 있어서 육개장을 시켰다. 그런데 나온 육개장이 조금 이상했다. 일단 국물의 색깔이 투명했다. 고추 기름을 살짝 뿌린 듯 고추 가루와 고추 기름이 국물위에 둥둥 떠다녔다. 아울러 생계란이 풀어져 있었다. 먼저 육개장의 당면을 먹어 봤다. 당면이 아예 덜 익었다. 씹히지 않았다. 그래서 당면을 모두 건져내고 밥을 말아 먹었다. '맛이 없다'. 국물을 먹는데 꼭 고추가루를 섞은 물을 마시는 것 같았다. 아파 몸저 누워도 식사는 거르지 않고 꼭 다 먹는 체질인데 두 숟가락을 뜨고 먹는 것을 포기했다.

인터넷을 달군 육개장 사진이다. 생긴건 이 육개장과 거의 비슷하다. 이 육개장 보다 조금 덜 끓인 육개장이 나왔다고 보면 된다. 물론 컵밥[2] 대신 공기가 나왔다. <사진 출처: 우리 동네 배민 리뷰 1점 집 수준>

그래서 지금도 용우동이라고 하면 '맛없는 집'으로 알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본 용우동과 한우동은 꼭 친구처럼 붙어 있었다. 참고로 충주에도 용우동이 있다. 그런데 충주 용우동은 동양공전 앞 용우동 보다 훨씬 맛있었다. 따라서 체인의 문제가 아니라 점포의 문제로 보인다.

중국집의 짬뽕

사무실에서 밥 먹으러 가기 귀찮으면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다. 그러나 맛있는 중국집은 없었다. 목동 오피스텔 지하에도 중국집이 있었고 2층에도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그러나 지하 중국집에서 먹은 이유는 가격이 싸서라기 보다는 2층의 고급 음식점보다 더 맛있는 짜장면과 짬뽕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구로에서는 시켜본 십 여개의 집 중 맛있는 집은 단 하나도 없었다. 너무 맛이 없어서 일단 음식을 시키기 전에 중국집 이름과 전화 번호를 기록하고 음식을 먹은 뒤에는 다시는 시키지 않도록 표시해 두었다.

한번은 짱뽕을 시켰다. 그런데 국물이 조금 이상했다. 보통 짬뽕은 고추 기름 때문에 붉은 빛이 돈다. 그런데 '까맣다'. 홍합대신에 바지락이 들어있고 양배추 대신에 시래기[3]가 들어 있었다. 먹으면서 든 생각이 내가 꼭 이런 것 까지 먹으며 살아야 하나였다. 결국 두 젓가락을 뜨고 버렸다(평생 살면서 음식을 남긴 두번째 경험이었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볶음밥을 시켜는데 복음밥이 떡밥이었다. 구로에서 시킨 중국집 볶음밥 중 떡밥이 아닌 적은 없었다. 볶음밥은 밥을 꼬들게 만들어서 볶는게 아니라 강한 불꽃으로 밥알을 태워 꼬들 꼬들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꼬들 꼬들한 볶음밥은 고사하고 '떡밥'이라도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달온 사람과 얘기했다.

도아: 이집은 뭐가 맛있죠?
배달: 예. 육개장을 시키세요. 육개장은 맛있거든요.

도아: 중국집에 웬 육개장이요?
배달: 예. 주인 아저씨가 얼마전까지 한식집을 해서 육개장은 아주 잘하시거든요.

한식, 중식 모두 도가 텄다면 모르겠지만 가져온 볶음밥은 중국집 볶음밥도 아니고 우리식 볶음밥도 아니었다. 그런데 한식을 하던 아저씨가 무슨 속내로 중국집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언니들의 볶음밥
주변이 이러다 보니 식당 찾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집에서 저집, 점심때마다 식당을 바꿨다. 그러다가 두 명의 젊은 아주머니가 하는 식당을 찾았다. 만들기 쉬운 것이 볶음밥이라 볶음밥을 시켰다. 맛은 괜찮았다. 문제는 이 아주머니 음식 만드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따라서 이집에서 밥을 먹을 때 기다리는 시간이 1시간 30분, 먹는 시간 10분, 왕복 20분, 꼭 두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바쁠 때는 아예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담 아래 식당의 육개장

동양공전에서 구로역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담 옆에 바로 붙은 허름한 식당이 있었다. 그나마 이 식당의 음식은 그래도 맛있었다. 메뉴가 상당히 다양했지만 손님이 많아도 대부분분 20분 이내에 음식이 나왔다. 김치 비빔밥도 손님의 수를 예상해서 미리 김치를 볶아 두는 듯 시키면 바로 나왔다. 동양공전에서 거리상 가장 가깝고 맛도 있어서 주 식당을 여기로 하고 거의 매일왔다. 한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여직원이랑 똑 같이 육개장을 시켰다.

여직원: 소장님, 이게 뭐같아요.
도아: (처다본 뒤) 아주머니.
아주머니: 어머나 세상에.

바퀴벌레였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이런 일이 두번 있었다. 결국 맛은 있지만 위생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이집에서 먹는 것도 포기했다.

구내 식당

마지막으로 선택한 식당이 동양공전 구내 식당이었다. 당시 에서 급식을 하고 있었다. 라는 회사에 대한 인상이 나빠지기 전이라 구내 식당에서 먹었다. 처음에는 학생 식당에서 먹었는데 밥이 너무 부실했다. 대학 교내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학생 식당은 형편없어도 교수 식당은 괜찮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교수 식당을 찾아 가서 밥을 먹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급식 업체에서 같은 돈을 받고 음식을 파는데 교수 식당과 학생 식당의 밥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교수 식당의 밥은 나름대로 영양을 고려한 듯 반찬도 많았고 급식 역시 식당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식판을 들고 직접 떠 담는 자가 급식이었다.

동양공전 후문 식당의 동태찌개

구내 식당은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역시 어머니나 처가 해주는 밥이 아니라 계속 먹다 보니 질렸다. 정문쪽 식당은 모두 가봤지만 맛있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후배가 차를 주차하기 위해 뒷문으로 오다보니 막노동을 하시는 분이 먹는 밥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함바집은 아니겠지만 막노동을 하는 분들을 상대로 장사한다면 나름대로 밥맛이 있을 것 같아 이 집으로 갔다.

김치찌개를 시켰다. 정말 맛있는 김치찌개가 나왔다. 김치찌개의 돼지 고기는 보통 깍두기를 썰듯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야 제맛이 난다. 그런데 이렇게 썬 돼지 고기에 신 김치가 어우러져 정말 맛있었다. 아울러 인심이 좋은 듯 돼지 고기도 많고 밥도 공짜로 줬다. 이 일이 있은 뒤로 거의 매일 이집에서 밥을 먹었다. 김치찌개를 먹을 때도 있고 동태찌개를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음식맛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고 인심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며 계산도 잘하고 깍지도 않았기 때문인 듯 했다.

처음에는 받지 않던 공기밥값을 받더니 김치찌개의 고기양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원낙 푸짐하게 주기 때문에 소주 두 병에 술안주로 먹고 마지막에 밥을 먹어도 남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밥 두 공기를 먹기도 힘들어 졌다. 결정적으로 이집을 가지않게 된 것은 동태찌개다.

아주머니가 음식 맛을 낼줄 아는 듯 동태찌개를 시키면 꼭 생태찌개처럼 시원하며 칼칼한 동태찌개를 내왔다. 그런데 하루는 동태찌게를 시키니 동태조기가 함께 들어 있었다. 동태와 조기는 조리법이 다르다. 동태는 시원하기 때문에 무만 넣고 간만하면 된다. 그러나 조기는 비리기 때문에 비린 맛을 없애기위해 무 외에 다른 것을 넣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끓이면 동태의 시원한 맛이 사라진다. 그런데 동태와 조기가 함께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시원한 국물맛이 끓이면 끌일 수록 텁텁해지며 아예 먹을 수 없는 이상한 맛이 났다.

도아: 아주머니, 동태찌개를 시켰는데 왜 조기가 들어 있죠?
아주머니: 동태가 모자라서요.

나중에는 음식을 만드는 최소한의 성의도 없는 듯 보였다. 돈을 잘 주니 아마 봉으로 안듯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는 이집을 가지 않았다.

컵라면에 볶은 김치[4]

한울 꼬마 김치

꼬마김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김치의 양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신김치를 볶아 만들었기 때문에 맛은 상당히 좋다. 크기가 작기는 하지만 라면 하나에 먹기에는 딱이다. 내가 처음 본 제품과는 포장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아무튼 이 김치가 처음 맛본 한울 김치다.

결국 갈데가 없어서 택한 방법이 구내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 것이었다. 문제는 어떤 때는 익은 김치가 있는데 어떤 때는 익은 김치가 없었다. 라면에 익지 않은 김치는 고역이라 꼭 사기전에 김치 봉투가 부풀었는지, 유효기간인지 언제인지 확인하고 샀다. 그런데 어제 들어온 싱싱한 김치만 있었다. 난감했다. 그러다 보통 볶음 김치는 신김치로 만든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볶은 김치[5]를 사와서 컵라면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볶은 김치가 그냥 신김치보다 맛있었다. 다음 날 후배와 함께 매점에 가서 역시 볶음 김치를 샀다.

후배: 형. 볶음 김치는 왜?
도아: 이게 더 맛있어
후배: 잉. 그럴리가.

녀석은 그냥 김치를 사고 나는 볶음 김치를 샀다. 그리고 라면을 먹는데 익지 않은 김치 때문에 후배도 계속 먹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먹고 있던 볶음 김치를 한 젓가락 먹고는 "응, 이거 되게 맛있네. 나도 사와야지"하는 것이었다. 이때 처음 알았다. 라면에 볶음 김치를 먹어도 맛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제 주말 여행을 통해 라면에 볶음 김치라는 상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상이 동양공전 주변 음식점에서 경험한 일이다. IMF가 터진 뒤 실직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요식업에 뛰어 들었다. 문제는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상당히 뛰어든 덕에 맛있는 집을 찾기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충주도 맛집이 별로 없지만 동양공전 주변 만큼 심하지는 않다.

관련 글타래


  1. 이리와 익산이 통합하면서 익산역으로 바뀌었다. 
  2. 컵에 새겨진 "큰 그릇이 될거야"라는 문구 때문에 장난으로 알았다. 그런데 "큰 그릇이 될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진 컵(용기)은 실제 배민상회에서 팔고 있는 제품이다. 물론 사진의 제품과 같은 제품인지는 불분명하다. 사진은 컵으로 보이고 배민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용기이기 때문이다. 
  3. 보통 무청 말린 걸 시래기, 배춧잎 말린 걸 우거지라고 한다. 그러나 배춧잎, 무청 말린 걸 모두 시래기라고 해도 된다. 짬뽕에 들어있던 시래긴 배춧잎을 말린 것이었다. 
  4. 라면에 볶음 김치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고 싶다면 GS25 PB 상품인 오모리 김치찌개를 먹어보기 바란다. 팔도 볶음김치면 맛도 오모리 김치찌개와 비슷하다. 
  5. 이 때 산 김치가 한울 꼬마 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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