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 교사
일단 이 선생님의 매질 방식을 설명하겠다. 수업중에 딴 짓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교탁 옆으로 불러낸다. 기분이 좋으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토끼뜀을 뛴다. 기분이 나쁘면 반장보고 걸래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걸래에서 자루를 분리한 뒤 종아리부터 때리기 시작한다. 종아리도 가장 부풀은 부분을 먼저 때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쳐서 종아리가 부풀도록 한 뒤 부풀어 오르면 이 부분을 때린다(대부분 이때 터진다).
체벌을 위한 체벌
학창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이 많다. 선생님과 좋은 추억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많다. 오늘 얘기하려는 선생님은 요즘 얘기로 하면 아마 폭력 교사로 짤렸을 법한 선생님이다. 운이 없어서 인지 아니면 당시 상황이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런 선생님들을 참 많이 겪어 봤다.
중학교때 수학 선생님이셨다. 덩치는 산 만[1]하고 평상시에는 마음씨도 좋아 보이는 선생님이다. 그런데 수업 방식은 영 아니었다. 어떻게 가르치는지 알면 거의 기절할 정도이다.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오면 백묵으로 칠판을 수직으로 그어 세토막을 낸다. 그리고 첫 토막부터 가지고 온 노트를 그대로 적는다. 이렇게 세토막을 다 적으면 자리에 앉아 창밖을 구경한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워버리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때 죽으라고 받아적는다.
어느 정도 필기가 됐다 싶으면 다시 세토막 중 첫토막을 지우고, 다시 필기를 한다. 이렇게 다시 세토막을 채우면 또 자리에 앉아 창문을 보면서 논다. 한시간 수업이면 한시간 내내 필기만 하고 두시간이면 역시 두시간 내내 필기만 한다. 이러니 수학이 재미있을리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지만 이때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2]. 그런데 이 선생님은 엄청난 체벌 주의자(체벌을 즐긴다)였다. 수업중에 딴 짓을 하다 걸리면 속된 말로 골로 간다.
일단 이 선생님의 매질 방식을 설명하겠다. 수업중에 딴 짓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교탁 옆으로 불러낸다. 기분이 좋으면 수업이 끝날 때까지 토끼뜀을 뛴다. 기분이 나쁘면 반장보고 걸래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걸래에서 자루를 분리한 뒤 종아리부터 때리기 시작한다. 종아리도 가장 부풀은 부분을 먼저 때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쳐서 종아리가 부풀도록 한 뒤 부풀어 오르면 이 부분을 때린다(대부분 이때 터진다).
종아리를 때리고 시간이 남으면 이번에는 장딴지를 종아리를 때리는 방식과 똑 같은 방식으로 때린다. 맞다가 두려워진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무릅을 꿇고 빌어도 소용이 없다. 시간이 끝 날때까지 때린다. 한시간이 남았으면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계속 맞아야 한다. 이렇게 장딴지를 때리고 시간이 남으면 이번에는 엉덩이를 같은 방법으로 다시 때린다. 엉덩이를 이렇게 때리고 시간이 남으면?
장딴지부터 다시 시작한다.
따라서 이 선생님 수업시간에는 속된말로 쥐죽은 듯 고용해지기 마련이다. 가끔 이러한 고요함을 깨는 사람도 있다. 나도 본의 아니게 이런 고요함을 깻고 한시간 동안 죽도록 맞았다. 지금까지 당한 체벌 중 단 한순간도 잊지 않은 체벌이었다.
'나는 체벌을 반대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학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위해 학생을 때리는 '사랑의 매'라면 반대가 아니라 찬성한다. 그러나 문제는 사랑의 매를 때릴 줄 아는 선생이 극히 드물며, 위의 예에서처럼 체벌을 위한 체벌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사랑의 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12년간 여러 선생님을 겪으면서 사랑의 매를 때리는 선생님은 딱 한분 만났었다. 기술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보통 고등학교가 그렇듯 교실 청소를 마친 뒤 짤짤이가 한창이었다. 도박이라고 하면 한때 타자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였지만 짤짤이는 전공이 아니므로 보통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눈에 뭐가 쒸었는지 짤짤이를 하다가 기술 선생님께 걸렸다. 모두 교무실로 끌려갔다. 보통은 귓방망이가 먼저 날라와야하는데 기술 선생님은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지 도박을 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자잘못을 따졌다. '짤짤이 좀 하면 어떠냐'고 따지는 녀석이 있었으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겠지만 우리 모두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자 잘못의 댓가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하나는 부모님을 모셔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섯 대씩 맞는 것이었다. 당연히 부모님을 모셔오는 것보다 맞는 것이 낫기 때문에 다섯 대씩 맞는 것을 선택하고 모두 업드렸다. 그리고 정확히 다섯 대씩 맞았다. 다 맞고 일어난 사람에게 선생님은 한마디씩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야. 자식아, 이렇게 잘생긴 놈이 공부도 잘하면 좀 좋니?
맞은 아이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학생 특징에 따라 기분을 북돋와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맞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짤짤이를 그 뒤로 안한 것은 아니지만 짤짤이를 할 때면 이 선생님이 꼭 생각 낫다. 지금도 아무도 없는 빈 교무실에서 체벌 뒤 학생의 어깨를 두드리는 이 선생님 모습이 떠 오른다.
첫번째 예의 선생님과 두번째 예의 선생님.
어떤 선생님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체벌의 타당성에 대한 시작은 이러한 현실로 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