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 by 도아
5.18 이라는 피의 댓가로 권력을 쥔 신군부는 국민들의 의식화와 이로 인한 저항을 막기위해 3S 라고 불리는 우민화 정책을 구사했다. 즉, Sex, Sports, Screen을 지칭하는 우민화 정책은 국민에게 비판의식을 빼았고, 삶의 주체가 아니라 단순히 정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객체로서의 삶을 국민에게 강요하기 위한 정책이 었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프로스포츠이다. 국민은 정치의 결과보다는 경기의 결과를, 정책보다는 경기 전략을, 실정보다는 자기팀의 연패에 더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82년 개막된 프로야구는 국민적 관심과 성원속에서 시작되었고, 그 첫해 박철순이라는 스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길이 남을 것임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년우승과 스타 탄생은 길고 긴 터널의 시발점이었다. 그 후 박철순은 허리 디스크로 인한 부상,수술, 재기를 반복했다. "전성기 때 컨디션을 회복했다"고 팬들이 좋아할무렵, 계속되는 수술로 지게된 빚을 갑기위해 CF를 촬영하던 중 또 다시 부상을 당해 다시 수술과 재기를 거듭 해야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쳐서라도 포기했을 만한시간이 지났고 그러한 시련은 신의 질투인양 계속되었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갈 때 쯤이면, 이제는 포기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쯤이면 어김없이 마운드에서 자신의 마지막 투혼을 불태우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수이탈 주동자로 선수생활이 막막해질 때, 이제 그의 투혼을 다시 볼 수 없겠구나하는 생각에 조금은 아쉽고, 그의 투혼이 그렇게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더할 수 없는 연민을 느꼈었다. 그러나 다음해,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OB 우승과 검게 주름진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면서 다시 그의 투혼과 신념, 야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앞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기나긴 시련의 터널을 뚫고 다시 우리 앞에서 눈물 짓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는 힘들어 지칠 때가 아닌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