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용자다. 컴퓨터를 처음 배웠을 때에는 두벌식을 사용했다. 대학원에서 장시간 워드 작업을 할때였다. 이유없는 짜증이 밀려오고 심리적인 불안이 엄습해 왔다주1. 그러나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케텔주2에서 이런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두벌식의 도깨비불 현상주3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더 좋은 것이 나오면 바로 바꾼다주4. 이렇게 바꾸지 못하는 유일한 대상은 아마 사람뿐일 것이다. 이런 습관때문에 그날로 당장 안국동에 있던 한글문화원주5을 방문했다. 에서 세벌식 딱지를 나눠 주었기 때문주6이다.

가지고온 딱지를 키보드에 붙이고 연습을 했지만 실력은 도통 늘지가 않았다. 타자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때했다. 당시에도 두벌식 타자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은 허접하지만 있었다. 그러나 은 없었다.

한겨레신문인지 아니면 다른 신문인지 모르겠지만 타자를 가르치는 한메 타자교사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세벌식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당시 가격으로 만오천원 정도 했었는데 빌어먹는 학생이라 돈이 없었다.

그런데 옆방의 교수님주7이 아이들에게 PC일반을 가르치면서 타자연습을 하려고 한메 타자교사를 구매했다주8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처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폭넓던 시절도 아니고 책도 복사판이 판치던 시절이라 옆방 교수님의 양해를 구하고 프로그램을 복사하고 매뉴얼을 빌려왔다.

매뉴얼 복사 역시 공대 사무실에서 지도교수님 이름으로 했다. 따라서 돈한푼 들이지 않고 프로그램과 매뉴얼을 구한 셈이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메 타자교사 1.0은 세벌식만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세벌식 보급에 공이 있는 프로그램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아래아 한글한메 타자교사를 꼽는다주9주10.

아무튼 매뉴얼에 따라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자리연습을 했다. 기본자리가 익숙해지면 다음으로 넘어갔다. 내 공부법은 한번할 때 철저히 하는 것이다주11. 따라서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라면 다음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알아도 넘어기자 않는다. 하루에 한 20분씩 자리연습을 했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아래아 한글의 자판 배열을 인쇄한 종이를 보면서 세벌식으로 연습했다. 이렇게 한 20일 정도 하자 타자속도는 예전에 쓰던 두벌식과 가까운 속도가 났다주12. 타자속도가 어느 정도 나오자 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타자게임의 명작 베네치아였다.


아래아 한글의 자판배열

이 화면을 잡아 인쇄한 뒤 코팅해서 가지고 다녔다. 물론 이 자판배열 뒤에는 아래아 한글의 단축키를 빼곡히 인쇄해 두었다. 워드 작업을 해보면 알 수 있지만 이 단축키는 워드 작업을 하는데 정말 효과적이다.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그 배경이다. 하늘에서는 산성비(단어)주13가 내린다. 산성비를 맞으면 베네치아를 지탱하는 벽돌이 산화되 물에 잠긴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빨리 타자를 쳐서 산성비를 제거해야 한다. 스토리도 간단하고 규칙도 간단한 게임이지만 이 게임은 상당히 중독성있는 게임이었다.


베네치아 게임 스토리

1.0에는 이 스토리가 없었던 것 같다. 매뉴얼에만 있었는데 판올림하면서 스토리가 추가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리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에서는 거의 매일 타자연습 보다는 베네치아 게임을 했다. 베네치아 게임을 하면 평균타수, 오타, 점수등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데이타가 많이 제공되기 때문에 실력을 측정하는데에도 상당히 도움이 됐다.

처음 세벌식만 지원하던 한메 타자교사는 국내에서는 드믄 "제대로된 타자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베네치아라는 인기 있는 게임덕에 무명의 소프트웨어 회사주14 프로그램치고는 상당한 이름을 떨친다. 그리고 판번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판올림을 하면서 두벌식도 지원하게 된다.

이때 부터는 각 연구실에 베네치아 열풍이 일었다. 다들 타자연습은 뒷전이고 모두 베네치아로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내는지가 관건이었다. 함께 사용하는 PC라면 1등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올리려고 매달렸다. 이 뒤에 유사한 타자 프로그램들이 등장하지만 아직까지 한메 타자교사처럼 재미있게한 타자 프로그램은 없다.

최근 세벌식 390에서 세벌식 최종으로 바꾸면서 다시 타자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그러나 예전의 한메 타자교사와 같은 맛을 주는 프로그램은 사실 찾기 힘들었다. 한메 타자교사의 윈도우판도 있지만 향수 때문인지 도스용 한메 타자교사가 더 나아 보였다.


시작화면

1.0에서는 흑백이었는데 어느새 컬러로 바뀌었다. HJC와 HTT-는 등록자와 시리얼 번호다. 또 세벌식 글꼴과 유사한 한메소프트 로고가 아래쪽에 보인다.


기본자리 익힘

외국에서 나온 타자교사 프로그램은 이때만 해도 손가락의 움직임까지 보여 주었다. 그러나 한메 타자교사는 삼각형으로 어떤 손가락인지만 알려 준다.


기본자리 연습

기본자리를 익혔으면 실제 단어를 입력함으로서 자리를 연습한다. 이때에는 타수와 정확도 최고 속도가 함께 출력된다.


베네치아 게임 시작

이 화면을 잡은 이유는 왼쪽 아래의 사이띄개를 누르세요!라는 문구 때문이다. 스페이스가 익숙한 요즘이지만 당시에는 이렇게 컴퓨터 용어의 한글화가 한참이었다.


명작 베네치아 게임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베네치아 게임이다. 위에서 떨어지는 단어를 입력한 뒤 사이띄개를 누르면 단어가 사라진다. 색깔이 다른 아이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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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법은 추억의 게임 3. 브릭스를 참조하기 바란다.

관련 글타래
잠깐만
  1.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판을 보고 치는 단계나 종이를 보고 치는 단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다.
  2. 나중에 KOL, KOTEL, HITEL등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현재는 서비스가 중지된 상태다.
  3. '가나'를 친다고 할때 '간ㅏ'를 치면 받침 'ㄴ'이 순간적으로 옆으로 이동해서 '간ㅏ'가 '가나'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4. 그래서 장시간 사용한 프로그램은 정말 많지 않다.
  5. 현재의 한글문화원은 공병우 박사님이 계실 당시의 한국문화원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6. 이때 한 백장 정도 얻어와서 대학원내내 홍보한 덕에 거의 백장을 다 소모했다. 이중 약 30% 정도가 세벌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약 30명 정도의 동지를 만든 셈이다.
  7. 내가 학부 3학년때 무능교수 퇴진운동으로 쫓아낸 교수다. 물론 나는 학회임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퇴진운동을 한 사람 중 하나다. 당시 "학부교육은 절대 시키지 않겠다"는 학교의 확답을 듣고 퇴진운동을 끝낸 기억이 있다.
  8. 학부생들에게 PC일반을 가르치는 교수지만 아는 도스 명령어는 dir, cd가 전부였다. 수업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간다.
  9. 아래아 한글한메 타자교사 개발진 중 상당수가 우리나라 벤처산업을 이끈 주역이 되었다.
  10. 아래아 한글에 이어 한메 타자교사를 쓰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11. 무엇이든 두번 하는 것을 싫어한다.
  12. 두벌식을 사용할 때에는 정식으로 타자를 배운 것이 아니다. 자판을 보고 치는 독수리 타법이었기 때문에 빨라야 200타정도가 나왔다. 참고로 독수리 타법으로 500타 가까이 나오는 후배가 있었다.
  13. 내 기억으로는 산성비였던 것 같은데 한메 타자교사 3.0에는 바이러스 군단으로 나온다.
  14. 한메 타자교사를 출시할 때에는 무명이지만 얼마 뒤 윈도우용 한메한글을 출시함으로서 국내 한글 소프트웨어의 이인자로 등극한다. Microsoft의 확장 완성형 체제가 굳어지지 않았다면 한메소프트도 한글과 컴퓨터 만큼 성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