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영웅'
'불멸의 이순신'을 볼때면 항상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이다.
"영웅이 태어나도 영웅을 가질 수 없는 불쌍한 민족"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다, '순국'이다라는 등 의견이 갈려있다. 그러나 나는 "이순신은 자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적'으로 죽기 보다는 '영웅'으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3전 23승의 신화를 이룩한 이순신이라면 전장의 판세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량해전이 전쟁의 끝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쟁이 끝나면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적이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살아 역적으로 죽는 것 보다 자신이 창조한 전장에서 '장수로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역시 잘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없다
최근 KBS에서 방영했던 불멸의 이순신을 다시 보고 있다. 불현듯 '이명박'과 '이순신'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싶어서 찾아 봤다. 그런데 '없다'. 이순신의 확고한 신념이 이명박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이순신의 미래를 보는 신념"과 눈 앞의 평범한 사실도 보지 못하는 똥고집을 같은 선상에 둘 수 없다. 이명박도 이씨고 이순신도 이씨이기 때문에 성이 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명박과 이순신을 같은 성씨로 보면 이순신의 후예가 싫어할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둘다 '숫컷'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비교하면 '쥐박쥐'를 너무 우대하고 이순신을 하대하는 것 같다[1].
불멸의 '영웅' vs 소멸의 '쥐박쥐'
'불멸의 이순신'을 볼때면 항상 느끼는 감정은 두 가지이다.
영웅이 태어나도 영웅을 가질 수 없는 불쌍한 민족[2]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다, '순국'이다라는 등 의견이 갈려있다. 그러나 나는 "이순신은 자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적'으로 죽기 보다는 '영웅'으로 사는 길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3전 23승의 신화를 이룩한 이순신이라면 전장의 판세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노량해전이 전쟁의 끝이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쟁이 끝나면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역적이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았을 것[3]이다. 따라서 살아 역적으로 죽는 것 보다 자신이 창조한 전장에서 '장수로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역시 잘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
무모하리만치 풍랑과 싸운 한 사내.
잦아 드는 풍랑에 몸을 던지는 한 사내.
미련도 여운도 없다.
이순신은 성스러운 영웅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불멸의 이순신이다.
달라지지 않는 역사
임진왜란에서 10전 전승을 기록한 이순신에게 선조의 칙령이 하달된다. 의주까지 피난한 선조는 10전 전승의 대업을 달성한 이순신에게 왜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왜군의 부산 본진 공격을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 수군과 왜군의 전력차가 너무 심하다. 본진을 공격한다면 조선수군이 멸절할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부산 본진의 공격을 거절한다. 광해군의 밀명을 받은 윤두수는 다시 이순신을 회유하기 위해 전라좌수영을 방문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윤두수의 말도 거절한다. 분노한 윤두수는 전라우수군의 이억기, 광주목사 권율[4]에게까지 가서 이순신을 칠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전장의 판세를 정확히 읽고 임진왜란을 이순신과 함께 승리로 이끈 권율과 이억기 모두 거절한다. 결국 원균을 찾아간 윤두수는 전라좌우수군을 접수한 뒤 부산 본질을 칠 것을 명한다. 물론 원균의 좌장 이영남의 반기로 이 음모는 무산된다.
"전장의 장수가 유능하다"고 해도 그 장수를 믿기 보다는 자신의 상황, 똥고집으로 밀어 붙인다. 그리고 그 장수가 말을 듣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아 내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말 잘듣는 가장 무능한 자에게 넘긴다[5].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리고 패전의 책임을 물어 그 무능한 자를 다시 내친다. 우리 역사는 이런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6]이다.
'불멸의 이순신'은 드라마이다. 따라서 '불멸의 이순신'에 나온 내용 그 자체가 역사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아니라고 해도 이 부분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똑 같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
이명박이 대운하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물을 만나면 살것이요. 불을 만나면 죽을 것"이라는 '쥐박쥐'의 생사관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불멸의 이순신"이 되고 싶지만 4년이 지나면 "소멸의 쥐박쥐"가 될 것은 이명박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업적으로 영원히 기억되기는 힘들지만 '한반도에 새겨진 대운하는 영원히 남는다'. 즉, 업적으로 이룰 수 없는 '불멸'을 삽질로 이루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다.
- '쥐박쥐'와 '이순신'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순신 후예나 이순신께 모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른다. 과거 '차범근' 감독을 많은 네티즌들이 비난할 때 차범근 감독을 옹호하던 한 네티즌이 던진 절규였던 것 같다. 당시 나도 차범근 감독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려고 했지만 오늘 내일 미루다 보니 결국 올리지 못했다. ↩
- 극중 윤두수가 전쟁 후 이순신의 위상을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전란 뒤 '이순신'이 살아 남았다면 '역성'도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충심'이 '역성'을 막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
- 서애 유성룡의 공을 이순신 보다 더 크게 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전쟁터의 승장은 이순신이지만 무명의 이순신과 권율을 전라도에 배치한 것이 유성룡이었기 때문이다. ↩
- 이 부분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미래를 보는 비전과 널리 듣고 구하는 것만으로 그 소임을 다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부족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
-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리겠지만 '노무현' 전대통령도 이런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