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한 첫번째 수동 카메라가 바로 PENTAX ME이다. 완전한 수동이 아니라 반자동이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조리개등을 조절해야하는 수동 카메라이지만 셧터 속도는 자동으로 할 수 있는 카메라이다.
이전 글에도 있지만 아버님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따라서 어머님과 딱 차비만 들고 상경하셨다. 어찌보면 끊기 힘든 가난의 사슬을 끊게 해준 것이 바로 중동 건설붐이었다. 배운 것 없이 상경하신 아버님이시지만 손재주가 좋으셔서 목수일을 하셨고 아버님도 이 중동 건설붐을 타고 당시 동아 건설의 노동자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오셨다.
두번을 다녀 오셨는데 두번째로 사우디를 방문하셨을 때 사오신 카메라가 바로 이 PENTAX ME이다. 요즘은 카메라가 없는 집이 없지만 당시에는 카메라를 가지고 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카메라는 귀한 물건이었다. 아버님이 카메라를 사오셨을 때는 삼각대를 비롯한 모든 부품이 다 있었다. 다만 카메라만 정품이고 삼각대, 플래시 등은 정품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카메라는 내가 사진을 찍을 줄 알게된 고등학교 1학년 부터 계속 사용한 카메라이다. 놀러갈 때는 항상 가지고 다닌 카메라이지만 내가 사용하는 동안 한번의 고장도 없었던 카메라이기도 하다. 누나 네에서 큰조카의 사진을 찍어 준다고 가져갔다가 고장을 낸적은 있지만 그외에는 고장없이 꽤 오랜 기간 사용한 카메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카메라를 사용한 것은 우영이가 태어났을 때인 것 같다. 우영이가 태어나고 첫 사진을 이 카메라로 찍었다. 문제는 카메라가 오래되고 수동이다 보니 기계치인 우엉맘은 사용하 수 없다는 점.
그래서 자동으로 찍을 수 있는 작고 싸며, 줌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구입했는데 이 카메라가 바로 삼성 카메라였다. 내가 사용하기에 오히려 더 불편한 카메라였지만 우엉맘 때문에 이 필카를 계속 사용했다. 따라서 우영이 첫 사진을 찍어 준 뒤로 이 카메라를 사용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또 이 카메라는 아버님이 남겨주신 유일한 유품이다. 아버님은 무소유의 개념으로 살아 오신 것은 아니지만 워낙 당신을 위한 투자를 안하시는 분이라 PENTAX ME만 남았다. 장농에 처 박혀 있는 녀석을 꺼내 보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디카에 비할 수 없는 묵직함. 긴 세월을 견뎌온 투박한 예스러움. 그리고 디카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정겨움이 느껴졌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ME 보다는 ME Super가 더 많다. ME의 한단계 상위 기종인 듯하다. 그러나 아버님께서 카메라를 구입하실 당시에는 ME 기종이 가장 신형이었다. 20년이 지났고 따로 관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태는 아직도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