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자식은 부모를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 저러한 이유로 자식을 먼저 보내기 보다는 자식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먼저 가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서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프로그램을 짜는 것외에 따로 하는 일이 많습니다. 책을 나르는 경우도 있고, 오늘처럼 입고된 책을 검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모 대학에 납품할 책을 검수하고 있었습니다. 검수하는 책을 보다 보니 만화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화책의 홍보 문구에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병에 걸린 자식앞에서도 보통 하루라도 먼저 죽기를 소망하는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이라니?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만화의 나머지 광고 문구를 확인했습니다. 장애인[1] 공동 작업장 '도토리의 집' 설립 실화를 바탕으로한 만화였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라는 말 뜻을 이해했습니다.
가슴이 져려옵니다.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식을 바라보며 이보다 더한 소원이 있을까요? 내 자식이 그렇지 않다고 행복해하며 살아 왔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똑 같은 부모의 마음인데... 우리는 이렇게 편을 가르고 살아왔나 봅니다. 저는 누구 보다도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아이보다 단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이 소망보다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 저는 장애인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따라서 장애인을 대신할 말과 그에 대한 글을 따로 올릴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