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을 상당히 좋아한다. 한번에 마시는 양도 많지만 마시는 횟수도 만만치 않다. 술은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맥주, 소주, 양주, 고량주 등. 이렇다 보니 술에 얽힌 사연도 많고 은연 중 주당이라는 것을 티내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만든 것이 미투데이 주당이다.

음주클럽이 있지만 클럽이라는 말과 음주라는 말이 주당 보다는 조금 더 부정적인 어감이 많은 것 같아 주당이라고 했지만 의외로 주당은 음주클럽과는 다른 힘을 느껴서인지 참석자는 많지 않았다(적당했다). 장소는 이전 공지에서 설명한 것처럼 홍초불닭에서 1차를 하기로 했다. [신용문객잔으로 하려고 했지만 '야후 거기' 평이 좋지 않아 바꿨다].

6월 2일 오전에는 구글 코리아를 방문해서 잠깐 미팅을 하고 점심때는 현대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그리고 오후에 처제와 처제의 남자 친구가 왔지만 주당 모임을 위해 5시 20분 경에 처가집을 나섰다. 시간상 이른 시간이지만 만나기로 한 곳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미리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걸어서 선능역에 왔을 때 우엉맘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우엉맘: 오빠. 어디야?
도아: 선능역.
우엉맘: 강남까지 태워다 줄께 6번 출구로 나와.

사정을 알고 보니 처제가 레드망고에서 아이스 크림을 먹고 싶어했는데 선능역 레드망고가 사라져서 강남역 레드망고로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선능역에서 처제 친구의 차를 타고 강남역에서 내렸다. 처음 지도에는 씨티극장 뒷편에 있다고 해서 씨티극장 뒤로 가려고 했지만 처제가 던진 한마디.

처제: 홍초불닭이 왜 씨티극장 뒷편에 있어요. 지오다노 뒷편에 있지.

그렇지만 이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일단 씨티극장 뒤편으로 향했다. 그런데 씨티극장 뒷 편에는 홍초불닭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우엉맘: 오빠. 찻길 왜 건넜어?
도아: 홍초불닭이 씨티극장 뒷편에 있다고 해서.
우엉맘: 아까 오빠가 길건넌 곳에 지오나노가 있는데 지오다노 뒷편에 있데.
우엉맘: 맨날 여기서 노는 애들이 잘알지 오빠가 어떻게 알어?

사실 씨티극장 뒷편에서 홍초불닭을 찾지 못하자 아차 하는 심정이었다. 첫 모임이 장소 때문에 어긋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잽싸게 다시 길을 걸너 지오다노 뒷편으로 향했다. 그리고 보이는 홍초불닭의 간판. 그러나 막상 간판 밑으로 와도 홍초불닭은 보이지 않았다.

2층을 보니 홍초불닭 대신에 홍초 Red Station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올라와 보니 홍초불닭의 글로벌화를 위해 홍초불닭에서 홍초 Red Station으로 바꾼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일단 오시기로 한 분들께 '홍초불닭이 지오다노 뒷편에 있다'는 것과 '홍초불닭의 이름이 Red Staion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문자로 알려 드렸다.

그리고 잠시 뒤 가장 먼저 오신 분은 의외로 몽거님이셨다. 참석 여부가 불투명 했었는데 오시기는 가장 먼저 오셨고 '데이트 중에 주당 모임을 위해 오셨다'고 하신다. 예전에 블로그 방명록에 QAOS.com에 관한 글을 남기신 적이 있기 때문에 미투 인연이라고 보다는 'QAOS.com 인연'인 것 같았다.

두번째 오신 분은 래퍼백곰님. 일단 인상은 백곰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래퍼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말도 많으셨다. 물론 몽거님과 나 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세번째로 오신 분은 정호씨. 코엑스 도서전시회에 들렸다가 오신다고 했는데 깔끔한 클로스백을 옆에 끼고 오셨다. 가방을 자세히 보니 예전에 질렀다는 그 가방같았다. 블로거분들이라 말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정호씨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몽거님, 정호씨, 래퍼백곰님, 나 이렇게 네 사람 중 무려 세 사람이 병특이었다.

네번째로 오신분은 qbio님. 평상시에 큐비오로 읽는데 직접 소개하실 때는 '큐바이오'라고 소개하셨다. 내용을 들어 보니 큐바이오가 맞았다. 황론곡필을 쓰신 것을 보면 상당한 말솜씨를 가지셨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큐바이오님도 말씀은 많지않으셨다.

다섯번째로 오신분은 순디자인님. 블로그에 이미 사진이 있기 때문에 그리 낮설지 않은 외모였지만 블로그의 모습보다 훨씬 더 마르신 것같았다. gray님은 2차 쯤 참석하실 수 있으실 것 같다고 하셔서 일단 모인김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사실 나도 술마시는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를 듣는데 다른 분들도 비슷했다. 특히 술을 못마신다고 하시던 몽거님 까지 역시 주당이라는 이름답게 아주 빠르게 마셨다. 그덕에 '소주 한병은 시키자 마자 바로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한병씩 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두병씩 시켰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오자 마자 술병은 바닥이 났고 병은 기하 급수적으로 쌓여갔다.

래퍼백곰: 지난번 음주클럽은 상당히 많이 나왔었는데요. 여자분들도 많고.
도아: 그래요? 몇분이나 나오셨죠?

래퍼백곰: 한 20분 정도 되요.
도아: 많네요.

래퍼백곰: 아마 주당이라고 하니까 나오고 싶으신 분들도 못나오신 것 같아요.
몽거: 그래서 저도 술을 못하는데 나가도 되냐고 댓글을 단건데요.

그제서야 술을 못하신다는 몽거님 글이 다른 사람을 유도하기 위한 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주당 전당 대회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몽거님이 몽거님 댁에서 하셔도 된다는 얘기를 하셨다. 나도 도시라는 꽉 막힌 공간에서 하는 것 보다는 송계계곡처럼 자연을 벗할 수 있는 곳에서 전당 대회를 하기 원했기 때문에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술을 마시다 보니 한번에 두병씩 시키는 것도 부족했다. 결국 한번에 세병씩 시키자고 하던 중 몽거님이 이틀 연속 외박을 할 수 없고 차시간 때문에 가보셔야 한다면서 먼저 자리에서 일어 나셨다. 몽거님께서 1차를 계산하시겠다고 하셨지만 관례대로 1차는 내가 계산했다.

이차를 위해 불닭집에서 나와 호프 브로이로 이동했다. 이때 도착하신 분이 gray님이신 것 같다. 나는 술을 섞어 마시는 버릇 때문에 소주를 마시면 꼭 맥주로 입가심하곤 한다. 문제는 젊었을 때는 이렇게 섞어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삼십대 후반 들어서는 이렇게 맥주를 섞어 마시면 바로 맛이 간다는 점. 따라서 맥주를 마시기 전에 오셨으면 언제 오셨는지를 정확히 그렇지 못한 것을 보면 맥주를 마시는 중에 오신 것 같다.

아무튼 처음본 'gray님은 옷 차림새나 스타일이 좋아하는 액션 배우인 이소룡과 상당히 닮았다'. 호프 브로이는 '큐바이오님 소개'로 알게된 집으로 소형 양조장이 있다고 해서 선택한 집이다. 역시 아주 다양한 맥주가 제공되고 있었고 맥주 맛과 안주도 맛있었다. 주당 공식 차수가 3차이므로 3차까지 참여해야 하지만 맥주로 이미 맛이 완전히 간 상태라 나는 2차를 끝으로 처가집으로 복귀했다.

조금 바쁜 하루였지만 술을 좋아하는 분들과 나눈 뜻깊고 즐거운 하루였다. 물론 술은 다음 날에도 계속 마셨지만...

주당에 대한 오해

주당이라고 하면 모두 술을 다 잘마셔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니다. 주당도 효과적으로 투쟁하기 위해 로마의 군사 체제를 그대로 빌려 사용하고 있다. 경무장 보병, 중무장 보병, 기마병. 따라서 경무장 보병처럼 맛보기 술만 드시는 분들도 있고 주당의 주력 부대인 중무장 보병처럼 술로 승부하는 분, 기마병처럼 기동력으로 승부하는 분들도 있다. 참고로 다음은 주당 수칙이다.

  1. 술은 권하지 않는다.
    예전의 음주 문화를 보면 꼭 술을 못마신다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다. 주당은 이런 음주 문화의 악습을 폐지하기 위해 술을 권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심은 아까운 술을 왜 권할까?
  2.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역시 예전의 음주 문화를 보면 꼭 자신이 마시던 술잔을 돌림으로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주당은 절대 술잔을 돌리지 않는다. 꼭 돌리고 싶다면 술잔을 맞교환한 뒤 돌리면 된다.
  3. 공식 차수는 3차이다.
    공지에서 설명한 것처럼 공식 차수는 3차이며, 장소 역시 미리 잡아둔다. 그 이유는 주당 역시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에 다음 날 무리가 갈 정도의 차수는 지양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식 차수를 다 채우지 못해도 상관없다. 집에 가서라도 채우면 된다.
  4. 주당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주당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주당이 마시는 것은 술잔 속에 녹아 있는 분위기일뿐 알콜이 아니다. 따라서 분위기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당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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