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블로그나 트위터를 통해 제보를 받는 때가 종종있다. 아마 블로그가 커지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올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말을 할 수 있는 창구가 얼마나 없으면 나 같은 일개 블로거에게까지 이런 부탁을 할까 싶기도 하다.

며칠 전 트위터 DM(Direct Message)으로 재보선용 간첩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제보가 있었다. 제보의 내용은 "북한 간첩과 접촉한 혐의로 조사를 받은 분이 민주당 활동 전력이 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상을 받은 사람인데 이 내용을 재보선 때 써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제보자가 직접 들은 이야기라면 아마 조금 더 내용을 파악해서 관련글을 올렸을 것 같다. 그러나 일단 한다리 걸친 상태라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어 며칠 더 두고 보기로 했다.

10.28 재보선

내 블로그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난 항상 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수구'(친일매국노, 독재잔당, 수구를 보수로 아는 지지자)의 '비율'은 조금씩 줄고 있지만 아직도 '30%'이다. 이 30%는 투표율이 올라가면 맥을 쓰지 못하지만 투표율이 낮아 지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대선, 총선처럼 전국적인 규모의 투표에서는 70% 이상의 투표율, 재보선과 같은 지역적인 투표에서는 최소 40% 이상의 투표율이 나와야 수구에게 승리할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5대의 투표율은 80.7%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한 16대는 70.8%,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7대는 62.9%였다. 한나라당이 전패한 지난 재보선의 투표율은 40%대였다.

많은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또 이명박을 독재자라고 욕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독재가 맞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권력을 취한 방법은 아주 민주적이라는 점이다.

30%밖에 되지 않는 수구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대통령으로 올릴 수 있는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단합이다. 진보는 분열해도 수구는 분열하지 않는다. 친일매국, 독재찬양의 수구에게 분열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바로 투표다. 일반적으로 투표율 60%에서 50대 50으로 나왔다면 30%에도 50대 50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투표율이 낮으면 40대 60이 나온다. 즉, '투표율이 낮아지면 수구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 민주주의를 원한다며 이명박을 욕하는 사람들이 투표율을 끌어 내리는 셈이다. 이런 면에서 수구가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절대 권력을 더 잘 이용한다.

오늘은 재보선 투표일이다. 경기 수원, 경기 안산을, 충북 4군, 경남 양산, 강원 강릉에서 오늘 재보선이 치뤄진다. 현재는 경기 수원은 2강, 경기 안산을은 2강 1중, 충북 음성도 2강 1중, 경남 양산도 2강의 형세로 가고 있다. 이런 판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투표율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투표율이 40%를 넘는다면 한나라당은 전통의 감자 바위, 강릉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패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 경남 양산의 선거는 아주 눈여겨 봐야 하는 선거다. 박희태라는 전한나라당 당수가 출마했기 때문이 아니다. '경남 양산'은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의 그림자가 비추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남 양산에 거주하는 분을 알고 있다면 꼭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화라도 한통 하는 것이 좋다.

북풍은 왜?

사실 북풍이 분다고 투표율이 크게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와 같운 군사독재 정권이나 이명박과 같은 민주독재 정권에서 북풍을 이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풍이 불면 '수구의 대단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은 '투표율을 끌어 올리는 방법'을 고심하고 한나라당은 '적극 지지층의 투표 참여끌어 내는 방법'을 고심하는 이유다.

여기에 간첩 사건이 터지면 어떻게 될까?

KBS에서 방영한 서울 1945를 보면 재미있는 내용이 나온다. 일제시대에 독립운동가를 전문적으로 잡는 아주 악질적인 순사가 있다. 해방된 뒤에는 독립운동가는 귀국한다. 그리고 얼마 뒤 체포된다. 이 독립운동가를 체포한 경찰은 바로 일제시대 독립군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그 악질적인 순사다. 이제는 순사가 아니라 경찰 고위직이었다.

한일합방전 세도정치로 백성의 고혈을 빨던 무리들, 한일 한방뒤 자작, 후작등의 지위를 받고 친일매국노가 되었던 무리들. 이들이 이승만의 지지 기반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독립운동가 중에는 실제 좌익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공산주의를 추종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과의 투쟁에 좌익운동이 더 적합하기 때문에 투쟁의 수단으로 좌익을 택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도 친일파에 의해 대다수 죽었다.

친일매국노의 무기, 독재잔당의 무기, 한나라당의 무기, 모두 빨갱이(좌빨)이다. 그래서 중요할 때면 북풍이 분다. 그래서 레드 컴플렉스는 친일매국노를 처단하지 못한 슬픈 우리 역사의 망령이라고 생각한다[1].

매국하면 3대가 흥하고, 애국하면 3대가 망한다

MBC 스페셜에서 방영한 그들의 기록을 보면 우리의 의병이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민초들이 목숨으로 지킨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민초들이 이렇게 지킨 대한민국을 친일매국, 독재찬양을 날을 센 수구가 잡고 있다. 이 수구의 재집권을 막는 것은 촛불이 아니다.

바로 투표다.

의병전쟁 당시 의병들은 화승총을 사용했다. 전쟁용이 아니라 사냥용이었다. 불을 붙여 쏘는 화승총은 빨라야 분당 1발을 발사 할 수 있다. 또 비가 오거나 바람 부는 날은 사용하기도 힘들다. 반면 일본군은 6.25까지 사용되던 38식 소총을 사용했다. 분당 7~8발이 가능하며, 사거리는 화승총의 수배가 넘는 370m였다. 화력 자체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 의병전쟁으로 약 1만 7천명 의병이 죽었고, 일본군은 약 130명이 죽었다. 화력의 차이에 의한 결과다.

영국의 종군기자로 의병전쟁에 종군했던 멕켄지는 자신의 책 "한국의 비극"에서 의병들이 승산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물었다.

의병: 어차피 우리는 죽게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느니 자유민으로 죽는것이 훨씬 낫습니다.
기자: 의병들의 반짝이는 눈빛과 미소를 보며 나는 깨달았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겼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적어도 의병들은 자기 동포들에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싸운 의병과 독립군의 후예는 대부분 사회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독립운동에 전재산과 자신의 목숨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매국으로 호의호식하던 이해승(후작), 민영휘(자작), 심지어 '1억 5천만에 조선을 일본에 팔겠다'며, 그 가격이면 싸다고 한 송병준, 일본인 보다 더 일본에 충성한 박중양, 고희경(백작)의 후예들은 초호화 주택에서 회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국가 귀속이 결정된 친일매국노의 땅 중 70%가 이의신청 중이라고 한다. 친일매국노의 후예 중 조상의 잘못을 인정하고 땅을 기증한 사람은 아직 단 한명도 없다고 한다[2].

반면에 우리나라 의병사에 길이 남은 신돌석 의병장 후예의 삶을 정반대다. 원래 부유하게 살다 독립운동으로 재산과 목숨까지 잃었다. 이 때문에 후손 신병옥씨는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채소를 키우는 텃밭조차 다른 사람의 땅이며 물려받은 것은 집의 불탄자리에 남은 놋그릇이 전부라고 한다. 전국에 수없이 많은 땅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사는 친일매국노의 후예와 이렇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매국하면 3대가 흥하고, 애국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유효한 나라다.

투표만이 살길이다

재보선용 간첩 사건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아마 이번 재보선은 나름대로 한나라당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중요할 때면 항상 터지는 북풍을 보면 이번 간첩 사건의 제보가 완전한 거짓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정화 간첩 사건도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다. 이번 간첩 사건 제보 역시 허구라기 보다는 더 유효한 시점에서 사용하기 위해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사해 정부'(동해, 서해, 남해, 오해)를 심판하는 유일한 은 바로 투표다. "일 때문에 투표할 수 없다"면 한가지 기억하기 바란다.

투표하지 않으면 그 일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관련 글타래


  1. 개인적으로 레드 컴플렉스는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2. 민영휘 후손 중 일부는 땅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소송에 나서지 않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