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박사 과정 병역 특례로 꽤 긴 병역(8년)을 치루고 35살부터 작년까지 예비군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직 예비군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예비군의 최대 나이를 초과했고 올해부터는 민방위도 면제 받을 나이이기 때문에 예비군은 끝난 셈입니다.

작년까지 예비군을 받으면서 든 생각들

이런 낭비를 뭐하러 하나.

예비군 훈련을 받아 보신 분은 알겠지만 하는 것이 없습니다. 비디오를 보다가 잠만자는 정신 교육, 한 20여분씩 시간만 때우다 이동하는 교육. 따라서 많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낭비하는 시간을 따지면 상당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비군 훈련 목적이 훈련이 아니라 소집이라는 교관의 얘기를 들으니 이런 낭비가 아예 무의미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군.
함께 훈련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십대입니다. 간혹 30을 넘긴 사람도 있고 긴 병역 특례때문에 저와 나이가 비슷한 분도 한분 계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체력이 안됩니다. 뭐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집에 가면 무척 피곤하더군요.

군대를 좋아서 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군대에 가면서 울면서 가던 친구(주로 부모 속을 많이 썩인 친구), 웃으면서 부대에 입대한 뒤 부모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쯤 훌쩍이는 친구(마음이 약한 친구), 씩씩하게 들어가서 반 고문관이 된 친구(단순한 친구)등 남자에게는 군대에 대한 추억이 많습니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희생하는 정도는 군대를 가지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입니다(그래서 저는 어떤 형태든 군복무자에게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나이에 자신을 희생해야하는 것이 군대입니다. 이 것은 단지 한사람의 희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손실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 군대를 꼭 나쁘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제 경험으로 군대는 일종의 거름막이었습니다. 군대가기전에 아주 순진한 친구는 다소 까져서 제대하고, 군대가기전에 아주 까져서 군대간 친구는 다소 순진해져서 나오더군요. 그래서 까진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군대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고 순진한 아들을 군대 보낸 부모는 군대가 사람을 망쳤다고 합니다.

아무튼. 며칠 전 우영이에게도 영장이 나왔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입학 통지서가 나왔습니다. 입학 통지서를 영장에 비유한 것은 대한민국 남자가 겪어야할 통과의례가 군대이듯 우영이가 겪어야할 통과의례가 입학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부모가 겪어야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고요.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심정과 같지 않고 학교에 대한 우영이의 입장도 군대를 보는 것과는 다르지만.

군대가 첫 경험이 듯 아이도 첫 경험입니다. 아이가 첫 경험이 듯 학부형이 된다는 것도 첫 경험입니다. '슬하에 자식'이라고 합니다. 부모 무릅 앞에 있어야 자식이라는 얘기입니다. 지금까지 부모 앞에 있던 우영이도 이젠는 부모를 떠나 친구들과 생활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부모를 떠나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언제부터인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보다는 친구와 즐기는 것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 걸 '자란다'고 합니다.

시간은 상대적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시간보다 아이들의 시간이 훨씬 깁니다. 아마 우영이도 제가 어렸을 때처럼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흐릅니다.

아무튼. 이제 조만간 학부형이 됩니다. 우영이를 처음 봤을 때처럼 설레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척 설레입니다. 아울러 녀석이 잘 적응할지, 따는 당하지 않을지 걱정도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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