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TV에서도 두문불출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적인 이슈가된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다음은 한글 학회 우리말 돋보기에 나온 두문불출의 뜻입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뜻 그대로 풀자면 "문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지냄"입니다. 그리하여, "문(집, 방) 밖에 나가지도 않다", "방콕이다", "집에 콕 박혀 있다", "(집 밖에) 나갈 생각을 않다", "집 안에서 꼼짝도 않다", "집 밖으로 코빼기도 내밀지 않다", "집에만 있다", "숨어 지내다"처럼 쓰면 좋아요. '두문불출'과 '집에만 틀어박히다'는 같은 말이므로 앞에 쓴 '두문불출'을 빼도 말이 시원시원 이어져요

이 두문불출에도 재미있는 고사가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개국하고 첫 과거 시험이 치뤄졌다고 합니다. 과장에 나온 이성계는 과장에 선비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되었다고 합니다. 젊은 선비가 없다는 것은 정권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왕조의 운명이 어떻게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과장의 한 선비가

이제 보셨소이까? 이것이 바로 백성들의 마음이고, 또한 하늘의 뜻이올시다!

라고 외치며,

우리도 두문동으로 갑시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당시 두문동에는 신규, 조의생, 임선미 등 73명의 선비가 정권에 거부하고 은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이들을 끌어내기위해 두문동에 불을 질렀지만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때 죽은 72명을 두문동 72현이라고 하며 이때부터 한곳에 오래 머무르며 문밖 출입을 하지않는 것을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고 했다고 합니다[1][2].

두문동을 나선 단 한사람은 바로 황희 정승입니다. 고려조에 출사한 황희이지만 그의 "인물됨과 겨례의 안위을 걱정한 두문동 사람들이 새로운 왕조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내보냈다"고 합니다.

황희 정승 일생에서 두 가지 수치는 바로 두문동에서 나온 것제주 감목관 태석균을 사정으로 구원을 청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황희 정승은 두문동을 나온 덕에 성군 세종대왕을 만나 왕조의 기틀을 다지고 이후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출처: 위의 글은 박운규님의 '우리 역사를 움직인 20인의 재상'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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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사대로라면 두문불출은 문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뜻도 되지만 한번가면 못온다는 뜻도 될 것 같습니다. 
  2.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정사'라기 보다는 '야사'에 가깝다. 조선왕조실록에 비슷한 고사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영조 16년 9월 1일 기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