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vs 대세

정동영 후보가 범여 진영의 승리를 원했다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줄테니 네가 사퇴하라는 단순한 논리 보다는 범여 승리를 위해 내가 양보할 테니 더 큰 통합을 위해 두 사람은 단일화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실 정치에 더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제안으로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산술적 덧셈으로는 38대 48로 열세지만 범여 진영은 단합으로 이탈된 표까지 충분히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동영과 노무현

먼저 이 글은 정동영 후보에 대한 비난이 아님을 먼저 밝힘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으로 한때 좋아했던 정치인에 대한 제 나름의 아쉬움에 대한 표현입니다.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정동영 후보 스스로 한적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천년 민주신당의 공식 대선 후보로 뽑혔을 때입니다. 지금은 열린 우리당을 깨고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욕을 먹고 있지만 어찌보면 그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분도 정동영 후보입니다.

당시에는 아주 새로웠던 국민 경선제안하고 이인제 후보의 수구적 작태를 비난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 그 자리를 꾿꾿히 지키며 자신이 제안한 국민 경선을 완성한 분이 정동영 후보입니다.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뒤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한 이유도 정동영 후보입니다. 물론 정동영 후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노무현 후보가 정동영 후보와 추미애 의원을 정몽준 후보보다 더 아꼈기 때문에 발생한 일입니다.

저는 열린 우리당에서 가장 좋아했던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도 정동영 후보도 아닙니다. 바로 김근태 의원이었습니다. 왜 김근태 의원을 좋아했었는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습니다.

발 빠른 정치인

정동영 후보는 언론인 출신답게 말솜씨가 일품입니다. 유시민 의원과 후보 경선에서 어떻게 우리 유시민 의원을 당하겠느냐고 하셨지만 정동영 후보의 말솜씨도 그에 못지 않게 일품입니다. 또 정동영 후보는 사태에 대한 인식이 빠르고 따라서 상당히 발빠른 정치를 해왔습니다. 발빠르다는 것은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켠으로는 선이 얇은 정치를 한다는 것과도 일맥 상통합니다.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열린 우리당을 깨고 나온 것도 정동영 후보의 이런 대처 능력(선이 얇은 정치)으로 보입니다.

대선 중 이 글을 쓸까 싶었지만 시기적으로 늦기도 했고 정동영 후보에 대한 사퇴의 글로 보여질까 싶어서 쓰려다 포기하고 다시 쓰려다 포기한 글이 바로 이 글입니다. 이 글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지 마시고 순수하게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 지지자로서 범여 진영의 승리를 바랬던 한 사람의 의견으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정동영 후보가 "권영길 후보와 문국현 후보 두 사람이 후보 단일화를 한다면 사퇴한 뒤 범여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라고 했다면

정동영 후보는 국민 경선에서 부터 후보 단일화를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러나 색깔로는 가장 비슷한 민주당과의 통합도 실패했습니다. 문국현 후보에게 다 양보했다고 주장 하지만 제가 보기에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양보란 나한테 필요없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한 것은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패배가 문국현 후보 독자 노선을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문국현 후보의 표가 더해졌다면 정동영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대의 vs 대세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문국현 후보의 표는 정동영 후보의 표와 별로 겹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문국현 후보의 표는 권영길 후보와 겹칩니다. 권영길 후보가 당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를 받은 이유도 일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동영 후보가 범여 진영의 승리를 원했다면 단순히 원하는 것을 줄테니 네가 사퇴하라는 단순한 논리 보다는 범여의 승리를 위해 내가 양보할 테니 더 큰 통합을 위해 두 사람은 단일화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실 정치에 더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런 제안으로 후보 단일화가 됐다면 산술적 덧셈으로는 38대 48로 열세지만 범여 진영은 단합으로 이탈된 표까지 충분히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것은 가정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정동영 후보에게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권영길, 문국현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하고 범여 진영이 승리한다면 그 승리의 일차적인 공은 정동영 후보께 돌아갑니다. 만약 실패해서 권영길 후보, 문국현 후보, 정동영 후보가 각각 대선에 나간다고 해도 범여 진영 패패의 책임은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권영길 후보, 문국현 후보에게 돌아갑니다. 즉, 정동영 후보로는 던질 수 있는 최대의 승부수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권영길 후보, 문국현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정동영 후보, 문국현 후보의 단일화도 가능하고 이 경우 정동영 후보로의 통합이 더 힘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당의 이익, 개인의 이익 등 정치적인 역학관계를 모두 배제한 대의만을 고려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비슷한 승부수를 통해 이미 범여 진영이 승리한 예가 있습니다.

다시 노무현

바로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정몽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단일화가 없었다면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힘들었습니다. 어차피 색깔이 전혀 다른 이회창 후보에게 정권을 주는 것 보다는 정몽준 후보의 요구대로 단일화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단일화에 실패했다면 당연히 이회창이 승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몽준으로 단일화해서 승리한다고 해도 노무현 후보로서는 이회창 대신에 정몽준후보라는 차선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몽준 후보의 요구대로 단일화를 진행한다고 해도 노무현 후보에게는 손해볼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표는 이른바 변하지 않는 지지표이고 정몽준 후보의 표는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는 표(부동표)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승부를 던지는 것은 승부사의 몫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이런 승부사의 손을 들어주는 때가 많습니다. 정동영 후보께서 다음 대선에 다시 대선 후보로 나설지 아닐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또 다시 대선 후보로 나서신다면 당리당략과 개인적인 이익 보다는 범여의 승리를 위해 정말 대통합의 기틀을 다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외에 범여 진영의 잘못된 대선 정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혹 이런 글이 범여 진영의 분열로 비추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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