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컴맹 시절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행한 명령이 del .
이었다. "지우겠냐"는 확인 메시지가 떴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 Y를 눌렀다. 그리고 dir
을 다시 실행했다. 그런데 여전히 .과 ..은 남아 있었다. del *.*
과 del .
이 똑 같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신있게 del ..
을 실행했다. 그런데 역시 똑 같았다.
갑자기 "사고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컴맹 시절
시장 점유율은 예전만 못하지만 현재 팔리고 있는 제품이기 때문에 추억의 프로그램이라 부르기 조금 미안한 감도 있다. 그러나 현재 아래아 한글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내게 '아래아 한글'도 추억의 프로그램이다. 또 당시 절대적인 점유율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아래아 한글'은 추억의 프로그램이다.
내가 처음 '아래아 한글'을 본 것은 1989년이다. '아래아 한글'의 출시를 생각하면 의외일 수 있지만 사실이다. 컴퓨터를 처음 구입한 뒤 탁월한 실험 정신 때문에 컴퓨터를 날려 먹었다. 아마 이 당시 컴퓨터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일본 아스키 출판사의 MS-DOS 3.0이라는 책[1]을 기억할 것이다.
원래 공부하는 스타일이 여러 번 보고 이해하는 타입이 아니라 한번 볼 때 확실히 하는 타입이었다. 책에 나온대로 임시 디렉토리를 만들고 이 디렉토리에서 del *.*
[2]를 실행해 봤다. 그리고 다시 dir
명령[3]을 입력하자 분명이 모든 파일을 다 지웠는데 아직도 .
와 ..
은 남아 있었다. 설명을 보니 점(.)은 자기 디렉토리, 점 두개(..)는 친디렉토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행한 명령이 del .
이었다. "지우겠냐"는 확인 메시지가 떴다. 조금 두려운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일단 Y를 눌렀다. 그리고 dir
을 다시 실행했다. 그런데 여전히 .과 ..은 남아 있었다. del *.*
과 del .
이 똑 같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신있게 del ..
을 실행했다. 그런데 역시 똑 같았다.
갑자기 "사고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부팅을 해봤다. 그러나 부팅이 되지 않았다. C:\IMSI
폴더에서 del ..
을 실행하면 친디렉토리인 C:\
의 파일이 모두 삭제된다. C:\
에는 시스템 파일이 있기 때문에 부팅할 수 없었다. 아무튼 부팅이 되지 않으니 초보자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컴퓨터를 구입한 곳에 전화를 하고 컴퓨터 본체를 매고 청계천[4]을 방문했다.
컴퓨터를 봐주던 직원이 무엇인가 손[5]을 대더니 "아, 데이타는 다 남아 있네요"라고 하는 말[6]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는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도 깔아 드릴까요?"하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메뉴 방식이 예전에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 만난 '아래아 한글'
당시 워드라고 하면 삼보 보석글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자체 한글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도깨비와 같은 외부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글을 입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보석글의 인터페이스였다. 지금은 F10을 누르면 나오는 풀다운 메뉴가 일반적이지만 당시 풀다운 메뉴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다.
보석글은 풀다운 메뉴 방식이 아니고 PC Tools와 같은 메뉴 방식이었다. 메뉴에 반전 막대를 이동한 뒤 엔터를 치면 하위 메뉴가 나오는 형태였다. 따라서 보석글을 사용할 줄 모르는 나는 보석글만 실행하면 빠져 나오는 방법을 몰라 꼭 컴퓨터를 껐다 켜야 했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모든 메뉴가 풀다운 메뉴로 구성된 워드 프로세서를 봤으니 얼마나 신기할까?
복사해준 '아래아 한글'을 가지고 집에와서 열심히 사용했다. 컴퓨터를 구입하고 워드는 한번도 사용해본적이 없었지만 '아래아 한글'은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편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인쇄를 하려고 하니 인쇄 메뉴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이 '아래아 한글'은 정식판이 아니라 0.9 베타판이었다.
정식판이 나오기 전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인쇄가 되는 정식판이 나오길 학수고대했다. 그리고 등장한 아래아 한글은 국내 워드 시장을 완전히 점령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래아 한글'은 인터페이스 부터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일부 보석글을 이용해서 쓴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석글 보다는 인쇄를 더 선호했다. 그 이유는 보석글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고 글꼴이 예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래아 한글'은 자체 글꼴을 사용했기 때문에 글꼴도 보석글 보다 훨씬 예뻤다. 여기에 비트맵 글꼴이기는 하지만 '아래아 한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당히 다양한 글꼴까지 등장했다. 선을 긋는 것도 보석글과는 비할바가 아니었다. 상황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래아 한글'이 시장을 점령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아래아 한글' 1.51은 상당히 가볍다. 5.25인치 디스켓 한장에 모두 들어간다. 디스켓을 나누면 XT에서도 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래아 한글'이었다. 따라서 요즘은 PDA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화면은 샘플로 포함된 장산곶 매와 '아래아 한글'의 자판 보기 기능[7]이다.
아래아 한글의 전성기
그러나 역시 문제는 불법 복제였다. 그래서 하드웨어키[8]까지 등장했다. 아무튼 비트맵 글꼴을 사용하던 1.51 시절에 벡터 글꼴을 사용하는 백상이라는 워드 프로세서가 등장했다. 지금 생각으로는 처음부터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무료로 배포하면서 버그를 잡은 뒤 유료화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상은 "벡터 글꼴을 사용한다"는 이유[9]로 너무 조급히 유료화했고 그 결과 수많은 버그 때문에 사용자의 외면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상의 기세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워드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한컴에서 백상 정도에 시장을 놓칠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래아 한글'에서도 벡터 글꼴을 지원하는 '아래아 한글'을 내 놓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2.0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아래아 한글'은 한메 타자교사와 함께 세벌식 보급에 가장 큰 기여를 한 프로그램이다. 이찬진씨가 처음 한글과 컴퓨터를 시작한 곳이 세벌식 보급을 주도한 한글문화원이며, 이때 한글문화원에 있던 정내권, 박흥호씨등 외부 직원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2.x때까지 한글과 컴퓨터는 승승장구한다. '아래아 한글'의 성장세가 멈춘 것도 사용자 환경이 도스에서 윈도우로 갈 것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Windows 3.1 사용자는 도스용 '아래아 한글'을 사용하는 것에 별 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한컴측도 윈도우용 '아래아 한글'의 개발에 미온적이었으며 실제 윈도우용 '아래아 한글'이 등장한 것은 윈도우95가 등장하는 시점인 1995년이기 때문이다.
윈도우용 '아래아 한글'은 기존 도스용 '아래아 한글'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완성형 한글 코드만 지원하는 Windows 3.1의 입력체제 대신에 조합형을 그대로 사용했고 인터페이스 역시 독자적인 인터페이스를 사용했다. 글맵시등의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보면 성공한 판이었다. 그러나 안정성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외형을 보면 현재의 '아래아 한글'과 큰 차이는 없다. 도스용이라 도구막대가 없지만 기본적인 구성은 큰 차이가 나지
한컴의 최대 실패작, 워디안
그러나 한컴의 최악의 실패작은 바로 워디안이었다. 이전 문서와 호환도 되지 않고 기존의 한글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거의 버린 제품이었다. 결국 아래한 한글 97 사용자는 판올림을 꺼리게 되고 워디안 문서를 97에서 읽을 수 없어도 97을 고수하는 사용자가 많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아래아 한글 2002가 나오는 시점은 2001년이기 때문에 한컴은 97년부터 2001년까지 약 사년 동안 새제품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 된 셈이다. 이때 워드 시장의 대부분이 MS 워드로 넘어 갔다고 보면 된다. 이 부분은 몇년 동안 4.x판에서 새제품을 내놓지 못해 Internet Explorer에 시장을 빼았긴 넷스케입(Netscape)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나는 MS 워드 보다는 '아래아 한글'을 고수했다. 그 이유는 '아래아 한글'의 '자동 저장 기능' 때문이었다. '아래아 한글'에는 두 가지 자동 저장 기능을 이전 판부터 제공해 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나는 지정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저장하는 기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정된 시간 동안 입력이 없으면 자동으로 저장하는 기능[10]이었다.
요즘은 MS 워드도 이 기능이 있지만 2002년까지는 '아래아 한글'에만 있던 기능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기능은 정전과 같은 응급 상황에도 피해를 최소화해서 자료를 복구할 수 있기 때문에 '아래아 한글'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능이었다. 또 윈도우95처럼 불안정한 운영체제에서도 MS 제품 보다는 안정적으로 동작한다는 것이 내가 '아래아 한글'을 계속 사용한 이유였다.
한글과 컴퓨터의 사업
내가 알고 있는 것 보다는 더 많은 사업을 했겠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사업만 해도 꽤 여러가지가 되는 것 같다.
- 출판
- 월간 '한글과 컴퓨터'를 발간하기도 했으며 '한컴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또 이 출판사를 통해 "따라해 보세요"와 같은 시리즈를 출간하기도 했다.
- 네트워크
- 한컴 네트워크라는 ISP를 운영한 적도 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도메인 주소가
hnc.com
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네트워크의 개념이 워낙 생소한 때였다. 따라서 업체에 프록시 서버에 대해 문의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프록시 서버를 찾다가 한컴 네트워크의kiwi.hnc.com
이라는 프록시 서버를 발견하고 이 서버를 통해 학교 네트워크의 속도를 300cps에서 20000cps까지 올렸던 적이 있다. - 검색
- 사람들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국내 검색엔진 중 한때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심마니도 한컴에서 운영했었다. 나중에 데이콤에 인수되고 심파일만 명맥을 유지하다 결국 천리안으로 통합되었다.
- 학원
-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찬진씨의 이름을 단 컴퓨터 학원 사업도 했었다. 한컴이 이사업에 뛰어든 것은 패착이라고 본다. '아래아 한글'을 키워준 어제의 동지를 모두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업으로서 역할을 다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서민의 삶터인 구멍가게까지 터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 넷오피스
- 네트워크를 통해 오피스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인터넷 팩스를 통해 팩스를 보내는 등 말 그대로 네트워크 사무실이다. 요즘도 사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넷오피스 회원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
당시 이천에 있는 현대 정보 기술(HIT)에서 CGI 강의를 할 때였다. 강의 교재가 부족해서 강의를 끝내고 오면 밤새 PPT 자료를 준비하고 새벽에 HIT로 가서 강의를 했다. 그날도 밤새 PPT 자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날 강의의 마지막 부분까지 작성하고 한번 훏어 본 뒤 저장 단추를 눌렀다.
"알 수 없는 지랄 같은 오류로..."
섬뜻했다. 여기서 확인 단추를 누르면 지금까지 작성한 강의 자료가 사라진다. NT였다면 네트워크로 루트 폴더에 접근이 가능하고 최소한 임시 파일이라도 복구할 수 있다. 그런데 95라 공유 폴더가 아니면 네트워크로 접근할 수 없었다. 확인 단추를 누르지 않으면 컴퓨터가 동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파워포인터의 자동 저장 기능이라도 사용했다면 괜찮겠지만 내 컴퓨터가 아니고 파워포인터가 설치된 다른 사람의 컴퓨터였기 때문에 장담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확인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 밤새 작업한 것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 뒤로 MS 제품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아울러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이런 PPT를 사용할 일은 더 없어졌다. 대신에 거의 모든 문서는 HTML로 작성했다. 발표자료도 HTML, 강의자료도 HTML. 교재를 만들 때만 '아래아 한글'을 사용했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사용하지 않는다. 우영이가 신문을 만들자고 하면 가끔 '아래아 한글'을 사용하는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아래아 한글'이 아니라 MS 워드를 가르친다.
- 연구실 선배형이 가지고 있던 책이다. 얼핏 보니 컴퓨터를 구입할 때 주는 매뉴얼 보다 훨씬 좋아서 빌려 사용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당히 유명한 책이었다. ↩
- 도스에서 파일을 지우는 명령으로 이 명령을 실행하면 현재 디렉토리의 모든 파일을 삭제한다. ↩
- 디렉토리의 목록을 확인하는 명령으로 이 명령을 실행하면 디렉토리에 있는 파일을 확인할 수 있다. ↩
- 지금은 컴퓨터라고 하면 용산을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도 청계천이었다. 그 뒤 용산으로 이전했다. ↩
- 별 것없다. 부팅 디스켓으로 부팅한 뒤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이 상태에서 시스템 파일만 복사하면 된다. ↩
- 이때는 이 직원의 실력이 아주 대단한 것으로 생각했다. 석달 뒤 CMOS 배터리가 나가 교체받으러 갔을 때는 이 직원의 실력 보다는 내 실력이 더 좋았다. ↩
- 화면을 잡아 이 자판을 인쇄한 뒤 코팅해서 가지고 다녔다. ↩
- 레이저를 지원하는 판에서 하드웨어 키가 등장했지만 얼마되지 않아 깨졌다. ↩
- 전자출판 기능을 지원한다. 그러나 버그가 너무 많아 유료 사용자의 원성이 자자한 프로그램이었다. ↩
- 이렇게 저장된 파일은 ASV라는 확장자를 가지며 '아래아 한글'을 다시 실행할 때 불러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