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의 "설"은 낯설다의 설이에서 나왔고..."레임"은 일어나서 형상을 이룬다라는 뜻의 의태어다...즉 설레인다는 말은... "낯선 것을 접하고 가슴에서 무언가가 확 일어나는 현상"이다...
설레임은 마음의 영역인 것 같지만 설레임의 순간에는 몸에도 변화가 온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심할 때는 소변이 마렵기도 한다..."경우에 따라 몸에 낯선 것이 마음으로 반응하기도 하고...마음에 낯선 것이 몸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설레임은 몸과 마음에 두루 걸쳐있는 매혹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설레는 일이 점점 없어진다...나이가 들면서 설레임이 없어지는 이유는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낯선 것들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낯선 것이 설레이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어떻게 미래가 변할지 모르기에... 때로는 두렵기도 또 때로는 기대로 부풀기도 하는 것인데...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인생 별것 없다는 그들의 진리를 이미 알고 있다...
일상에서 더 이상 낯선 것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낯선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변태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_-;;
설레임을 간직한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착한사람 컴플렉스에 걸린 사람... 착한 설레임.. 동심의 설레임만 고집하며 자기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난 사람..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보면 속된 말로 "아~ 재수 없다.."
그리고.. 자기 한계에 갇혀 설레임을 고집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보통 폭력적이다... 나는 이런 유형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나는 그들의 설레임을 설레임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착함을 착함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세상을 오래 살았는데도 진짜 설레임을 곱게 간직한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마법같은 사람들이며.. 참~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설레임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안다...부끄러움은 자기 스스로의 약함과 악함을 세상에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겸손한 마음을 가진다... 겸손한 마음을 가졌기에... 모든 순간이 새로운 순간이며... 모든 것들이 가르침이다..."
같은 해를 보아도..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르다.. 같은 꽃을 보아도.. 여기에 핀 꽃과 저기에 핀 꽃이 다르다... 그들에게는 살아숨쉬는 모든 것이 스승이며.. 걸어가는 모든 길이 새로운 길이다...
50억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는 해도... 저녁마다 아쉬움에 그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다...
그 남자작곡 그 여자작사의 오에스티 거즘 마지막 부분에 휴그렌트가 피아노 치면서 부르는 곡인데..듣기가 참 편한곡이다..첫 장면에 미수다의 "따루"가 나와 깜짝 놀랬는데 ... 따루는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