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아가씨

어묵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준 뒤 어묵을 제대로 만들었다며 다시 떡볶이를 만드는 방법을 물어 봤다고 한다. 동네 장사에서 입소문을 무시할 수 없고 나름 자주 오는 단골이라 만드는 방법을 시범까지 보여 가며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똑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지만 "어묵은 제맛이 나는데 떡볶이는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엉터리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화풀이를 한 것이라고 한다.

염치의 뜻

염치(廉恥)의 사전적 정의

염치(廉恥) [명사]
▶참고어휘 얌치
▶[명사]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우.

  • 예의와 염치에 어긋나다
  • 너는 애가 염치도 없이 어른 앞에서 왜 그 모양이니?
  • 어진 이들은 가뭄에 콩 나기일 뿐, 대개는 염치를 모르는 탐관들이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내가 너무 오래 소식을 끊고 지냈으니, 자네가 편지를 안 한다고 책망할 염치가 없네.[심훈, 영원의 미소]

출처: 엠파스 국어사전

연애시절

세상을 살다 보면 염치없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부끄러움을 알자(염치[廉恥])에서 이야기한 환전 하면서 '새치기한 사람'도 그렇고 교통사고엔 뺑소니가 최고에서 이야기한 '뺑소니범'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의외로 살다 보면 눈쌀을 찌프릴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을 가끔 만나곤 한다. 우엉맘과 사귈 때 일이다. 당시 처가는 개나리 아파트를 팔고 대치동에서 반지하 전세를 살고 있었다. 또 사귀는 아가씨는 사는 곳이 어디든 꼭 집에 데려다 주고 귀가했기 때문에 우엉맘도 꼭 집까지 바래도 주고 장안동 본가로 가곤했다.

이렇다 보니 우엉맘을 바래다 주면서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 당시 훼미리마트 바로 앞에 있던 떡볶이였다. 이 집 떡볶이는 지금까지 먹어본 떡볶이 중 가장 맛있었다. 어묵도 아주 맛있기 때문에 우엉맘과 둘이서 이것 저것 먹다보면 5000원이 훌쩍 넘는 때가 많았다. 떡볶이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이지만 맛있는 떡볶이를 하는 집은 많지 않다(충주에는 아예없다).

떡볶이의 대명사, 신당동 떡볶이

신당동 떡볶이 맛을 본 것은 30년 가까이 된다.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나보다 몇살 더 많아 대학교를 다니던 외삼촌이 데려간 곳이 신당동 떡볶이였다. 동네에서 먹던 떡볶이와는 확연한 맛의 차이, 풍부한 야채와 어묵 때문에 지금도 가끔 가는 곳이 신당동 떡볶이이다. 지금은 지나치게 상업화되었고 맛은 예전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떡볶이 중 하나가 신당동 떡볶이다. [그림출처]

염치없는 아가씨

이 집 떡볶이의 특징은 일단 '쌀 떡볶이'였다. 보통 떡볶이는 색을 좋게하기 위해 물엿을 많이 넣고 만든다. 이 덕에 떡볶이를 먹어보면 고추장의 칼칼한 매웃맛 보다는 엿의 단 맛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집은 제대로 맛이든 고추장에 설탕을 약간 넣어 만들기 때문에 쌀 떡볶이의 쫀득함과 고추장의 칼칼한 매운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우엉맘을 집에 바래다 주기위해 이 집(포장마차)에 들렸다. 그런데 웬 '4가지 없게 생긴 아가씨'(또는 아줌마)가 들어왔다. 이 집 단골이라며 지난 번에 알려 준 방법으로 어묵을 만들었더니 맛이 제대로 난다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단골이라고 하지만 음식 만드는 법을 물어 보는 것은 할일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단골이고 너무 친해서 장사하시는 분이 알아서 알려 준다면 별개의 문제지만.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이 집을 들렸다. 그런데 지난 번에 본 '4가지 없는 아가씨'(또는 아줌마)가 막 화를 내며 "다시는 이따위 집은 오지 않겠다, 단골을 무시하는 이런 집은 망해야 한다"며 나가는 것을 봤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어묵과 떡볶이를 먹으면 물어보니 아주머니 사정이 오히려 딱했다.

어묵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준 뒤 어묵을 제대로 만들었다며 다시 떡볶이를 만드는 방법을 물어 봤다고 한다. 동네 장사에서 입소문을 무시할 수 없고 나름 자주 오는 단골이라 만드는 방법을 시범까지 보여 가며 알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똑 같은 방법으로 만들었지만 "어묵은 제맛이 나는데 떡볶이는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엉터리 방법을 알려 주었다"고 화풀이를 한 것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별 것 아닌 단골의 위세를 들어 음식 만드는 방법을 물어 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방법(요리법)을 알아내기 위해 들인 공을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앗아 올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방법을 물어 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데 그 방법대로 만들었지만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행패를 부리는 것은 아예 염치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떡볶기 맛은 장맛

더우기 방법을 안다고 다 똑 같은 맛이 나지는 않는다. 장담하건데 방법이 같아도 절대 같은 맛은 나지 않는다. 그 재료가 다르고 손맛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 예로 떡볶이 맛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고추장이다. 장맛이 다르면 당연히 음식맛은 모두 달라 진다. 가장 중요한 고추장이 다르니 떡볶이 맛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명색이 음식을 만든다고 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같은 맛이 나지 않는다고 성을 내는 걸 보면 '염치'만 없는 게 이나라 '상식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떡볶이집의 떡볶이가 맛있는 이유도 바로 고추장이었다. 떡볶이집 고추장은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담근 것이 아니라고 한다. 시어머님이 떡볶이 장사 때문에 직접 만들어 보내 주시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도 고추장 담그는 방법을 모르는 상황에서 장 담그는 방법을 알려 줄 수도 없고 해서 이런 사정을 이야기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염치를 모르는 여자는 이런 사정을 듣고도 "치사하게 단골에게도 만드는 방법을 거짓말 친다"고 화를 내고 갔다는 것이다.

그 뒤 이 떡볶이집은 주변에 작은 점포를 얻어 전문적으로 떡볶이집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뒤 처가가 신정동으로 이사했다. 그래서 이후로 이집 떡볶이 맛을 보지 못했다. 처가가 다시 신정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사했지만 이 떡볶이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듯 찾을 수 없었다.

오늘 에서 오는 길에 평창 휴게소에 들렸다. 아이들이 배고파했기 때문이다. 휴게소 주변을 돌다 보니 떡볶이가 보였다. 얼핏 보기에 맛있어 보여 2500원을 주고 사서 먹어 보았다. 밀가루떡의 퍽퍽함, 물엿의 단맛이 어울어진 전형적인 맛없는 떡볶이였다. 이 떡볶이를 먹다 보니 예전에 먹던 대치동의 떡볶이가 생각났다. 맛있는 고추장의 칼칼한 매운맛4가지없는 아가씨(아줌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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