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이 민의? 아니 조작!
흔히들 서명을 민의의 발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명의 목적과 그 절차가 정당하다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소수 보다는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서명은 서명을 발의한 사람의 주관대로 만들기 상당히 쉽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무슨 서명인지 모르고 서명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또 서명하러 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서명을 하지 않고 나올 사람도 많지 않다.
심각한 주차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세워진지 20년 가까이 된다. 그렇다 보니 요즘 짓는 아파트처럼 주차 공간이 넓지 못하다. 지방이고 당시에 차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보통 한가구에 차가 한대 있는 것은 일반적이고 많은 곳은 두대씩 있는 곳도 있다. 특히 충주라는 지역이 도농통합도시이다 보니 자가용과 농업용 트럭을 함께 가지고 있는 세대가 많다.
이렇다 보니 주차난이 아주 심각하다. 저녁이면 아파트 주변 도로는 완전한 주차장으로 변한다. 넓은 도로는 아니지만 양옆으로 주차한 차들 때문에 아파트 앞 도로는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로 바뀐다. 설사 도로에 주차한다고 해도 교차로나 아파트 입구처럼 시야 확보가 중요한 곳에는 주차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아파트 입구까지 막고 주차하는 차도 종종 있다.
이렇다 보니 우리 아파트에서도 이런 주차난을 심각하게 고민한 것 같다. 올초인지 작년 말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아파트에 들어가는데 경비 아저씨가 부르셨다.
경비: 서명좀 해주시죠?
도아: 무슨 서명인데요?경비: 놀이터를 반으로 줄이고 주차장을 늘리는 서명입니다.
도아: 가뜩이나 아이들 놀리터더 부족한데 놀이터를 줄이자고요? 놀이터를 줄인다고 주차난이 해소되나요?경비: 그러시면 반대하셔도 됩니다.
생각보다 넓은 놀이터
지어진지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이 아파트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파트 규모를 생각하면 꽤 넓은 놀이터였다.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수직으로 갈른 절반 정도가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또 땅을 돋았기 때문에 주차장에 한밤에 얌체처럼 놀이터에 주차할 수도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놀이 기구는 많지 않지만 차 걱정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이 놀이터였다.
놀이터를 반으로 줄인다고 해서 그 공간에 주차할 수 있는 차는 많아야 20여대 정도다. 20여대 정도가 더 주차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누구의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고작 10여대를 더 주차하기 위해 놀이터를 반으로 줄인다'고 하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경비: 아. 1015호이시죠?
도아: 예.
경비: 이미 서명하셨네요!
나는 서명을 한적이 없기 때문에 우엉맘이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보나마나 무슨 서명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찬성에 서명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아주머니들 중에는 읽지 않고 서명하는 사람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일단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올라왔다.
도아: 오늘 서명했어?
우엉맘: 응.도아: 무슨 서명이야?
우엉맘: 몰라.도아: 어디다 서명했어?
우엉맘: 아저씨가 하라는데에.
결과는 뻔했다. 주민 70%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놀이터를 줄이고 주차장 공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난 것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반응이다. 대부분의 아주머니들이 왜 아이들 놀이터를 줄이고 주차장을 만들었지 못마땅해 한다는 것이다. 아마 우엉맘처럼 경비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서명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서명이 민의? 아니 조작!
흔히들 서명을 민의의 발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명의 목적과 그 절차가 정당하다면 사실이다. 민주주의란 소수 보다는 다수의 의견이 반영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서명은 서명을 발의한 사람의 주관대로 만들기 상당히 쉽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무슨 서명인지 모르고 서명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또 서명하러 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서명을 하지 않고 나올 사람도 많지 않다.
살면서 정말 많은 서명을 했다. 지금은 자신의 생각이나 억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서명이 아니면 청원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한 서명중 내용을 모르고한 서명은 없다.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있으면 일단 전단지를 달라고 한다. 그 전단지를 읽어 보고 전단지 내용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맞고 서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서명을 한다. 그런데 의외로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서명의 제목만 보고 서명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또 비슷한 예가 있다. 올초의 일이다. 강원도 오죽헌을 들렸을 때이다. 주차장 근처 가게에 담배를 사러 갔다. 담배를 사고 거스름 돈을 받으려고 하는데 거스름 돈을 주지 않으면서 웬 서명지를 내놓으며 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원래 내용을 모르면 서명을 하지 않는 타입이라 "미안합니다. 저는 내용을 모르면 서명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 했다.
주인: 그 사람 참 유별나네. 하라면 할것이지. 뭘몰라?
도아: 내용을 모르고 어떻게 서명을 합니까?
주인: 그러니 뭘 모르냐고? 여기 나와있잖아.
서명지에는 강원도 복선 철도 개설을 위한 청원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명의 제목만 보고 무슨 서명인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도아: 아니. 철도를 놓는다고 하면 역학조사 자료같은 것도 있고 당위성을 설명한 자료라도 있을 것 아닙니까?
주인: 여기가 점집인 줄알아. 잘났네. 역학? 점집이나 가봐.
조금 어이 없지만 역학조사라고 하니까 역학을 점술로 이해한 듯했다. 아무튼 가야하는데 서명을 하라며 거스름 돈을 돌려 주지 않았다. 결국
도아: 저는 이런 서명은 못하니까 거스름 돈이나 주시죠.
주인: 줘. 줘. 누가 안준데.
거스름 돈을 받아 나오는 내 뒤통수를 보며 주인은 계속 외첬다.
주인: 저런 놈덜이 철도 놓으면 가장 먼저 온다니까
정말 어이가 없었다. 서명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사명감만 가지고 관광객에에 서명을 강요하고 있었다. 강원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선철도를 만드는 것이 숙원일지 모른다. 그러나 외지 사람들에게는 지방 소사에 불과하다. 그런 외지 사람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서명을 강요하고 서명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서명이 과연 민의의 발현일지는 두고 두고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민주주주의 장점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에 있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 단점은 또한 그 다수(중우)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