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게임의 제왕이라고 불렸던 기억 때문에 게임에 대한 추억이 많은 편이다. 좋은 기억도 많지만 좋지 않은 기억도 꽤 된다. 고등학교 1학년때의 일이다. 당시 학교 음악 수업에는 세종 문화회관에서 하는 음악 공연을 보고 난 뒤 감상문을 써 내는 숙제가 있었다. 학기 중 편할 때 아무 공연이나 보고 와서 공연표와 감상문을 적어 내는 것(전체 점수 중 10점)이기 때문에 보통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보고 오곤 했다.
그때에는 지금처럼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없었고 또 3학년이 아닌 이상 야간 자율학습도 없었다. 보통 수업은 오후 3시 정도면 끝났고 오후 3시 이후는 자유시간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상상도 하기 힘들겠지만 당시는 선행 학습도 없었고 학원을 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어떤 공연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들과 세종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봤다. 오후 7시 정도에 공연이 끝났다. 기껏 시내에 나온 김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가기로 했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시간~~"이라는 노래 소리가 나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9시. 당시에는 12시가 통금이라 교보문고가 조금 일찍 문을 닫았던 것 같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 차를 타기위해 종로쪽으로 걸어 오다가 다른 녀석들은 모두 가고 집이 같은 방향이었던 친구와 단 둘이 남았다. 지금도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꼭 오락실이 있었다. 당시 가장 인기있던 게임은 갤러그였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루해진 친구가 먼저 게임 한판하자고 했고 필자 역시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기로 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갤러그를 시작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금방 죽고 말았다. 친구 녀석 뒤에서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녀석은 보너스까지 타서 비행선 5개를 채우고 통 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쳐 결국 빈 자리에서 다시 한판을 했다. 다시 한판을 하면서 보너스를 타고 비행선을 다섯개를 만들자 이번에는 친구 녀석이 등뒤에서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섯개나 남은 비행선을 죽이고 가기도 힘들어 기다리는 친구를 무시하고 계속 게임을 했다.
그리고 게임을 마친 뒤 친구를 보니 녀석도 기다리기 치쳤는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또 다섯개의 비행선을 보유하고 죽지도 않고 계속한다는 점. 이런 식으로 서로 엇갈려 게임을 하다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12시가 가까웠다. 그제야 덜컹 겁이났다. 12시가 넘으면 차도 없기 때문에 집에 갈 방법이 없었다.
친구 녀석과 급히 뛰어 나와 각자 알아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친구는 종2가에서 3가 방향으로 뛰고 필자는 청계천 방향으로 뛰어갔다. 종로는 버스가 끊어졌겠지만 청계천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는 조금 더 늦게까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간신히 막차를 타고 집에 오니 12시 30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짜리 아들이 음악회를 간다고 꽤 큰 돈을 가지고 나간 뒤 밤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자 어머님께서는 걱정도 되고 화도 나셔서 빗자루를 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상황은 이미 파악한 뒤이고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속담에 따라 빗자루로 맞으면서도 웃으면 어머님을 안아 드렸다. 평생 처음해본 이 애교때문에 지은 잘못에 비해 매한대로 쉽게 끝났다.
그리고 다음 날 조회시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담임 선생님이 어제의 사건을 알고 있었다. 조회가 끝나고 친구 녀석이 와서 전말을 얘기해 주었다. 친구 녀석이 집에 오지 않자 친구 아버님이 학교로 전화를 하신 모양이었다. 지금은 회개했지만 당시 녀석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집에서는 욕도 하지 않았다. 공부도 잘했으니 속된 말로 범생이었다. 그런 범생이 음악회지 뭔지에 간다고 나가서 밤늦게 까지 들어오지 않지 화가 나신 친구 아버님이 조금 험한 말을 하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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