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천주교

처음 해보는 연도였다. 그러나 그 연도가 천주교 신자가 보기에도 너무 자연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내 연도가 자연스러운 이유는 간단했다. 나 역시 내 종교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비단 천주교에서만 받은 것은 아니다. 주변에 개념있는 개신교도를 만나면 항상 듣는 이야기가 '어느 기독교인들 보다 더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와 기독교

블로그의 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나는 기독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또 무개념의 개신교도는 아주 싫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 반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분명 무신론자다. 기도를 해도 돌아가신 아버님,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해도 신에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아주 종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기독교도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진정한 기독교도 같다는 이야기이다.

내 부모님은 두분 모두 천주교 신자다. 동생도 천주교 신자고, 성당은 거의 나가지 않지만 누나도 세레를 받은 천주교 신자다. 물론 부모님은 처음 부터 천주교를 믿은 분은 아니다. 불교를 믿으시다가 산속의 절을 매번 찾아가기 힘드셔서 천주교로 바꾸신 경우다. 부모님이 천주교로 종교를 바꾼 이유도 아주 간단하다. '불교와 비슷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기독경과 불경은 그 근간을 보면 아주 비슷하다. 기독경이 사랑이 근간이라면 불경은 자비가 그 근간이다.

인상적인 천주교 신자

기독경은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불교가 가지고 있는 포용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다른 어떤 나라의 천주교 보다 불교와 비슷하다. 기독경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개신교와는 다르다. 개신교는 기독경의 텍스트 그 자체가 한글자도 틀리지 않는 진리로 보지만 천주교에서 기독경은 탐구를 통해 깨닫는 불교의 경전과 비슷하게 본다. 개신교도는 불사에 참석하는 척하면서 기와에 십자가를 세긴다. 그러나 천주교도는 그 불사가 잘되기를 기원한다.

천년고찰 낙산사에서 발견한 종교

"청주에서 온 천주교 신자입니다. 하루 속희 복원되기를 기원합니다. 인성희. 국민의 성원으로 우리는 하나. 대~한민국..."

나는 이것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 종교가 추구해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와를 발견하고 감동을 받았다. 척을 지고 배척하는 것을 일로 삼아왔다는 기독교의 다른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나와 천주교

아버님이 돌아 가셨을 때 일이다. 천주교에서는 신자가 돌아가시면 연도를 한다. 연도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간단히 설명하면 천주교를 믿는 교우들이 돌아가신 분의 장례식장을 방문해서 돌아가신 분이 하느님께 편하게 가실 수 있도록 죽음을 인도하는 의식이다. 돌아가신 날 부터 발인전까지 시간이 되시는 교우들이 오셔서 기독경을 함께 읽고 가신다. 어머님께서 가장 걱정하신 부분은 바로 연도였다. "기독교를 그토록 싫어하는 아들이 이 연도를 잘 할 수 있을까", "거부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었다.

나는 종교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강요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 믿음.

그래서 나는 내 믿음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아울러 그런 믿음을 강요 받는 것도 싫어한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내 믿음은 아버님에 대한 효였고 그래서 나는 아무런 부담없이 연도를 할 수 있었다. 연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연도에 오신 한 신자분께서 넌즈시 말을 건네셨다.

신자: 세례 받으셨어요?
도아: 아뇨.
신자: 예. 그런데 연도를 너무 잘하셔서.

처음 해보는 연도였다. 그러나 그 연도가 천주교 신자가 보기에도 너무 자연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내 연도가 자연스러운 이유는 간단했다. 나 역시 내 종교를 그대로 실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비단 천주교에서만 받은 것은 아니다. 주변에 개념있는 개신교도를 만나면 항상 듣는 이야기가 '어느 기독교인들 보다 더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도아님은 처음부터 안믿으셨던 분이신가요? 믿지 않는분인데도 참 건강한 기독교관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모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이다.

나는 종교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강요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 믿음.

나는 종교에서 이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절에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생각종교라는 이름으로 가두고 맹종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내 믿음이기 때문이다. 내 믿음이 옳다면 나와 같은 종교관을 가질 사람이 많아 질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종교를 알리지 않는다. 이것이 40평생을 살아온 내 종교이며, 앞으로 가지고 갈 내 종교다.

관련 글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