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행사
내 어렸을 때 기억 중 가장 좋지 않은 기억은 형식적인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하루 종일 땡볕에 앉아있는 일이다. 정작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내가 행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 시간은 정말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동원되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잠깐 행사에 참여한 뒤 또 다른 사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진: 최홍희 총재. 일본 가라테를 재해석해서 태권도를 창설한 최홍희 총재의 수련 장면. [사진 출처: 최홍희를 얼마나 아시나요?]>
지겨운 행사
내 어렸을 때 기억 중 가장 좋지 않은 기억은 형식적인 각종 행사에 동원되어 하루 종일 땡볕에 앉아있는 일이다. 정작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내가 행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그 시간은 정말 얼마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 일찍부터 동원되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잠깐 행사에 참여한 뒤 또 다른 사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더 싫은 기억은 행사와는 큰 관련이 없는 축사이다. 정치인 한 두명의 축사, 시장의 축사, 주최측 축사등 따분하게 정말 축사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전국 무예 대전처럼 행사 규모가 커지면 이런 축사는 더 길어진다. 그러나 정말 축하하고 싶고 행사가 잘되길 원한다면 이런 축사 보다는 행사에 신경을 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아이의 태권도 시합이 있었다. 명칭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2회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생기지 얼마되지 않은 지역 태권도 시합인 것 같다. 아이는 아침 8시부터 도장으로 갔다. 아이가 나오는 행사이니 부모가 가지 않을 수 없어서 먼저 태권도 관장님께 아이가 언제쯤 나오는지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알 수 없다'였다. 행사 진행표가 있고 각각의 행사 시간이 있기 때문에 대충 오전 오후 정도는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외였다.
태권도 이벤트
아무튼 큰 아이가 출전하기 때문에 충주 체육관으로 향했다. 시합은 품새와 격파로 나누어져 동시에 진행됐다. 격파는 기와장을 몇장 깨는지가 기준이기 때문에 심판이 많지 않았다. 다만 품새의 심판은 좀 의외였다. 최대 6명이 출전해서 품새를 겨루는 시합의 심판은 고작 3명에 불과했다. 즉, 한명이 두명의 품새 심판을 봐야 했다.
물론 품새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에 몇몇 자세만 봐도 된다. 그러나 품새는 단순히 자세를 보는 시합이 아니라 그 자세를 순서대로 얼마나 절도있게 연결하는냐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따라서 6명이 시합을 한다면 최소한 6명의 심판은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10시에 시작하는 대회이고 큰 아이는 3학년 1조로 출전하기 때문에 오전 중에 시합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큰 아이는 출전하지 않았다. 오전 10시에 시작했지만 축사가 길어져서 실제 시합은 상당히 늦게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결국 12시가 지나도 1학년들의 태권도 격파는 끝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1시 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원래 밥을 먹을 때 나오는 음식에 따라 반주를 하는 습관 때문에 이번에도 반주를 했다. 그리고 다시 아이가 출전하기를 지루하게 기다렸다. 아이가 출전하기를 기다리다 보니 격파 시합이 열리는 곳과 거리가 조금 멀었다. 그래서 시합장 가운데에 있던 행사 진행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앉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가족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귀빈이 오셨으니 자리를 비워달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일단 그 귀빈이 누군지 궁금했다. 또 얼마나 많은 귀빈이 오기에 20여석 가까운 자리를 다 비우라고 하는지도 궁금해 졌다.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나는 옮기지 않았다. 서민을 내쫓고 앉아야 하는 귀빈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행사 진행요원이 와서 자리를 비워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귀빈이 누군지 묻고 정말 '귀빈이 와서 자리가 모자라면 자리를 비워주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세명의 귀빈이 올라왔다. 충주시 관계자라고 하니 서로 안면이 있는 듯 옷을 벗고 열심히 떠드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떠드는 내용중 태권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충주시의 후원을 받은 행사이기 때문에 대회를 주최한 측에서 초청, 역시 전시 효과를 위해 잠깐 참석한 듯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뒤 제 출연분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동영상을 SBSi에서 저작권 위반으로 신고, 유튜브 계정이 잘렸습니다. 이 탓에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강좌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복구 가능한 동영상은 페이스북을 통해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드라마 백동수에 대한 글의 남은 이야기를 보기 바랍니다.
귀빈석은 남아 돌았다. 의자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시합하는 장면을 가장 넓은 시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진행 요원이 앉아 시합을 진행하고 있었다면 시합의 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앉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큰 아이 격파
아무튼 오후 부터는 2학년의 격파 시합이 이어졌다. 내가 보기에는 한 30분 정도면 한 학년의 시합이 끝나는 듯 했다. 따라서 1시 30분쯤 되자 큰 아이가 시합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잠시 뒤 큰 아이의 격파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5장을 깻고 5장을 깬 아이가 두명인 듯 다시 다시 격파를 했다. 두번째 격파에서 큰 아이는 한장밖에 깨지 못했다.
그리고 시합장을 나온 큰 아이에게는 동메달이 들려있었다. 일단 의외였다. 일반적으로 메달은 상위권 입상자에게 주는 것이다. 금메달 한 개, 은메달 한 개, 동메달 두 개. 그런데 3학년 전체조 중 하나의 조에서 3등을 했는데 동메달을 준 것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아이와 부모에 대한 보답이겠지만 나는 이런 동메달도 그리 달갑지 않다. 그 이유는 동메달의 가치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큰 아이의 격파 시합
진행석에서 10배 줌으로 잡은 것이다. 따라서 흔들림이 조금 심하다. 다만 실제 격파를 하는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처음에 5장을 깨고 다시한 격파에서는 한두장을 깬 것으로 보인다.
나도 한때 태권도를 했다. 그러나 아이를 태권도 도장에 보낸 뒤 태권도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안좋아 졌다. 그 이유는 이번 행사와 같은 전시 행사가 많고 정작 중요한 태권도에 대한 가르침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작년에 큰 아이는 1품 심사를 봤다. 1품 심사에서 큰 아이가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1품 심사에는 겨루기가 없고 발차기만으로 심사를 봤다. 그런데 큰 아이의 발차기는 단 한번도 상대의 무릅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합격을 한다. 1품 심사 역시 단순한 요식행위라는 방증이다.
품새를 해도 시발동[1]의 절도가 없었다. 이제 초등학생에게 시발동까지 바란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최소한 동작 하나 하나에 딱딱 끊어지는 절도가 조금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큰 아이의 품새에는 이런 절도가 아예없었다. 아니 품새까지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동작 하나만 봐도 절도가 없었다. 결국 1품 심사를 본뒤 아이 도장을 바꿨다. 바뀐 도장은 예전 보다는 조금 나아 녀석의 동작에 다소 절도가 생기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전시 행사를 보면 태권도에 대한 희망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계속 장난을 친다. 또 10배 줌으로 부족해서 디지탈 줌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화질은 그리 좋지 못하다.
- 품새를 할 때는 먼저 시선을 움직이고 그 다음 발을 움직인 뒤 동작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품새는 동작과 딱딱 끊어지는 절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