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미투를 하기 전보다는 미투를 한 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양이 훨씬 많아졌다. 블로그에 글을 올린 양을 보면 2006년 6월에 8개, 11월에 12개로 한달 평균 10개 정도를 올렸다. 그러나 미투에 가입한 2007년 3월에는 67개, 4월에는 57개, 5월에는 벌써 72개의 글을 올렸다. 주말에는 글을 못 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말까지 고려하면 하루 평균 서너개의 글을 올린 셈이다.

미투를 하면서 글을 올리는 양이 오히려 는 것은 미투를 돌아다니다 글 소재를 자주 발견하기 때문이다. 오늘 미투에서 발견한 글이 자필싸인님이 올린 여러분이 그 훈련병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라는 글이다. 자세한 내용은 '자필싸인'님의 글을 읽어 보도록 하고, 나는 정말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1]의 얘기를 할까한다.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중랑 초등학교[2]에 다녔었는데 녀석은 시골에서 막 전학을 왔었다. 당연히 숫기가 없었고 상경한지 얼마되지 않은 집들이 그렇듯 반지하 셋집에 살고 있었다. 요즘은 전학 온 학생이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왕따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산 덕분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이 녀석과 함께 돌아 다녔다. 시골에서 상경했기 때문에 개구리, 참새와 같은 것들을 잡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요즘 중랑천변은 자전거 도로가 있고 군데 군데 운동할 수 있는 운동장이 있지만 예전에는 완전히 풀밭이었다. 여기를 돌아 다니다 보면 개구리와 같은 것들을 자주 보게된다. 개구리를 보면 이 녀석은 한 1M 정도에서 뜀을 뛸 준비를 한 뒤 개구리가 있는 곳까지 단번에 뛰어 정확히 손으로 개구리를 낚아챘다.

참새를 잡는 것도 이 녀석에게 배웠는데 참새는 비오는 날 우산만 있으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잡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우산을 활짝 편 뒤 천천히 풀밭으로 접근하다가 갑자기 풀밭을 들이친다. 그러고는 우산을 풀밭위로 살짝 던지면 비를 피해 풀밭에 숨어있던 참새가 위로 날아 오르다 우산에 걸리며 계속 파닥댄다. 이때 손으로 잡으면 바로 잡힌다.

초등학교 시절 상당히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지만 내가 6학년 2학기 때 배봉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덕에 더 이상 이 녀석을 만나지 못했다. 다시 이녀석을 만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 영어는 우열반을 편성해서 수업을 했었다. 수학은 잘하지만 영어는 워낙 못했기 때문에 열반으로 갔는데 여기서 녀석을 만났다.

도아: 야. 너 나 모르겠어?
도아: 너 대복이 맞지?
녀석: 응.

도아: 그런데 왜 아는체 안했어?
녀석: 그냥.

나이를 먹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숫기가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해서 녀석과는 다시 친해졌다. 나는 대학교에 진학을 했고 녀석은 고등 학교만 나온 뒤 청계천 피복집에서 일을 하다가 군대에 갔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가끔 보곤했는데 휴가때 이 녀석에게 정말 엄청난 얘기를 들었다.

도아: 무슨 일인데...
녀석: 휴. 한 숨밖에 안난다.
도아: 왜?

녀석이 직접 얘기 하지 못하고 녀석의 사정을 아는 다른 친구(충국이)가 대신해서 얘기를 해 주었다. 녀석이 군대 가기전 청계천 상가의 피복집에서 일을 할 때였다고 한다. 다른 친구와 호프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 자리의 아가씨 둘이 합석을 제의했다고 한다. 녀석은 태어나서 한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어서 머뭇 거렸지만 그 아가씨들이 소주잔을 가지고 합석을 한 덕에 그 아가씨와 만나게 됐다고 한다.

지금이야 남자에게 합석을 청하는 여자들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남자에게 합석을 청하는 여자는 소위 말하는 날나리 밖에 없을 때였다. 따라서 여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처음 접하는 이성이라 끌리는 것에 어쩌지 못하고 이 아가씨를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의 성풍속이나 녀서의 고지식함을 생각하면 의외이지만 이 아가씨와 잠자리도 같이 한 모양이었다. 애인이 군대에 가면 기다려주는 것이 당시의 한 풍속이었지만 어차피 남자 경험이 많은 여자라 군대만 가면 자연스레 헤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뒤 첫 정식 휴가를 받아 집으로 와보니 '이 아가씨가 녀석의 집에 와서 녀석의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군대를 간 뒤 6개월 정도 지난 뒤 이 아가씨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찾아왔고 이미 아이까지 있는 아가씨를 내칠 수 없어서 녀석의 어머님이 집에서 살림을 가르치며 녀석이 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한다.

좋아하지도 않은 아가씨가 아이까지 나서 집에 있는 것을 봤을 때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은 가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요', '쏘아 버린 화살이라' 돌이킬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아울러 당시에는 나도 20대 초반이라 이런 상황에서 딱히 해줄말이 없었다.

그 뒤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녀석과의 소식은 한동안 끊겼다. 그러다가 우연히 충국이를 만났다.

도아: 어. 잘 지내니?
충국: 응.

도아: 너도 제대했지?
충국: 그럼. 야. 제대한지가 언제인데.

도아: 대복이 소식은 아니?
충국: 알지. 그 자식 철인이야.

도아: 왜?
충국: 1년에 하루쉬어.

도아: 무슨 얘기야?
충국: 우유 배달을 하는데 일년에 딱 하루 쉰다고. 설날.
도아: 그래. 그 녀석 불러서 술이나 한잔하자.

그리고 녀석이 왔다. 1차는 내가 내고, 2차는 충국이가 냈다. 그리고 3차를 녀석보고 내라고 했다.

충국: 저 자식 구두쇠라서 아마 안낼껄.
도아: 야. 그래도 1, 2차나 얻어 마시고 소주 한잔 안살까.

그런데 정말 소주 한 잔 사지 않았다. 그러고는 녀석의 오토바이에 나와 충국이를 태우고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슈퍼에 들려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마리를 사서 녀석의 단칸방 전세로 들어 갔다.

충주에는 요즘도 이런 집이 있지만 당시에는 꽤 흔한 형태였는데 길 옆에 반길 높이의 작은 계단이 있고 이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부엌으로 연결되는 그런 단칸방이었다[3]. 소주를 한병 마시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 봤다.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에는 무척 답답했다고 한다. 뜬금없이 부양 가족이 생겼으니 집에서 놀고 먹을 수도 없고.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 아이마법이 통했다. 별 생각없이 본 자식이 한없이 귀여웠고 처는 싫지만 '아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들어보면 정말 열심히 산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유 배달을 하면서 총무(우유 배달집에서 우유를 받는 사람)을 하면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총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유는 새벽 세시에 차가 들어 오기 때문에 새벽 세시에 우유 배달을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밤 10까지 일하고 집에와서 씻지도 못하고 밥먹고 잠이들고 또 새벽 세시에 나가는 일을 1년 중 설날 하루만 빼고 하고 있다"고 한다.

셋집이라 집도 사고 나중에 가게도 내야되기 때문에 '정말 구두쇠처럼 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녀석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동안 모든 돈으로 다른 사람들과 가게를 냈다고 한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지만 자식을 위해 5~6년을 고생한 결과였다.

요즘도 연락이 되면 한번 보고 싶은 녀석이지만 장안동에서 목동으로 목동에서 인천 삼산동으로 삼산동에서 다시 충주 연수동으로 이사를 다니다 보니 녀석과의 연락도 이제는 끊어졌다. 그러나 아마 예전처럼 열심히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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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로 글 속 친구는 공부도 잘 못했다. 아울러 노력도 안하는 편이었다. 숫기도 없고 말도 없고 체력도 약하고. 그래서 여자가 밀어도 휙 밀려 넘어지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아이 하나 때문에 누구 보다 열심히 사는 모범적인 가장으로 바뀌었다. 이 것이 아이가 만든 마법이 아닐까? 
  2.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중랑 국민학교가 된다. 
  3. 나도 이런 단칸방에 산적이 있다. 초등학교 1~4학년 때까지 산 전세가 이런 형태였다. 따라서 서울에서는 1970~80년대 까지 남아 있던 단칸방 전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