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법에 대해 바라보는 인식은 하나다. 바로 법은 상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법이 상식이어야 하는 이유 역시 간단하다. 법은 도덕의 연장이며, 실제 생활과 어울리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지킬 수도 없고 또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이러한 상식 수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법이 상식의 범주를 넘게 되면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법은 이미 알고 있듯이 성문법이다. 그러나 그 법체제는 우리 실정에 전혀 맞지 않는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과거가 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우리 법의 모태는 일본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성문법이라고 하지만 법리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아울러 사용되는 법률 용어 역시 우리가 알고 사용하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우리 법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않다. 일반은 읽어도 모른다. 설사 안다고 해도 법리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이정도 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법무사를 통할 수 밖에 없다. 변호사를 동원해야 하는 형사 사건의 경우 변호사 비용때문에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민중이 의식화되면 첫번째로 요구하는 것이 성문화이다. 그 이유는 불문법 체제에서는 법을 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법은 성문법이다. 그러나 사실 불문법과 다름이 없다. 상식과 완전히 벗어난 우리 법은 불문법과 마찬가지이다.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법을 아는 사람에게 큰 권력을 준다는 점에서 보면 정말 그렇다.

우리 나라에서 아울러 법을 지키는 사람은 바보이다. 그 이유 또한 간단하다. 법의 집행이 항상 작의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법의 민족인 로마인은 엄정한 법의 집행은 오히려 법의 정신을 해친다'고 했다. 그러나 엄정한 법의 집행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권력을 가진자, 법을 아는 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작의적인 법의 집행이다.

또 법의 이런 작의성은 항상 권력을 가진지의 편이기 때문에 유전무죄 무전유죄인질범 지강헌이 본 그릇된 인식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코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읽은 미국은 가짜다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은 법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었다.

법대로 살 수 있죠?

배고픈 사람에게 예절을 가르친다?
동양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 사회는 인간을 바라보는 눈이 서양 문화권과 다르다. 특히 우리는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다루어야 바람직한지에 대해 유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인간은 동물 같은 욕망이 있지만 이것을 억누르고 다스릴 수 있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본능과 욕구를 얼마나 잘 억누르냐를 기준으로 군자로서 효자로서 또는 열녀로서의 품격이 저울질된다. 그래서 극기가 으뜸되는 덕목이다." 우리 나라 고전을 통하여 배우는 조상의 마음가짐이다.

한 마디로 우리 마음 중에 동물적인 욕망은 악한 것이고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이 악성을 제거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닦고 수양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욕망을 잘 다스려 파도타기와 같은 생활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킨다기보다는 무조건 억누르고 보자는 생각이 짙다. 인간의 악성을 자연현상으로 인정하고 인간 속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보다 뿌리째 제거하려 한다.

이것이 아직도 우리의 생각 중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여 서구의 물질문화와 갈등을 겪고 있다. '資(물질)'가 '本'인 자본주의에 살면서 물질을 추구하는 욕망을 억눌러야 하는 딜레마이다. 그래서인지 욕구를 '억누르는 마음가짐'이 자본주의를 '소화'하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미국의 제도나 법률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중에 하나가 인간성과의 조화이다. 인간성을 '있는 그대로(如來)' 인정하고 각 개인의 인간성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도록 제도와 법률이 꾸며져 있다. 각 개성은 그 자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배어있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 technology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있는 그대로 자연현상의 일부로 이해하고 양면의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인간의 악성을 한탄하고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이 '악한 마음' 위에서 균형을 이루도록 사회 체제 system를 정교화시키려 노력한다. 인간의 본성 내지 본능을 제거하거나 가공하려고 하기보다 그것 자체의 자연스러움과 역동성을 이해하고 '자연'과 자연의 일부인 '인간집단 사회'가 조화되어 평온함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system 전체에서 작은 기계 부속품처럼 다뤄지는 각 개인의 인간성 상실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가 거대 자본주의화 - 대량생산 대량소비화 - 됨에 따라 개인 혼자서는 그 무엇도 창조할 수 없고 조직 systema만이 창조와 생산의 근원이 되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그래서 인간이 조직의 작은 기계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체념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인격과 노동력이 부당하게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완적 처방이 갖춰져 있다. 즉 개인의 Privacy를 철저하게 보장한다.

동시에 누구나 공익과 관련되는 돈의 흐름을 볼 수 있도록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뚫고 들어가는 정교한 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이밖에 빈익빈, 부익부, 개인의 자유마저도 정부가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피동성, 도피적안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 거대 집단의 횡포, 상업적 매스미디어의 마취적 기능 등등... 난제들이 쌓여 있지만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발전된 모습이 부럽다. 아무튼 인간성을 살아 있는 역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생활하다 돌아와 보니 상대적으로 우리 나라 사회의 부자연스런 면이 많이 느껴진다.

미국에 있을 당시 나는 공무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공무원 보수 문제를 예로 들어 보겠다.

공무원 보수가 적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적정 수준으로 쉽게 갈 수 없는가. 물론 각 나라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무원 보수가 민간 기업보다는 적은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부패의 제도화라는 악성 고리를 단절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심하다. 상식이하다. "배고픈 자에게 예절을 가르칠 수 없다." 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국민 상식이다. 배고픈 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예절은 인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무리 없이 물 흐르듯 굴러가려면 인간의 자연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제도라는 인간의 법칙을 자연의 법칙에 일치시키려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석구석에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반타성 반체념으로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감지하더라도 당장 고쳐져야 한다는 열정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푸념 내지 체념으로 허공에서 떠돌다 증발하고 만다. 어린이의 눈에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어른들 세계에서 통하지 않으니 어른이 참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이고 그렇게 하라고 집에서 배우고 책에 써 있는데 어른들은 반대로 하니까 정말 혼란스럽다. 또 다른 기준을 배워야 한다.

미국이 왜 선진국이냐 한 마디로 제도라는 '인간이 만드는 법칙'이 이를 운용하고 지키는 '인간의 자연 속성'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마음이 꼬이 일 없고 속이 멍들 일 없다.

몸에 잘 맞는 편안한 옷을 입은 격이다. 법과 제도가 상식과 일치되어 있고 상식은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법대로 사는 사람 데려와 봐라!
뉴욕시의 건축관련법은 무척이나 복잡하다. 건설 연대에 따라 적용되는 법규가 다르고 상세한 규제가 열거되어 있어 일반인으로서는 따라 가기가 힘들다. 우리의 건축법규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자세히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하고 자세한 법규에 사회적인 비판의 소리는 거의 없다.

법규의 취지에 관련된 요구 서류가 중복되지 않고 논리적으로 배열되어 있어 민원의 소지가 없는 것도 그 이유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법의 규정이 너무나 상식과 일치하고 조화를 이루어 굳이 법규의 내용을 확인하고 완전히 이해할 필요 없이 자신의 상식을 따르면 별 위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집을 짓는데 이렇게 하면 이웃이나 길가는 행인에게 피해가 갈 듯하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면서 추진했다고 치자. 나중에 보니 법에 위반된 결과가 되었다. 어쩌나. 사정없다. 한마디로 완전히 부순다. 이미 얼마를 투자했건, 누구의 집이었건 봐 주는 일이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말짱 도루묵이다. 따라서 이런 모험을 감행할 어리석은 시민은 별로 없다. 법의 규정이 소위 재량 내지 공백규정이라도 그 빈 곳은 상식으로 자연히메꿔진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법규정이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법을 이해하기가 어렵고 지키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교통관련법규이다. 너무나 상식과 현실이 맞질 않아 법을 지키는 시민이나 법을 집행하는 경관이나 모두 이중 기준을 써야 한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교통단속한다 하면 이 기간 동안 시민은 더욱 조심한다. 따라서 평상시와 동일한 기준으로 법을 집행한다면 위반 건수는 평상시보다 적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언제나 발표 건수는 평시보다 많다. 이것은 평시에는 현실적인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단속기간에는 엄격한 비현실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는 이중성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단속기간중 위반 건수가 증가한다는 것이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저 단속 강도의 지표 내지 당국의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는 지표로만 해석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 그 이중성에 대하여는 놀라와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정말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의 일례이지만 주위 구석구석이 이러한 이중구조로 뒤덮여 있고, 우리의 사고도 이중성으로 가득 차 있음을 직시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법규정이 상식과 일치하지 않아 비현실적이다 보니 재량권이란 사정을 봐 주느냐 마느냐 하는 집행자의 권세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재량권을 당연히 자신의 고유한 권력으로 인식하는 집행자가 실제 의외로 많다는 사실은 사회적 경종을 요한다. 이러한 문제는 교통 관련법뿐만 아니라 비현실적인 조항을 담은 여러 규제 행정분야 전반에 만연되어 있어서 준법정신을 퇴색시키고 불신과 부패를 조장시키는 제 1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하고 싶다.

"법을 지키면 바보가 되고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 성공한 자 중에 법대로 사는 사람 있으면 데려와 보라.' 요즘 시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준법이 자신에게 이익은커녕 불이익과 불명예를 가져온다. 들키지 않은 위법이 생활의 지혜다.' 라는 얘기다. 걱정되는 지경이다.

따라서 '상식과 인간의 본성에 입각한 법규와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하루빨리 '법을 상식에 일치시키는 작업'을 국정의 제 1과제로 삼는 것이 시급하다고 여겨진다..

법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고도 이중성에 젖어 있는 듯 싶다. 한마디로 매 생각마다 이중 기준을 쓰고 있고. '진짜 이유'보다 '그럴듯한 이유' 내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말하고 있다. 완전 거짓말도 아니고 선의의 거짓말white lie도 아닌, 남을 속이는 거짓인데 선의인지 악의인지 불분명한 회색지대의 거지말 gray lie이 너무나 많아 '정직성이 무너지고 있지 않나' 걱정이 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것이 타성에 젖어 스스로 모르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의 전반적인 계층에 만연되어 있으면서도 사회적 경종을 울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은 이야기

법을 지키며 사는 사회가 선진 사회이다. 우리는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다. 우리 법을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법을 지키면 바보가 된다. 한 예로 운전을 보자. 파란 신호가 들어오지 않아 파란 신호등이 켜질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자. 어떤 일이 발생할까?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 지나가면서 손각락질 하는 운전자들. 속된 말로 병신된다. 법을 지킬 수도 없지만 법을 지켜도 바보가 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그래서 더욱 더 법은 상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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