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매니아적인 성격이 강한 사람이 있다. 내가 그렇다. 따라서 이것 저것 수집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당시 유행하던 우표수집에 열중이었다. 우표를 발표하는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광화문 중앙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매니아적인 성격은 있지만 아예 푹 빠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었다. 따라서 이런 성향은 항상 있었지만 그 대상이 매번 바뀌며,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 수집한 우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세기로 힘들 정도였지만 귀한 우표(시골에서 찾은)가 많다는 것을 안 친구(어떤 녀석인지는 모름)가 우표책을 훔처간 덕에 우표책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대학 시절에는 가장 열심히 모았던 것이 담배 갑이다. 요즘 담배 갑은 종류에 따라 모두 같지만 당시 88은 답배갑에는 여러 종류의 홍보성 광고가 실려있었고 바로 이런 담배갑을 모았다. 사진 액자 서너개 분량으로 모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뭐하는 짓이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껏 모은 담배갑도 모두 버렸다.

대학원 시절 가장 많이 모은 것은 책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자료는 모두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타교 도서관이나 외국 도서관에 복사 신청을 해야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전공에 관련된 책을 발견하면 꼭 구입을 하곤했다. 워낙 많은 책을 구입하기 때문에 복사판을 판매하는 아저씨들도 다른 사람에 비해 보통 20~30% 정도 책값을 깍아 주었다. 이렇게 모은 전공관련 서적이 한 3000권 정도 되니 책값으로 들인 돈만해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이 책 중 절반 정도는 본가에 있고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은 충주로 이사하면서 집이 좁아 모두 버렸다. 이때 버린 책이 1500권 정도 되는 것 같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모으기 시작한 것이 영화와 MP3,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이야 웹하드, P2P 등 이런 자료를 구하려고 하면 바로 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익명 FTP 사이트를 스캐닝해서 구하고 또 익명 FTP 사이트에 올라온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 삭제되기 때문에 꼭 목슴을 걸고 내려 받아 CD를 구웠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열심히 모으다 보니 도대체 쓰지도 보지도 듣지도 않을 이런 것을 왜 모으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전생에 다람쥐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튼 이런 생각이 들어서 영화 CD는 필요한 다른 분께 모두 경품으로 드렸다.

충주로 이사온 뒤 집이 좁아 CD를 정리하다 보니 정말 오래된 프로그램 CD가 많았다. 사실 운영체제 CD야 없으면 시스템을 복구할 때 문제가 되기 때문에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나머지 CD는 사용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며, 만약 필요하다면 바로 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들 대부분 항상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프로그램 개발사에서 시험판을 받아 잠깐 사용해도 된다.

이제는 도대체 이런 프로그램 CD, 강좌 CD를 왜 모으는지 의문이 들었다. CD 값도 만만치 않고 CD 값보다는 CD를 뜨는데 드는 시간, CD를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보여줄 DVD, 내가 좋아하는 X-Files Season 1 DVD, Dark Angel Season 1~2 DVD, 우리나라 다큐의 명작인 역사 스페셜 DVD 100 장, MP3 CD를 뺀 나머지 CD를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필요없다고 생각한 CD는 모두 태워 버리기 위해 커다란 과일 상자에 담아 두었다. 바로 태워버릴 수도 있지만 태울 곳이 마땅치 않아 방 한켠에 계속 놓아 두고 있었는데 minerva님이 컴퓨터 강좌가 필요하다고 하셔서 'minerva'님께 컴퓨터 강좌 CD를 보내드리기로 했다.

'문제는 CD를 모두 박스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더우기 1월에 사무실을 이전하고 개인적으로 좋지않은 일이 있었고 2월에 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며칠 전에 날을 잡아 CD를 정리하게 되었다. CBT 관련 CD와 컴퓨터 강좌 CD를 찾기 위해 박스에서 CD를 꺼내 정리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CD가 나왔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200장 정도씩 쌓은 것이 10 뭉치 정도된다. 대충 보면 2000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중 300장 정도가 CBT 또는 컴퓨터 강좌였고 200 여장은 포토디스크, 나머지는 프로그램 CD였다. 물론 대부분 CD로 굽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첫번째 사진은 심하게 흔들렸다. 술 마시고 찍은 사진이라 티가난다.

불현듯 이렇게 책과 CD를 모으면서 든 비용이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책은 복사판이라 5000원 3'0000원 정도이지만 평균 1'0000원으로 잡으면 3천만원이라는 큰 금액이 된다. 우스개 소리로 책값만 모아도 집한채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집은 사지 못한다고 해도 전세는 가능한 금액이었다.

CD는 초기 필립스 CD는 3000원 정도에 구입했고 웅진 CD는 1500, 마지막으로 샀던 CD는 장당 300원 정도에 구입한 것 같다. 영화 CD와 이번에 버린 프로그램 CD를 합하면 6000장이고 공 CD의 평균 가격은 500원으로 잡으면 공 CD 구입 비용으로만 300만원을 쓴 것 같다. 정말 티끌 모아 태산이다. 그러나 CD는 구입 비용 보다 굽는데 걸린 시간 투자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이야 52배속이 일반화됐지만 처음 CD를 구울 때는 4배속으로 구웠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 프로그램을 모두 돈을 주고 샀다면 얼마나됐을지 궁금했지만 추정이 불가능했다.

요즘은 이런 식으로 영화나 프로그램을 모으지 않는다. 필요하면 바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은다는 것이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별 도움은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요즘은 불법복제보다는 가급적 정품을 구입하려고 한다. 다만 운영체제의 가격은 구입할 엄두를 내기 힘들정도로 비싸다. Vista Home의 경우 업그레이드 판은 10만원대 미만으로 구할 수 있지만 Vista 완본이라고 할 수 있는 Vista Ultimate는 40만원 이상하기 때문이다.

CD는 보존 기간이 50년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꽤 오래 전에 CD에 기생하는 벌레가 있고 이 벌래 때문에 CD는 50년이 되기 전에 파손된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박스의 CD를 꺼내 보니 CD 제조사에 따라 일정한 파손이 였보였다.

웅진 화이트

하얀색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보관 상태가 좋아도 CD 주변에 얼룩이 지며 결국 사진처럼 CD 표면이 벗겨진다.

웅진 골드

웅진 화이트처럼 주변이 변색되지는 않지만 CD 대부분이 사진처럼 벗겨졌다. 물론 보관상태가 좋으면 이런 현상의 발생 빈도가 낮지만 보관상태가 좋지 않으면 대부분 사진처럼 벗겨졌다.

HOEWUL

정확한 제조사는 모르겠지만 이 CD는 의외로 보존 상태가 아주 좋았다. 같은 환경에 놓여있었지만 코닥처럼 유명 제조사의 CD처럼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CDR Net

이름은 정확하지 않지만 CDR Net이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CD는 아주 특이하게 CD 표면이 투명으로 바뀌었다. 아울러 웅진 CD 처럼 CD 표면이 벗겨지며 심한 것은 CD 표면 전체가 아주 깔끔하게 벗겨진 것도 있었다. 물론 벗겨지지 않은 것도 표면이 투명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는 없는 듯했다.

Kodak 골드

구입했을 때 가격이 장당 3000원 정도 였던 것 같다. 95년 쯤에 구입한 CD로 구입한지 가장 오래된 CD이고 다른 CD와 마찬가지로 사과 상자에 담겨있었지만 CD의 상태는 가장 좋다. 무엇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싼 게 비지떡이다'. INFODISK

마지막으로 구입한 공 CD이다. 공 CD를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이 언제(2004년 추정)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집과 사무실에 100여장 넘게 남아 있다. 물론 CD를 구울일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참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공 DVD

Lightscribe 기능을 시험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 구입한 공 DVD이다. CD 표면에 그림과 글씨를 인쇄했기 때문에 제조사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Lightscribe 기능 때문에 구입했지만 이 DVD를 이용해서 DVD를 계속 구울지는 미지수이다. 그 이유는 표면을 인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20분이 넘기 때문이다. 추억의 한글 815

IMF가 터지고 한컴이 Microsoft에 인수되려고 하자 한컴의 인수 반대 운동이 불면서 나온 한글 815. 1년 사용권을 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은이야기

처음 CD를 구울 때는 직접 굽지 않았다. 당시에는 CD-RW의 가격이 무척 비쌌고 매체 또한 비쌌기 때문이다. 또 CD에 저장할 만큼 많은 데이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하드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모든 뒤 CD-RW를 가지고 있던 후배에게 1'5000원을 주고 CD를 구웠다. 당시 공 CD의 가격이 4~5000원 할 때이고 CD-RW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후배는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이때는 하이텔과 같은 곳에서 불법 복제 CD를 파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때 불법 복제 CD의 가격은 3~4만원 정도 했었다.

불법 복제 CD는 국내만 잘 나갔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분은 포토디스크 CD를 경매를 통해 판매해서 한밑천 잡은 분도 있다. 포토디스크의 정품 가격이 장당 300~500불 정도 하는데 30불에 경매에 내놓아 3개월 동아 35불 정도로 300여장을 팔았다고 한다. 대충 계산해 보면 976'5000으로 약 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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