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다는 것

2007/08/30 07:56

나이를 먹었다고 느낄 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얼마 전 간이 안좋아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던 사촌 매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촌 여동생보다 7살이 많은, 따라서 나보다는 6살 나이가 많은 매제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매제라고 불러보지도 못한 매제였지만 젊은 나이의 죽음이 안타깝고 또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버린 사촌 여동생이 안스러웠다. 큰 외삼촌도 간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경과를 좋다고 하시지만 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목차

오는 사람 보다 가는 사람이 많을 때

나이 들었다는 것을 느낄 때는 어떤 때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이다. 얼마 전 간이 안좋아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던 사촌 매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촌 여동생보다 7살이 많은, 따라서 나보다는 6살 나이가 많은 매제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매제라고 불러보지도 못한 매제였지만 젊은 나이의 죽음이 안타깝고 또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버린 사촌 여동생이 안스러웠다. 큰 외삼촌도 간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경과를 좋다고 하시지만 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경험한 첫 죽음은 아마 초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외할머니께서 혈압으로 쓰러지셨고 워낙 급하게 발생한 일이라 어머님, 아버님께서 우리 형제만 남기고 시골에 다녀오셨던 것 같다. 지금은 외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않지만 막내 이모와 비슷했던 것 같다.

두번째는 외할아버지셨다. 어머님에 따르면 외할아버지께서는 옳은 말씀도 잘하시고 똑똑한 분이셨다고 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약간 치매가 오셨던 기억밖에는 없다. 당시 큰외삼촌이 모시고 살았었는데 역시 학기 중에 돌아 가셔서 부모님만 다녀 오셨던 기억이 있다.

세번째는 고등학교 때였다.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함께 중학교를 다녔지만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가기 싫어서 학교를 배정 받을 때만 주소지를 옮겨 다른 학교에 다니던 친구였다. 학교에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녀석과 학교에 대한 얘기와 시험에 대한 얘기를 하고 헤어졌는데 이날 연탄 가스로 죽었다고 한다. 성격이 괄괄해서 쌈박질도 마다하지 않지만 매년 반장을 할 정도로 성적도 좋고 성격도 좋은 녀석이었다. 당시 덩치는 나보다 컷기 때문에 꼭 형같은 느낌의 친구였는데 세상을 떠나는 것은 성격이나 나이와 무관한 듯 이 녀석이 먼저 갔다.

네번째는 대학원에 재학할 때 일이다. 아마 25살로 기억한다. 친구 중 '윤수'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혼인해서 아이까지 낳고 잘 살던 녀석이 교통 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이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친구에 대한 추억 II에서 자세히 애기했다.

다섯번째는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였다. 나와 아버지는 30살 차이가 나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30살 차이가 난다. 따라서 나와 할아버지는 띠 동갑이며, 60살 차이가 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 나이가 30이니 할어버지는 90에 돌아가셨다. 천수를 다 하시고 돌아가신 것이라 그리 큰 한은 없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 돌아 가실 때까지만 해도 사람을 떠나 보내는 일은 정말 가끔 일어나는 일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워낙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보낸다는 느낌도 없었고 슬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 보낸 친구는 떠나 보낸다는 의미도 잘 모를 때였기 때문에 단순히 울어 제낀 것외에 다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떠나 보낸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된 것은 대학원 때이지만 아직 젊은 시절이라 바로 잊어 버린 것 같다.

아무튼 이때까지는 떠나 보내는 사람도 많지 않고 떠나 보내는 일도 그리 자주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 돌아 가신 뒤로는 떠나 보내는 일이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일보다 더 잦아졌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

여러 가지 변화를 의미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늘어 간다는 것.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불혹(不惑)이 필요하고 인생의 의미를 알았다는 지천명(知天命)이 필요한 것 아닐까?

남은 이야기

어머님의 뇌출혈
어머님도 혈압으로 쓰러지신 적이 있다. 연세는 아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나이와 비슷한 것 같았다. 당시 쓰러지신 곳이 포항이었는데 다행이 포항 동대 병원에서 오진을 했다. 오진을 다행이라고 얘기하면 그렇겠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오진이 다행이었다.

어머님께서는 혈압이 높으셔서 혈압약을 계속 드셨는데 혈압이 조금 나자진 것 같자 혈압약을 드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일이 있으셔서 포항에 가셨다가 결국 뇌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문제는 포항 동대 병원에서는 뇌에서 터진 것이 아니라 모세 혈관에서 터진 것으로 오진을 했고 따라서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판단 포항 동대 병원에서 서울 현대 아산 병원으로 이송했다.

현대 아산 병원에서 조형제를 투여해서 확인한 결과 목 뒤쪽에서 뇌로 올라가는 꽈리 부분에서 터진 것이 확실하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결국 뇌수술을 하게됐다.

의사: 보호자 분 오세요.
도아: 예. 전데요.

의사: 이 병은 일단 쓰러지면 절반 정도가 그자리에서 죽습니다.
도아: 예.

의사: 절반 정도가 병원으로 오지만 이 절반 중 또 절반은 응급실에서 죽습니다.
도아: 예.

의사: 4분의 1정도가 수술대에 오르지만 이 중 정상인으로 복귀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입니다.
도아: 예.

의사: 수술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아마 응급실에 환자를 입원해본 사람이라면 수술 동의가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금방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동의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 일단 수술에 동의했고 뇌 수술이 진행됐다. 그러나 4시간을 예상했던 수술은 무려 8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여러 차례 확인하고 어머님이 회복실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러 엘리베이터에 탓다. 그런데 그 엘리베이터에 집도의가 있었다. 집도의는 웃으면서 나와 매형을 아주 반갑게 맞이했다.

집도의: (환하게 웃으며) 수술은 아주 잘 끝났습니다.
도아: 정말요?

집도의: 예. 처음에는 터진 부분만 잡으려고 했는데 경과가 좋아서 터질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모두 잡았습니다.
집도의: 이번에 수술한 자리에서 다시 터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수술 뒤 이렇게 확신에 차서 얘기하는 의사를 본적이 없다. 정말 수술 경과가 좋았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수술 경과가 좋았다. 어머님께서는 뇌 수술을 받으셨지만 수술 10여일만에 퇴원하셨다. 뇌수술 중 뇌가 손상되서 한 2~3달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셨지만 뇌수술에는 흔히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지금도 혈압약을 드시고 계시기는 하지만 현재는 아주 건강하시다.

문병 상식
잘아는 형한테 들은 얘기다. 보통 문병을 가면 환자의 상태만 보고 오는 때가 많다. 그러나 수술을 해야하는 중환자라면 환자의 상태만 보고 올 것이 아니라 담당의를 만나서 이것 저것 자세히 물어보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의사도 사람이라서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으면 수술할 때 신경을 더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들어보면 내심 타당한 얘기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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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인생,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