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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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얼마 전 TV를 보다 보니 주간 영화 흥행순위가 나온다. 1위가 인셉션(Inception), 2위가 이끼, 3위가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다. 영화의 흥행순위가 재미의 척도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세개의 영화를 모두 본 나로서는 이런 순위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인셉션은 정신을 바짝차리고 봐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여기 저기 복선이 많다[1]. 이 복선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셉션은 말 그대로 때리고 부시는 영화가 되버린다.

그런데 이런 복선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듯 '지난 주 흥행순위 1위'다. 이끼는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영화다'. 대체로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의 평은 꽤 좋다. 그러나 만화 이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최악평가를 내리는 영화가 이끼다. 이끼에 대해 이런 평을 내리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만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거의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만화가 만든 주인공 캐릭터와 영화의 캐릭터가 너무 다르다.

영화 이끼의 평가

총 1138명이 추천하고 212명이 비추했다. 추천과 비추의 비율은 6대 1정도 된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것은 추천과 비추가 아니라 아래쪽의 평점이다. 10점, 9점의 높은 점수와 4, 2점의 낮은 점수로 양분되어 있다.

배우들이 연기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화의 캐릭터와 차이가 너무난다.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었지만 캐릭터만은 감독의 창작이 아닐까 할 정도로 캐릭터가 다르다. 마지막으로 '마법사의 제자'는 아무 생각없이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나름대로 이야기가 있지만 영화를 보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드래곤볼(Dragon Ball)처럼 장풍 쏘고는 날라다니며 싸우는 영화다. 관람가능 연령이 몇살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아이들이라면 좋아할 영화다[2].

줄거리

이끼 포스터

유해국(박해일 분)은 아비지 유목형(허준호 분)의 부고를 듣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외진 한적한 시골. 그런데 처음 본 유해국을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계한다. 이에 의아함을 느끼는 유해국. 그리고 유해국 역시 뜬금없이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이 생긴다. 서울에서도 마땅히 갈곳이 없었던 유해국은 마을 사람들의 뜻과는 달리 마을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

유해국이 하나 둘씩 진실에 접근해 갈 수록 사건은 점점 더 오리무중에 빠져든다. 마을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시골 마을 이장 천용덕(정재영 분), 이장의 머슴처럼 일하며 이장을 받드는 김덕천(유해진 분), 이장과 호형호제하며 이장을 따르는 전석만(김상호 분)와 하성규(김준배 분). 마을 사람 여럿과 관계를 가지는 의문의 여인 이영지(유선 분)등 알면 알 수록 의혹은 짙어간다. 결국 유해국은 서울에서 알게된 검사 박민욱(유준상 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끼의 배경 마을

시작부터 다른 이끼

유목형으로 열연한 허준호

영화의 첫 장면은 만화의 첫장면과 다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유해국의 아버지 유목형이 마을을 만들기 전 기도원 생활부터 시작한다. 굳이 이 부분으로 영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사건이 실제 사건을 푸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굳이 영화의 앞부분에 집어넣을 이유는 별로 없다. 만화처럼 수직적으로 시간을 전개하며, 수평적으로 중간에 보여주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기에 더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독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모든 '영화는 시작한 뒤 10분 내에 결판난다'. 이 10분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 영화는 대부분 실패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화가 이 10분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붓는다. 강우석 감독도 나름대로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며 극적인 장면을 삽일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고 이 장면을 앞 부분에 배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이 부분에는 연필로 유목형의 허벅지를 찍고, 칼로 발바닥을 긋는 등 사용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한 화면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장면이 영화의 첫 장면이다 보니 '영화는 이 장면에 휘둘리게 된다'. 아마 만화를 보지않고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이 첫장면 때문에 허준호를 주인공으로 착각했을 듯하다. 물론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데에 있어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첫부분에 나오는 것 보다는 만화처럼 시간의 흐름속에 등장하는 것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부분이 영화의 첫장면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영화 전체의 흐름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진다.

또 원래 이 부분에서 등장해야 하는 대사 중 중요한 대사 하나가 영화에서는 빠진다. 바로 신기에 가까운 능력으로 사람을 사로 잡은 유목형이 왜 천용덕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나[3]하는 부분이다. 영화의 첫부분만 보면 분명 유목형은 천용덕까지 사로 잡는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만화에서는 이 부분을 두개로 구분, 유목형과 천용덕이 만나는 부분과 천용덕이 유목형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유까지 등장한다.

만화와는 너무 다른 캐릭터

주인공 유해국(박해일)

처음 캐스팅됐을 때 만화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배우로 꼽혔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이끼에서 박해일의 연기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영화를 보면 주인공으로 나온 유해국(박해일 분)의 연기를 빼면 다른 사람들의 연기는 크게 나무랄 때가 없어 보인다. 또 '영화만 보면 나름대로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약간 흐트러진 듯하며 백치미가 보이는 이영지, 죽기 전 발짝하는 김덕천을 연기한 유해진의 연기나 영화내내 극적인 자신감으로 수사를 이끈 박민욱, 자살하는 듯하다 다시 반전을 꽤한 이장, 천용덕까지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런 캐릭터가 만화의 캐릭터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만화속 이장, 천용덕악마의 본성을 간직한 인물이다. 따라서 표정의 변화가 없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는다. 나지막하지만 항거할 수 없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인자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원할 수 있는 모습도 아니다. 알 수 없는 어떤 절대감이 존재한다. '작고 왜소하다'. '그러나 거대하다'. 동틀 무렵 어느 누구의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는 고즈넉한 산의 적막감과 중압감을 가지고 있다.

악마의 본성을 간직한 이장, 천용덕

반면 영화의 천용덕은 조금 경망스럽다. 나름대로 악인의 모습을 소화하고 있지만 절대악이라기 보다는 '양아치에 조금 더 가깝다'. 그래서 툭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풍모로 사람에게 위암감을 주지 못하니 큰 목소리로 이를 감싸려는 듯하다. 따라서 두려움으로 사람을 잡아 둘수는 있어도 공포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그런 카리스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남 오렌지 검사, 박민욱

여기에 유준상이 연기한 박민욱도 원래의 캐릭터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영화의 박민도은 조금은 어리 버리하며, 조금 웃기다. 또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다. 내막을 모르고 보면 한적한 시골에 놀러 온 오렌지 검사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만화의 박민욱은 유준상이 연기한 박민욱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정의감 보다는 '줄타기에 능한 검사'다.

요즘 검사로 치면 삼성에서 돈을 정기적으로 상납받고 여러 스폰을 거느린 '전형적인 떡찰, 색검'이다. 그래서 출세가도를 달리지만 재수없게 유해국이라는 똥을 밟아 좌천된다. 야망의 줄타기를 하다 떨어져 이제 변호사나 해야할 신세로 전락한다. 따라서 만화의 박민욱은 이러한 절박감과 유해국에 대한 원망이 교차한 인물이다. 반면에 영화의 박민욱은 그냥 잠시 한적한 시골로 놀러온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주인공 유해국은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유해국의 연기에는 웬지 모를 어색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만은 원래 만화의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배우였다고 한다. 생긴 것이 가장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유해국의 연기는 시종일과 어설프고 껄끄러웠다.

천용덕의 의형제들

그외에 여러 사람들이 나온다. 유해진이 연기한 김덕천, 김상만이 연기한 전석만, 김준배가 연기한 하성규등. 이들은 만화의 캐릭터와 다르다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잘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만화나 영화에서 이들은 모두 그냥 조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조연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영지가 있지만 비중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만화와는 다른 결말

흔히 이끼를 보고 "만화와는 결말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본 '결말은 만화나 영화 모두 같았다'. 물론 만화의 끝장면과 영화의 끝장면은 분명히 다르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면 헤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영화의 끝장면은 다른 결말이라기 보다는 '이끼 2의 예고'로 보인다. 만화 이끼는 분명히 끝났다. 그러나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고 2탄을 만들면 대부분 거저 먹는다.

영화 이끼의 결말은 바로 이 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만화처럼 이미 사건은 끝났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알듯 모를 듯한 이영지의 미소를 내 보냄으로서 마치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더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방불패 1은 원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2는 완전히 다른 창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개인적인 견해로 2탄은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의 이해를 방해하는 편집

만화를 보지 않고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배우들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찾아 온 유해국은 왜 처음부터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가질까? 왜 그토록 집요하게 아버지의 죽음을 파해칠까? 출세가도를 달리던 검사, 박민욱은 자신의 동아줄을 끊어버린 유해국을 열심히 도울까? 아니 눈빛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던 유형목은 왜 천용덕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을까? 그런데 만화를 보면 이런 의문이 풀린다.

물론 만화와 영화가 똑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런 영화는 흐름이 상당히 중요하다. 만화 이끼는 시간에 따른 전개가 주를 이룬다. 그러면서 각 인물들과의 관계는 과거를 이용, 수평적으로 전개한다. 이 수직과 수평을 적절하게 교차시킴으로서 만화 이끼어두운 밤 불빛하나 없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듯한 스릴을 느끼게 만든다. 만화의 중요한 장면을 대본(Continuity)으로 해서 영화를 찍었다면 이 보다 나은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뒤로 가야할 내용이 앞으로 오고, 꼭 필요한 내용이 빠진 덕에 만화가 주는 극적인 스릴과 재미가 사라졌다. 배경 색까지 극적인 대비를 통해 연출한 것만화 이끼라면 이 사람들이 볼만한 볼거리만 뽑아 감독이 작의적으로 배치해서 만든 것이 영화 이끼다. 그래서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 이끼에 대해 혹평을 아끼지 않는다.

또 지나친 코믹터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캐릭터상 김덕천을 연기한 유해진이 이런 대사를 퉁치기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코믹터치가 재미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긴장간 넘치는 흐름을 방해하는 역할만 했다. 이끼는 코메디 영화가 아니다. 따라서 극의 흐름과는 관련없는 이런 '코믹터치는 웃기기 보다는 짜증이 났다'.

이끼의 총평

'만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이라면 영화 이끼는 보지 않는 것이 좋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만화가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한 영화가 이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봐도 무방하다. 이끼는 호평과 혹평이 엇갈린다. 단순히 원작을 생각하지 않고 '이끼라는 영화만 보면 나름대로 재미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캐릭터이다. 그러나 다른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나름대로 연기력이 괜찮은 배우들이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다음 영화에서 이끼에 대한 평점은 7.1점, 네이버 영화에서는 6.82점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무려 1138명이 추천했고, 212명이 추천하지 않았다. 나는 반반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 이 영화에 평점을 준다면 7점 정도가 적당한 점수라고 생각한다. '7점'은 돈주고 보기에는 조금 아깝고, 비디오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조금 긴 그런 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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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링크에는 헤살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영화를 본 사람만 클릭하기 바란다 
  2. 참고로 이 영화 제작사는 디즈니이다. 그래서 완전 아이들 영화로 봤는데 완전 어린이용은 아니었다. 
  3. 영화에서 대사가 나왔지만 내가 놓쳤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