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긍심, 세벌식 타자기
워드프로세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아래아 한글과 같은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식 타자기를 말한다. 그런데 이 전자식 타자기도 한글과 영어를 동시에 입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1968년에 나온 기계식 타자기에서 한영 동시 타자가 가능했다. 모르긴 해도 세계 최초 2개 국어 동시 지원 타자기일 것이다. 바로 세벌식 타자기다. 세벌식은 한글 창제 원리에 맞고 속도도 빠르다. 장시간 입력시 손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덤으로 타자할 때 리듬감까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타자기가 무식한 군사정권에 의해 사장됐다. 한글 기계화. 지금이라도 세벌식, 조합형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세벌식의 역사, 두벌식의 단점, 민족의 자긍심을 살린 세벌식 타자기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목차
세계 유일의 세벌식 타자기
요즘도 학교에서 이렇게 많은 과목을 가르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상당히 많은 과목을 들어야 했다. 남학생의 경우 대부분의 학교에서 공업이나 상업중 하나를 배워야 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상업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상업에는 당연히 상업 부기와 타자가 나온다. 그리고 타자를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지만 타자기의 역사도 상업책에 나온다. 이 상업책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타자기가 바로 공병우 타자기다.
물론 1914년 이원익이 개발한 타자기가 있지만 공병우 타자기를 우리나라 최초의 타자기로 본 이유는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실용적 타자기로 최초였기 때문이다. 공병우 타자기는 영어 타자기 아래쪽에 한글 자소를 붙여 만든 타자기였다. 이렇기 때문에 공병우 타자기는 기계식 타자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글과 영어를 동시에 입력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기계식 타자기 였다[1].
직결식 글꼴
영문 운영체제에 글꼴만 설치하면 한글을 입력할 수 있다. 즉, 오토마타가 필요없다. 세벌식의 원리와 장점은 직결식 글꼴 하나에서도 드러난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은 영문 윈도우에서 한글 입력기 없이 한글을 입력할 수 있을까?을 보기 바란다.
그러나 공병우 타자기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한글과 영어을 동시에 입력할 수 있는 타자기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어제 올린 글(직결식 글꼴)에서 알 수 있듯이 세벌식 타자기는 오토마타가 없어도 한글 입력이 가능한 타자기이다. 즉 초성, 중성, 종성의 위치를 다르게하고 이 초중종성을 모아 글자를 완성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식을 이용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네모꼴 글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꼭 빨래줄에 빨래가 걸린 듯 들쭉 날쭉해진다. 이렇기 때문에 세벌식 글꼴을 빨래줄 글꼴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빨래줄 글꼴이 공병우 타자기의 앞길을 막는 단초를 제공한다. 한글 타자기가 대중화되면서 공병우 타자기는 날개 돋힌듯 팔려 나갔다. 그러나 한글 기계화에 무식한 군사 정부는 공병우 타자기의 글자꼴이 예쁘지 않다고 4벌식 타자기를 국가 표준으로 정한다. 4벌식은 초성, 종성과 중성을 두개둔 타자기였다. 받침이 있는 중성과 없는 중성으로 구분했기 때문에 들쭉 날쭉한 빨래줄 글꼴에 비해 현재 사용되는 대부분의 한글 글꼴과 마찬가지로 네모에 한글을 가둔 구조[2]였다. 그러나 4벌식 타자기는 윗글쇠를 1% 누르는 세벌식에 비해 윗글쇠를 누르는 비율이 10%나 되기 때문에 타자 속도에서는 거의 비교할 수 없는 타자기였다. 여기에 자판 수까지 많다.
국가 표준이 4벌식으로 정해짐에 따라 타자기 회사는 어려움에 처해진다. 이때 정치권 실세 모임인 중경재단[3]에서 공병우 타자기 회사를 인수, 발전 시켜주겠다고 접근한다. 회사 운영 보다는 한글 기계화에 관심이 많았던 공병우 박사는 회사를 선뜻 넘겨 준다. 그러나 중경재단에서 공병우 박사의 병원과 집을 담보로 많은 빚을 얻어쓰고 부도를 낸다. 이덕에 타자기 회사는 망하고 공병우 박사는 전 재산을 날리게 된다.
이런 일을 겪은 공병우 박사는 군사독재 정권과 맞서 싸우다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서 컴퓨터 공부와 연구에 전념하던 공병우 박사는 민주화 바람이 불었던 1988년에 귀국 한글 문화원을 세우고 다시 한글 기계화 운동을 하게된다. 내가 안국동에 있던 한글 문화원을 찾아간 것이 1990년이니 한글 문화원에 설립된지 2년 정도 됐을 때이다[4].
두벌식의 문제점
세벌식을 처음 배울 때 아래아 한글의 화면을 잡아 인쇄한 뒤 코팅해서 가지고 다녔다. 물론 이 자판배열 뒤에는 아래아 한글의 단축키를 빼곡히 인쇄해 두었다. 워드 작업을 해보면 알 수 있지만 이 단축키는 워드 작업을 하는데 정말 효과적이다. 또 두벌식이 자판수가 적어서 빨리 배울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타자는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익히는 것이다. 자판수는 '부담'은 되도 배우는 속도와큰 상관은 없다. [출처: 추억의 프로그램 6. 한메 타자교사]
아무튼 공병우 박사가 망명가있는 동안 '5공화국 정부는 한글 기계화를 위해 두벌식 타자기'를 개발한다. 문제는 윗글쇠를 1% 누르는 세벌식, 10%를 누르는 4벌식에 비해 "두벌식 타자기는 윗글쇠를 20%나 누르는 타자기였다". 그래서 나는 두벌식을 한가지 장점에 백가지 단점을 가진 자판이라고 한다. 당연히 시장 경쟁을 했다면 사라질 타자기지만 정부에서 표준으로 채택함으로서 오늘날까지 국가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도깨비불 현상
도깨비불 현상에 대한 글은 세벌식 사용자의 애환이라는 글에서 한번 적은 적이 있다. 일단 내가 이 도깨비불 현상을 인식하게된 것부터 이야기 하겠다. 내가 세벌식 자판을 처음 접한 것은 1990년이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벌식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프로젝트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타자를 한 두 시간 정도 치면 갑자기 화가 나고 무엇인가 미칠 것 같은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렇지만 마땅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세벌식과 두벌식을 비교한 글을 KETEL[5]에서 읽고 이러한 증상이 두벌식의 도깨비불 현상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당시 안국동 근처에 있던 한글 문화원을 찾아가 세벌식 딱지를 받아와 자판에 붙이고 그날 바로 세벌식으로 바꿨다[6].
또깨비불 현상은 두벌식에서 항상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가나'를 친다고 하면 두벌식은 '간'을 친 뒤 'ㅏ'를 치면 'ㄴ받침'이 공간 이동을 하듯 순간 옆으로 이동하며 '간ㅏ'가 '가나'로 바뀐다. 깜박이가 번뜩이며 이동하기 때문에 도깨비불 현상이라고 한다. 또 이 도깨비불 현상은 심리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물론 이 현상은 독수리타법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문서를 보고 타자를 하는 타자 고수에게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두부류는 모두 모니터를 보지 않고 타자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판을 다외워서 독수리 타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지만 아직 타자에 익숙하지 않아 문서만 보고 타자 할 수 없는 사람, 즉 모니터를 보고 타자하는 사람들만 경험한다.
두벌식의 윗글쇠 비중이 20%?
현재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두벌식 타자기가 윗글쇠를 많이 눌러야 한다"는 점에 다소 의아할 것이다. 더구나 세벌식은 1%, 네벌식은 10%인데 두벌식은 20%라는 것에 선뜻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오토마타를 사용하는 컴퓨터도 두벌식에서 윗글쇠를 누르는 횟수가 더 많다[7]. 그러나 기계식은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다.
두벌식은 초성과 종성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초성, 종성 한벌', '중성 한벌'로 구성된다. 예를들어 'ㄴ'을 입력하면 이 'ㄴ'이 초성인지 종성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컴퓨터는 '간'을 입력한 뒤 자음이 나오면 'ㄴ'은 종성, 모음이 나오면 'ㄴ'은 초성으로 하는 오토마타를 사용한다. 그러나 기계식에는 이런 오토마타 자체가 없다. 따라서 초성 'ㄴ'은 그냥 입력하면 되지만 종성 'ㄴ'은 윗글쇠를 누르고 눌러야 한다. 따라서 세벌식에 비해 윗글쇠를 누르는 횟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또 이런 문제점 때문에 두벌식은 타자기, 워드 프로세서, 컴퓨터의 자판이 모두 다르다.
워드 프로세서도 한영 동타가 힘든 두벌식
타자기 다음에 등장한 것이 워드 프로세서다. 아마 써본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에 모든 문과생의 꿈이 바로 워드 프로세서였다. 학교에 다니면서 누나와 혼인을 했던 매형도 워드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두벌식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워드 프로세서는 한글을 입력할 때와 영어를 입력할 때 휠을 교체해야 한다. 즉 타자를 하면서 한영을 동시에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먼저 입력한 뒤 휠을 교체한다[8]. 그리고 한글을 입력한 종이를 다시 앞으로 당긴 뒤 비워둔 자리에 영어를 입력한다.
워드 프로세서라고 해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매형이 가지고 있던 워드 프로세서는 한글과 영어 대문자는 휠을 교체하지 않고 입력이 가능했었다. 아울러 이 기술이 LG의 특허라고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굳이 워드 프로세서까지 가지 않아도 "세벌식은 1968년에 이미 한영 동시 타자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직결식 글꼴에서 나오듯 오토마타가 필요없는 입력 방식 때문이었다. 한글 창제 원리를 그대로 따른 세벌식 타자기의 우수성은 여기서도 그대로 빛난다.
민족의 자긍심을 살린 세벌식 타자기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상당히 여러 디자인으로 개발, 판매된 세벌식 타자기다. 정부에서 4벌식을 표준으로 밀다 5공 정부시절 두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 한글 기계화운동의 선구자, 공병우 박사]
꽤 오래 전 KETEL에서 읽었던 글이다. 미국 교포가 올린 글이었다. 타자기 하나가 민족의 자긍심을 살린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간 교포에게 이웃이 찾아 왔다. 그리고 내 뱉은 첫 마디. "니들도 타자기가 있니? 일본 타자기 깎아서 쓰니?"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교포는 한국에서 가져온 세벌식 타자기를 꺼내 이 것이 우리 타자기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덤으로 아래 글쇠를 이용해서 "한글과 영어가 동시에 타자되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때 "이웃집 사람의 놀라는 표정과 반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2개 국어를 동시에 타자할 수 있는 타자기는 없다. 그런 타자기가 필요없어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들 필요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한영이 동시에 되는 타자기는 세벌식 타자기가 유일하다.
나는 두벌식을 한가지 장점에 백가지 단점을 가진 자판[9]이라고 규정한다. 실제 두벌식의 단점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세벌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미 익힌 것을 바꾸기 힘들기도 하고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세벌식이라는 두벌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우수한 자판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 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세벌식도 표준 자판이 되는 것이다. 세벌식만 표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이야기
- 쿼티
-
자판의 QWERTY를 그대로 읽어 쿼티, 퀄타이 자판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이 쿼티 자판과 쿼티 자판의 연타율을 줄인 드보락 자판이 함께 표준으로 사용된다. 타자 속도를 떨어트리는 주범은 한손 연타[10]이이다. 예를들어 'Attact'라는 단어는 쿼티 자판을 이용하면 모두 왼손 연타를 해야 한다. 따라서 쿼티는 타자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쿼티와 세벌식을 비교하면 세벌식이 쿼티 보다 빠르다.
그래서 쿼티 자판을 비난하는 사람은 "원숭이에게 영어 로마자 26자를 주고 나오는 순서대로 배치해도 쿼티 자판 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한다. 사실이다. 그러나 쿼티 자판은 기본적으로 지금처럼 열손가락을 사용해서 타자하기위해 개발된 자판이 아니라는 점이다. 쿼티 자판이 개발될 당시에는 한손, 한손가락 타자가 일반적이었다. 이것을 두손, 두손가락으로 타자하기 위해 개발된 자판이 쿼티다. 따라서 누가 쿼티 자판으로 독수리 타법을 구사한다면 그 사람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자판의 개발 목적에 가장 부합한 타자를 한다고 칭찬 해주어야 한다.
- 음악같은 타자
- 세벌식에는 연타가 거의 없다. 따라서 세벌식으로 타자를 하면 마치 경쾌한 음악처럼 운율이 생긴다. 그래서 내가 타자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꼭 무슨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세벌식을 사용하면 양손의 균형이 올라가고 이것이 조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
다음은 공병우 박사님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의 제 8장 '고독한 투쟁' 157~161쪽에서 뽑아 요약한 글이다.
20여 년 전 나는 정부에서 정한 4벌식 표준자판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히기 위해, 임 종철 선생님과 함께 타자 경기 대회와 세미나를 열고 연구 보고서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다. 그러자 정부는 글자판 통일을 위한 심포지엄을 방해하거나 자판 비교연구를 발표한 잡지사를 폐간하는 등 심한 탄압을 했다. 이렇게 탄압을 해도 소용이 없자 과학기술처 장관이 우리집으로 와서 나를 회유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문화상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장관에게 문화상을 사양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에 고발을 했는지, 장관을 만난 지 며칠 후 남산에서 왔다는 두 사나이가 나를 찾아왔다.
"중앙 정보부에서 왔는데 잠깐 갑시다.!" 나는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로 끌려 갔다.
먼저 사진실로 가서 앞가슴에 신문에서 보던 것과 같은 숫자판을 붙든 채 사진을 찍었다. 마치 간첩과 꼭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5~6명의 젊은이들이 책상에 둘러 앉아 있는 사무실로 끌려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왜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는가?"하고 질문을 했다. 과학기술처에서 잘못한 점에 대해 내가 몇 마디 말하자, 그 방에 있던 젊은 사람들이 일제히 "이 새끼, 여기가 어딘데, 정부가 잘못한 것을 따따부따하는 거야?"하고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은 그날 심문을 마치고는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갔더니 그 사람들의 태도가 아주 달라져 있었다. 그들은 시중에 나가서 타자학원을 돌아다니면서 3벌식과 4벌식 타자기에 대해 알아 본 모양이었다.
세벌식은 한 달만 배우면 전문 타자수로 취직이 가능하지만, 4벌식은 3개월 교육을 받아야 취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통신과에 가서 3벌식은 영문 타자기보다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북한과 외국에서 들어 오는 라디오 방송을 직접 받아 찍는 속기 타자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반면 4벌식은 영문보다 느린 타자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벌식이 훨씬 더 우수하다는 것을 조사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처가 잘못하고 공박사님을 고발했습니다. 과학을 위해서 앞으로 더욱 투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과장님 앞에 가서는 정부 시책에 반대하지 않겠다고만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 사건을 무사히 끝낼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부탁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풀려 나왔다.
정부 시책을 반대하다가 고발을 당한 내가, 애국애족하는 사람들이 끌려 가면 고문으로 죽거나 병신이 되어 나오던 남산에서 '이 새끼' 소리를 듣다가 무사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이고 고성능인 세벌식 한글 기계의 진리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로,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진리의 격언처럼, 내가 주장한 타자기가 칼을 물리치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독일 사람들은 윗글쇠를 3% 누르는 로마자 자판을 시간과 정력 낭비라면서 '대문자 안 쓰기' 운동을 하는데, 3공 군사 정부가 1% 누르는 3벌식 자판을 버리고 10% 누르는 4벌식 자판을 만들어 놓더니, 5공 군사 정부는 4벌식을 버리고, 윗글쇠를 20%나 누르는 괴물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한글은 나날이 죽어가고 한자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는 오늘의 현실을 볼 때, 선진국의 문화 침략으로 한글은 한자와 로마자의 시녀 노릇을 하게 될 것만 같다. 윗글쇠를 1% 누르는 글자판으로 만든 한글 기계들, 특히 타자기(수동ㆍ전자)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한자의 보급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전거 붐이 일어나듯이, 먼저 타자기의 붐이 일어나서 국민 모두가 기계로 글자를 치게 되어야만 한글도 살고 나라도 산다고 믿는다(편집자 주).
- 1968년에 개발된 공병우 타자기를 말한다. ↩
- 한글을 네모에 가두는 발상은 한글 기계화가 일본 타자기를 근간으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한글을 네모에 가두면 중성에 대한 구분이 힘들어져 가독성이 더 떨어진다. ↩
- 김재규, 김종필등 정치권 실세로 구성된 재단이다. ↩
- 대학교 4학년 때 컴퓨터를 구입했고 이때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두벌식을 배웠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작성하다 보면 가슴이 두근 거리고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빠졌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두벌식의 도깨비불 현상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세벌식 사용자의 애환을 참조하기 바란다. ↩
- HITEL의 전신이다. 한국경제신문에서 무료로 운영하던 KETEL을 KT에서 인수, KOL, KOTEL 등의 이름을 사용하다 HITEL로 굳어졌다. ↩
- 이때 타자를 배우기위해 사용한 프로그램이 한메 타자교사 1.0이었다. ↩
- 두벌식에서 초성과 종성은 왼손, 중성은 오른손이 담당한다. 이 때문에 왼손 타자 비율이 오른손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두벌식을 왼손잡이 자판이라고 한다. ↩
- 이런 방식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기술을 개발하기 힘들고 그래서 두벌식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는 업계의 로비가 있었다고 한다. ↩
- 그 한가지 장점도 정확하게는 장점이 아니다. 자판은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판의 수가 적다고 해서 타자를 빨리 배우는 것은 아니다. 배우려는 의지를 조금 덜 꺽을 뿐. ↩
- 연타 중 타자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3연타 이상을 말한다. 두벌식 사용자는 알 수 있지만 두벌식 3연타도 만만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