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로망, 면도

도루코 면도기라고 하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가 아는 면도기는 딱 하나였다. 도루코 두날 면도기. 손잡이 아래쪽 노브를 돌리면 돔구장 지붕이 열리듯 면도기 지붕이 열린다. 여기에 '칠공주' 최고의 무기로 불린 두날 면도기를 넣는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면도날이 상당히 날카롭기 때문에 조금만 실수하면 살을 벨 수 있는 추억의 면도기였다. 요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면도기는 질레트가 주이고 가끔 쉬크 제품이 눈에 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면도기가 도루코 페이션 XL이다.

목차

도루코 양날 면도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몸에 털이 없는 편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털이 없다'기 보다는 '털이 가늘다'. 어렸을 때는 머리카락이 너무 얇아 빛이 통과했다. 이 덕에 남들은 머리색을 노란색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 자라면서 머리카락은 검은색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상당히 얇다[1]. 따라서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얇아진 것으로 착각, 대신 머리 걱정을 해주곤 한다

털이 가는 것은 비단 머리카락 뿐만이 아니다. 몸에난 모든 털이 얇다. 따라서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 털이 아예 없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역시 없는 것이 아니다. 털이 얇고 바지를 입고 다니다 보니 바지에 밀려 털이 모두 잘린 것이다. 따라서 바지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허벅지 아래 쪽에는 꽤 긴털이 자라있다. 이렇다 보니 나보다 털이 조금 많은 아이 엄마는 언제나 털없는 내 다리를 부러워하곤 한다.

이 부분은 수염도 비슷하다. 자라는 속도도 늦고 또 얇다. 다른 털에 비해 비교적 자주 깎는 털이 수염이지만 수염도 얇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하루 이틀 정도 면도를 하지 않아도 크게 티 나지 않는다. 따라서 수염도 자주 깎는 편이 아니다. 오늘은 리뷰를 위해 4일만에 수염을 깎았지만 보통은 한주에 한번 정도 깎는다. 물론 일이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야할 때는 자라지 않아도 면도는 하고 나간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라 면도기 값은 얼마 들지 않는다. 보통 '4개들이 면도날*을 사면 '1~2년'은 쓴다. 털이 얇아 여러 번 써도 날이 무뎌지지 않고 자주 깎는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면도날을 두번 교체했다. 첫번째는 아이 엄마가 돼지 족발을 삶기 위해 돼지 털을 깎으며 내 면도기를 사용했을 때 갈았다. 두번째는 아이 엄마가 다리 털을 내 면도기로 깎는 바람에 교체[2]했다.

지금까지 써본 면도기는 많다. 그러나 역시 기억에 남는 면도기는 두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면도기는 "칠공주가 입으로 씹어 날렸다"는 무시 무시한 도루코 양날 면도기이다. 당시에는 주변을 봐도 도루코 양날 면도기 외에 다른 면도기를 보기에는 힘들었던 것 같다. 양쪽면에 날카로운 날[3]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아래쪽의 손잡이를 돌리면 위쪽의 뚜껑이 면도날을 물어 주는 방식이다.

아래쪽 손잡이를 돌리면 왼쪽 그림처럼 뚜껑이 열린다. 여기에 도루코 면도날을 넣고 다시 반대로 돌린 뒤 면도하는 방식이다. 내 기억으로는 상당히 날카롭고 섣부르기 면도하다가는 날에 베기 쉬운 면도기 였다.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시절 아버지의 면도기로 몰래 면도를 한 기억은 모두 있을 것이다. 그 만큼 면도는 남자들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양날 면도기를 사용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의외로 날이 날카롭다. 따라서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바로 벤다. 이렇게 솜털을 자르다 얼굴을 베고도 어른이 된 뒤 면도를 할 수 있게 되면 꼭 사용해 보고 싶었던 면도기가 도루코 양날 면도기[4]였다.

아무튼 이 당시 도루코라고 하면 칼날과 면도기의 대명사였다. 요즘은 거의 일반화된 날을 잘라 사용하던 컷터칼도 도루코였다. 그런데 막상 내가 면도를 자주해야 되는 시점에서는 도루코는 찾아 보기가 힘들었다. 쉬크(Schick), 질레트(Gillette)등 외산 면도기가 마트를 가득채웠다. 나 역시 과거에는 쉬크(Schick)를 사용하다 요즘은 질레트 퓨전 파워(Gillette Fusion Power)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에 도루코를 일부러 구입해서 사용해 봤지만 질레트 퓨전 파위의 깊고 부드럽게 깎이는 맛이 없었다. 칼날은 6중날로 날은 많았지만 질레트 퓨전 파워에 비해 절삭력이 떨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 사용하게 된 면도기가 도루코가 새롭게 출시한 도루코 페이스 XL(Dorco Pace XL)이다. 지난 번에 리뷰한 제품이 도루코 페이스 6이니 동생인 셈이다. 다만 '형 보다 나은 동생'이다. 또 이번에는 직접 구입한 면도기가 아니다 프레스블로그 체험단 행사 제품이다.

도루코 페이스 XL

외부 포장은 도루코 페이스 6과 큰 차이가 없었다. 비닐 포장은 다른 면도기 포장에 비해 조금 부드러운 재질을 사용했다. 따라서 칼로 포장을 뜯는 것이 상당히 편했다. 이런 류의 포장은 포장을 뜯는 것도 힘든 때가 많은데 이런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안쪽의 포장과 디자인도 도루코 페이스 6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부드러운 유선형의 디자인이지만 도루코 페이스 6에 비해는 색상이나 케이스 선이 조금 더 남성스러워진 느낌이었다. 또 면도날 거치대가 케이스 아래쪽에 추가되어 있었다.

손으로 쥐는 맛은 괜찮았다. 조금 묵직한 맛이 난다. 또 면도기이기 때문에 고무 손잡이가 달려있다. 쥐는 방향이 다르기는 하지만 구조는 괜찮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면도날의 뒷면이 오픈되어 있다. 따라서 면도날을 세척할 때 상당히 편하다. 다만 손잡이 고무 부분은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지않을까 싶다. 사용에 큰 문제는 없지만 돌돌이 일어난 부분들이 싸구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체험단 제품에는 도루코 페이스 면도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젤 보다는 비누를 더 자주 사용하지만 오늘은 리뷰를 위해 젤을 직접 사용해 봤다. 자주 사용한 젤이 아니라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도루코 페이스 XL의 특징

도루코 페이스 XL에 대한 특징을 적으려 인터넷을 찾아 봤다. 그런데 의외로 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간신히 찾은 곳이 페이스 XL 블로그이며, 도루코의 야심찬 신제품! PACE XL 파헤치기에에 나온 페이스 XL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세계최초 6중 면도날
    도루코 페이스 6부터 세계 처음으로 6중 면도날을 사용했다. 다만 이전 리뷰에서 알 수 있듯이 6중 면도날이라 부드럽게 면도가 되지만 절삭력은 질레트 퓨전 파워 보다 못했다. 그러나 페이스 XL은 이런 단점을 나름대로 극복했다.
  2. 얇은 면도날 기술(Narrow Blade)
    도루코 페이스 6을 사용해 보고 조금 실망했었다. 도루코라고 하면 국내 최고의 면도기 업체인데 6중 면도날로도 질레트 퓨전 파워의 절삭력 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이스 XL은 이런 부분이 상당히 보강됐다. 질레트 퓨전 파워의 깊게 잘리는 맛은 없지만 '절삭력은 괜찮았다'. 아마 얇은 면도날 기술(Narrow Blade)덕이 아닌가 싶다.
  3. 정밀면도날
    도루코 페이스 XL로 면도를 하다 보면 사각 사각 수염이 잘리는 소리(또는 느낌)가 들린다. 따라서 수염을 자르며 상당히 기분이 좋다. 이 부분은 정확히 얇은 면도날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인지 정밀 면도날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면도하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정밀 면도날은 면도기 윗 부분에 달려 있다.
  4. 피부보습 윤할밴드
    피부보습을 위한 윤할밴드는 대부분의 면도기에 포함된 부분이다. 다만 차이는 "알로에, 비타민E, 리벤더 성분이 캡슐형태로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이 부분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면도한 뒤 피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면도기를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5. 오픈 카트리지 구조
    면도날의 뒷면이 개방되어 있다. 따라서 면도를 하며 면도기를 세척해 보면 의외로 상당히 잘 닦인다. 바로 이런 개방형 구조덕으로 보인다.

면도의 맛을 느끼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 마자 일단 헤나로 염색을 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염색한 것은 아니고 면도기 리뷰를 위해 사진을 찍다 보니 흰머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면도를 위해 수염의 상태를 찍었다. 4일 정도 자란 수염이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다. 다만 아이 엄마는 수염을 7일 이상 길렀을 때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수염을 매번 만져댄다. 이때가 바로 면도할 때이기 때문에 보통 이때 면도한다.

면도기와 함께 보내 준 젤을 턱에 발랐다. 젤은 의외로 아주 적은 량을 사용해도 됐다. 화면의 사진은 젤을 두번 짜고 거품을 낸 것인데 실제 면도를 해보면 젤이 많아 면도기가 미끄러졌다. 수염이 별로 없는 사람은 젤을 한번만 짜서 거품을 내도 될 듯했다. 먼저 '오른쪽 볼 부터 면도'(화면상)를 했다. 수염이 적기는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털보'라는 별명을 가지고 계셨듯 털이 적은 것은 아니다.

도루코 페이스 XL을 사용하며 '기분이 좋았던 것'은 수염을 깎을 때 들리는 사각 사각하는 소리다. 예전에 사용하던 면도기에서는 이런 소리나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유독 도루코 페이스 XL은 이런 '사각 사각'하면서 수염이 깎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다 보니 의외로 면도하는 것이 재미있다. 예전에 서부 영화를 보면 커다란 칼을 가죽에 쑥쑥 문지른 뒤 수염을 깎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부럽기는 하지만 나처럼 수염이 가는 사람에게 이런 면도는 불가능하다.

자동 면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수염이 짧을 때는 아예 잘리지 않고 수염이 길면 잘리는 것이 아니라 수염이 먹어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루코 페이스 XL'은 질레트 퓨전 파워처럼 깊게 깎이는 맛은 없지만 '사각 사각하는 느낌으로 면도하는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큰 칼로 자르는 듯한 느낌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절삭력은 많이 보강됐지만 질레트 퓨전 파워에 비해 아직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도루코 페이스 6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여전히 여러 번 면도를 해야 원하는 만큼 깎을 수 있었다.

관련 글타래


  1. 이런 점 때문에 어렸을 때 별명은 양키였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외국 사람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 역시 이국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2. 이미 다리 털을 깎을 수 있는 면도기는 선물했다. 
  3. 그래서 영화에도 자중 등장한 면도날이다. 이 면도날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이하 18금) 
  4. 지금은 추억의 면도기가 됐다. 얼마 전까지 본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찾아 보기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