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 13. 첫 애완견 by 도아
케리, 환생한 것 같은 애완견
나는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이 덕에 나와 동생 모두 어머님께 얻어 맞고 있었다. 이때 케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마루에는 미닫이 문이 있고, 또 방은 여닫이 문이었다. 마루의 미닫이 문은 케리가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방의 여닫이 문은 손잡이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들어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어떻게 된일인지 방으로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마루를 통해서 들어 온 것이 아니라 부엌을 지나 방 뒷편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고는 빗자루를 든 어머님 손을 가볍게 물어서 내려놓는 것이었다. 마치 때리지 말라는 것 같았다. 결국 케리 때문에 어머님께서는 꾸지람을 그만 두셨다.
케리, 첫 애완견
많은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사람은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고 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러나 개고기를 먹는 사람 중에도 다른 사람 못지 않게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좋아하는 방법은 다를 것으로 본다. 개를 좋아하면서 어떻게 개고기를 먹을 수 있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난 근본적으로 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종을 말살하는 행위(거세)를 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나는 개고기를 좋아하지만 또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개를 키워봤고 또 개에 대한 추억이 많다. 지금까지 기억나는 개 중 첫번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기른 케리라는 잡종이었다. 요즘은 개의 이름도 한국식으로 많이 지어 준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국 사람의 이름을 강아지 이름으로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케리라고 불렀다.
작은 할아버지댁에는 메리라는 잡종 개가 있었다. 이 메리가 난 강아지를 이모님 댁에서 키웠고 이모님댁 개가 진도개와 접을 붙어서 난 강아지가 케리였다. 두 마리를 나았다고 하는데 그중 한마리는 죽고 한마리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달밖에 안된 녀석이 아주 토실 토실했다. 보통 강아지는 분양을 해도 석달 지난 뒤에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우리(누나, 동생, 나)가 시골에 내려갔을 때가 한달 정도 됐을 때였다. 그리고 다시 시골에 내려오기 힘들기 때문에 젖도 떼지 않은 녀석을 라면 상자에 담아 서울로 데려왔다.
지금도 기차에 개를 태울 수 없지만 당시에는 기차에 개를 태웠다가는 강아지를 압수 당하기 때문에 라면 박스 한쪽에 숨구멍만 터주고 오는 내내 불안해 하면서 강아지를 기차에태워 가져왔던 기억이 있다.
케리, 너무 똑똑한 애완견
태어난지 채 한달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똑똑했다. 따로 대변을 보도록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똥을 쌀 때는 라면 상자에서 나와 대변을 보는 것이었다. 이 라면 상자가 따로 집을 만들어 주기 전까지 케리의 집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머님: 케리가 무척 똑똑한데.
도아: 왜요?
어머님: 마루의 미닫이 문을 긁어대서 문을 열어 주니까 마당에서 똥을 누고 오던데.
채 두달이 되기 전이고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대변을 밖에서 볼 정도로 똑똑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케리가 이렇게 대변을 밖에 보는 것은 케리의 깔끔한 성격 때문이었다. 처음 키워본 강아지였기 때문에 정말 귀여워했다. 그러나 개가 귀여워 끌어안으면 항상 부모님이 하시는 얘기는 같았다. 개가 사람의 손 때를 타면 안되니까 가끔 쓰다듬기는 해도 끌어안고 다니지는 말라는 것[1]이었다.
처음 키웠던 이 케리에 대한 추억은 정말 많다. 과연 강아지들 중 '소유 개념'을 가지고 있는 강아지가 있을까? 케리는 소유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물건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고 그 물건 주인이 아니면 물건에 손대지 못하게 하곤했다. 아울러 자기집, 밥그릇에 대한 애착도 상당했다.
옆집: 빨리좀 나와봐
도아: 왜요?
옆집: 청소를 하려고 하는데 케리가 자꾸 물으려고 해서.
옆집 아주머니이고 또 잘알기 때문에 물으려고 하는 때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물으려고 한다고 해서 나가 보니 아주머니가 물청소를 하면서 계단에 놓인 물건에 물이 들어갈까봐 옆으로 치우려고 하니까 케리가 그 물건을 물고 으르렁 거린 모양이었다. 어머님 물건인데 옆집에서 손을 대니 못대게 한 것 같았다.
케리, 환생한 것 같은 애완견
이외에도 많다. 나는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이 덕에 나와 동생 모두 어머님께 얻어 맞고 있었다. 이때 케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마루에는 미닫이 문이 있고, 또 방은 여닫이 문이었다. 마루의 미닫이 문은 케리가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방의 여닫이 문은 손잡이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들어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어떻게 된일인지 방으로 들어왔다. 확인해 보니 마루를 통해서 들어 온 것이 아니라 부엌을 지나 방 뒷편의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그러고는 빗자루를 든 어머님 손을 가볍게 물어서 내려놓는 것이었다. 마치 때리지 말라는 것 같았다. 결국 케리 때문에 어머님께서는 꾸지람을 그만 두셨다. 그러고는
어머님: 케리야. 너는 사람이 환생한 모양이다.
또 케리는 정말 깔끔했다. 지금이야 풀어놓고 키우면 걸릴 가능성이 많지만 예전에는 묶지 않고 그냥 풀어놓고 키우는 집이 많았다. 케리도 마찬가지였다. 케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꼭 30분 정도는 밖에를 돌아 다니다 들어왔다. 이때 밖에 똥을 싸고 오는 듯했다. 그리고 밖에서 돌아오면 온몸을 혀로 핥았다. 따라서 비가 온 뒤 밖에를 나갔다 와도 항상 깨끗했다. 목욕을 시켜주기는 하지만 목욕이 필요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또 개 치고는 특이하게 소유 개념이 있었다. 따라서 자기집, 자기 밥그릇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케리의 집은 라면 상자였다. 그런데 누가 이 라면 상자를 건드리면 그냥 두지 않았다. 가끔 내가 라면 상자를 발로 차면 밖에 나가있다가 잽싸게 들어와서 나를 보면서 멍멍 짓었다. 마치 자신의 집을 건드리지 말라는 듯.
케리, 소유개념이 있던 애완견
밥그릇에 대한 애착도 상당했다. 한번은 집에서 닭고기를 먹고 그 뼈다귀를 케리에게 준적이 있다. 보통 강자지들은 맛있는 것을 주면 바로 다 먹어 버린다. 그런데 케리는 혀로 핥기만 할 뿐 먹지 않았다. 그래서 장난 삼아 케리가 밖에 있을 때 밥그릇을 몰래 숨겨 버렸다. 잠시 뒤 밥그릇이 없어진 것을 알자 케리는 나에게 와서 멍멍 짓는 것이었다. 물론 장난으로 숨긴 것이라 바로 찾아 주었다[2].
케리는 정말 사람이 환생했다 싶을 정도로 똑똑했다. 모르는 사람이 건들면 바로 물어 버릴 정도로 사나웠다. 그러나 모르는 아이들이 귀를 잡아 땡기고 말을 타고 놀아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아이들과 어른에 대한 대접이 달랐다.
요즘 아이들도 비슷하겠지만 당시에 유행하던 것이 병아리였다. 나 역시 병아리를 사와서 사과 상자 같은 곳에 두고 키웠다. 처음에는 병아리던 녀석들이 차츰 커지자 이제는 사과 상자를 빠져 나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빠져 나온 녀석들이 대문밖으로 나가면 케리가 모두 입으로 물어서 사과 상자에 가져다 놓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것들을 단 한번도 가르쳐 본적이 없는데 케리는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말 좋아했다. 지금도 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할 정도로 좋아했다. 당시 아버님께서는 사우디에 가 계셨고 어머님께서는 일일공부라는 시험지를 돌리셨는데 가끔 케리를 데리고 일일공부를 돌리셨다. 주인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먼저가는 케리를 데리고 어떻게 일일공부를 돌리셨는지 궁금해서 어머님께 여쭈어 봤다.
도아: 그럼, 갈림길에서는 어떻게 해?
어머님: 갈림길에서는 가지 않고 가운데 앉아 있어.
주인 보다 먼저 가지만 길을 모르기 때문에 갈림길을 만나면 가지 않고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케리에 얽힌 얘기를 하면 책 한권을 써도 부족할 정도로 많았다. 정말 사람이 환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산책, 마지막 만남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산책을 갔던 케리가 집으로 돌아 오지 않았다. 조금 늦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학교에 갔다 왔지만 여전히 케리는 집에 없었다. 어머님께 물어 봤지만 어머님께서는 잊으라는 얘기외에는 하지 않으셨다. 당시 케리는 10개월 정도됐고 똑똑하다는 소문이 온동네에 나있는 상태라 잡종이지만 진도개를 가지신 분이 씨를 받겠다고 해서 진도개와 접을 붙인 상태였다. 한달만 있으면 귀여운 강아지가 태어났을 텐데 이때 없어진 것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당시 동네에 많이 돌아다니던 개장수가 잡아간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돌아오지 않는 케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는 케리를 생각하며 밥을 먹을 때 목이 매던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또 몇 년간은 보신탕 집에 갖혀있는 개들을 보면 케리가 아닌가 싶어서 불러 보곤했다.
이 것이 첫 애완견 케리와의 인연이다. "똑똑한 개는 주인의 신변이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집을 나간다"고 한다. 나를 달래주기위해서 였는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이렇게 믿었다. 개장수가 잡아간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집을 나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