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때 처음 인두를 잡았다.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아이들의 장난감을 고쳐 주거나 개조해 주는 일이 많았다. 당시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인두였다. 전기 제품을 수리하려면 납과 인두가 있어야 한다. 납은 비교적 가격이 싸고 또 고치려고하는 전기 제품에 이미 납이 묻어 있어서 따로 납이 필요하지 않은 때도 있다. 그러나 인두는 필수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님께서 한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오셨다. 인두였다. 당시에는 5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오신 나무 인두.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바로 아버님이 사주신 인두[1]다. 큰 아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 기대에 못미치는 큰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누나와 동생에 비해 구박을 많이 받았다. 이런 아버님이 사오신 인두. 한번 내색도 하지 않은 인두를 아버님이 어떻게 알고 사오셨는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꾸지람도 자식에 대한 큰 관심이라는 것을. 사실 이 인두는 내가 평생 공학이라는 외길을 갈 수 있도록 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12살에 처음 받은 인두로 동네 아이들의 태엽 자동차를 건전지 두개에 유선 리모콘으로 움직이는 전동 자동차로 바꾸어 주었다. 이때부터 주 관심사는 공학이었고 그외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성적으로는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전자 공학과는 절대 갈 수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면 재수를 해서 가겠다고 우겨서 전자 공학과에 입학을 했다[2].

그러나 막상 가본 전자 공학과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인두로 땜질하고 테스터로 찍어만 보면 될 줄 알았지만 의외로 전자 공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물리와 수학에 매달려야 했다. 처음으로 2학년때 배우기 시작한 전공도 비슷했다. 당연히 전공에는 흥미를 잃었다.

전공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3학년때 계산기 구조를 배우면서 부터였다. 결국 89년 컴퓨터를 구입하고 컴퓨터에 매달렸다. 매니아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 매달리기 시작하면 끝을 봐야 했다. 이런 성향때문에 컴퓨터를 시작한지 6개월만에 컴퓨터에 대해서는 누구 보다 잘알지는 못하지만 누구 못하지 않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컴퓨터를 좋아하고 컴퓨터에 관련된 일을 하고 주로 컴퓨터로 작업해서 먹고 산다. 40을 넘긴 나이다. 이 연배에는 컴퓨터에 대해 잘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더 열정적으로 컴퓨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은 어렸을 때 아버님이 사주신 나무 인두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아버님이 나를 인정해 준 선물이고 또 돌아 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아버님의 기일이다. 생에 대해 끝까지 연을 놓지 못하셨던 아버님. 이제와 생각해보면 40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나에 대한 걱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05년 설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 나셨으니 벌써 아버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에 산 것이 만으로 삼년이 된 것 같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 수록 아버님이 그리워 지는 것은 내 생생의 가장 큰 선물을 아버님께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님을 사랑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살아 생전 한번도 드리지 못했던 말이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어색하다는 이유로...

아버님 사랑합니다.

남은 이야기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오래된 덕에 우리 풍습에 토착화된 부분이 많다. 그 중 하나가 돌아가신분께 드리는 연도이다. 불교에서는 돌아가신 분을 위해 '49제'를 드린다. 그런데 이 49제는 스님이 직접 드리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천주교는 불교의 이 49제에 착안을 했다. 즉 스님이 지내는 49제를 천주교 신도들이 하는 것이 연도이다. 한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아시는 분들끼리 시간이 날 때 함께 오셔서 불교에서 불경을 외듯 성경을 계속해서 외곤한다. 상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피곤하다. 특히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아버님의 연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종교를 떠나 돌아기신 분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의식이라 마다할 이유도 없고 안할 것이라면 모르지만 할 것이라면 성심성의를 다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연도를 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힌 대목은 바로 "불효자"라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따라서 꼭 이대목에서 한번 쉬고 호흡을 고르고 연도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도를 편하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돌아가신 분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의식이라는 점도 있지만 의식 자체가 우리의 전통 의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기 힘들었다는 점도 있다.

신도: 세례 받으셨어요?
도아: 아니요?
신도: 그래요?

도아: 왜 그러시는데요?
신도: 예. 연도를 너무 잘하셔서.

마음에 닿은 연도라서 그런지 오시는 분들이 고마웠고 돌아가신 아버님께 드리는 마직막 효도라는 생각에 성심성의 껏 연도를 했다. 그러다 오신 분 중 한분이 내가 천주교인으로 아시고 물으신 것이다. 천주교인이라면 같은 성당을 다닐 텐데 안면이 없고, 천주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많이 해본 것 같은 연도 솜씨에 다소 이상하셨던 것 같다.

관련 글타래


  1. 두 번째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 I에서 소개한 큰 고모님이 주신 꼬깃꼬깃한 담배 반갑이다. 
  2. 정확히는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두번 입학했다. 즉, 재수 효과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