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가 목숨으로 지킨 박종운, 무엇하고 있을까?

2009/06/18 11:52

짬뽕 한나라당

박종운을 보면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보인다. 박종철은 선배 박종운의 행적을 대지 않아 물고문을 받다 죽는다. 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사람이 '행불상수'로 유명한 안상수다. 또 다른 인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직접 관련이 있는 박종운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모두 박종철 고문치사의 주범인 한나라당에 투신,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친일매국세력, 독재찬양세력, 변절자세력이 짬뽕된 당인 셈이다.

목차

탁치니 억!하고

지난 10년간 발전한 우리나라 민주주의 초석은 바로 '6.10 평화대행진'이다.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던 전두환 정권은 6.10 평화대행진을 기점으로 직선제로 개헌하며, 결국 97년 김대중 대통령이 50년 묵은 썩은 권력을 교체하기 때문이다. 이 6.10 평화대행진을 촉발한 것은 바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였다.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 열사는 '박종운의 행적' 때문에 물고문을 받다 고문사한다. 이에 경찰은 "흥분한 수사관이 책상을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어이없는 발표를 한다. 전두환 정권은 박종철 고문치사를 덮으려고 하지만 박종철 고문 치사를 담당했던 서울지검 '안상수' 검사[1]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만 천하에 드러난다.

서울지검 안상수 검사는 고문치사를 조작하려 부검장에 온 경찰에게 "고문사는 아닌 것 같은데 부검장에 경찰이 있으면 고문사가 아니라고 발표해도 기자가 믿지 않는다"며 경찰을 따돌린다. 안상수 검사의 소신있는 수사와 국과수의 황적준 부검의의 부검으로 물고문에 의한 고문치사의 전모[2]가 드러난다. 그리고 결국 국민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초석이 된 '6.10 평화대행진'이 일어난다.

박종운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데일리안작년 3월 10일자 기사에 따르면 박종운은 한나라당에 입당, '4.9총선'에서 경기 부천 오정에 출마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출마의 변'을 보면 정말 '똥'이 생각난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좌파적 사고'로만 보면 내가 어떻게 한나라당과 함께할 수 있냐고 비판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곧 민주주의'임을 이해한다면 내가 시장경제에 가장 친화적인 한나라당에 들어와 정치를 하는 것 또한 일관된 민주주의의 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종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울러 그는 "박종철, 그의 눈동자는 항상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다”며 "그의 민주화 정신을 기리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바로 '자유시장경제'다. 민주화를 되물리고 독재 시대로 가겠다는 게 아니라, 편협한 좌파적 사고에서 벗어나 진정한 ‘소비자 민주주의'를 이뤄야 한다는 것임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먼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주권이 국민에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자유시장경제는 결과적으로 '승리자에게 권력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 권력 쟁취의 수단이 군대가 아닌 시장이라는 차이 밖에 없다. '박종운의 출마의 변'이 더 '똥'같은 것은 한나라당은 고문전문 공안검사 정형근(한나라당, 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당이라는 점이다.

추가정보

댓글에 본문에 나오는 '안상수'가 한나라당의 안상수인지를 묻는 질문이 올라왔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의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본문의 안상수는 현 한나라당 의원 안상수로 밝혀졌다. 다음은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검사생활 10년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대학시절의 시위 경력 때문에 검사발령을 받지 못할 뻔하다가 겨우 전주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첫 출발했다. 1985년 3월부터는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근무하였고, 1987년 1월 15일 운명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박종철군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검사생활 9년동안의 육감으로 이 사건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정권의 안보에 관련된 시국사건은 외부 압력으로 소신껏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사건을 맡게 되면 과거의 예로 보아 사표를 각오하지 않는 한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박군사건을 올바르게 처리해 내겠다는 나의 자세와 의지는 확고했다. '정의에 반하여 비굴하게 사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사직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박군사건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나갔다. 결국 나는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양심이 시키는 대로 진실을 밝혀 6월 민주항쟁과 6·29 항복선언을 받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거짓은 결코 영원히 감출 수 없고 결국에는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세상의 평범한 이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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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때는 용기있는 검사라도 있었다. 오늘 우리나라 견찰과는 달리. 
  2. 참고로 이런 고문의 기법은 모두 일제시대에 친일매국 경찰들이 배운 기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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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평화대행진, 고문치사, 박종운, 박종철, 안상수, 전두환, 정형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