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가짜다 2 - 경찰은 누구의 편? by 도아
냄비 근성
힘있는자, 권력을 가진자에 대한 경찰의 숭배는 종교에 가깝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주변에 판, 검사나 높은 사람을 찾게되는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보곤 한다. 경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사람, 집기를 부시는 사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밉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 경찰의 이런 모습들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경찰이 이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박봉인지는 모르겠지만 박봉에 어려은 대민업무를 싫다고 하지 않고 하는 그런 경찰도 있다. 그러나 경찰이 욕을 먹는 것은 언제나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경찰의 냄비 근성 때문이다.
냄비 근성
한화 짐승연 회장의 마피아식 피의 복수는 아버지의 입장으로서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 자식이 밖에서 조폭에게 맞고 들어왔다고 치자. 가장 먼저하는 일은 경찰에 신고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힘없고 백없는 사람이라면 우리 나라 경찰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수사를 해줄까?
이러 저러한 일들로 경찰에 신고해본 적이 꽤 있지만 경찰에서 해결해 준일은 별로 없다. 따라서 이런 일을 경험한 아버지라면 한화 짐승연 회장의 마피아식 보복에 오히려 대리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짐승연 회장이 마피아식 피의 보복을 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해도 북창동을 기반으로 하는 조폭 조직이 있다면 그날로 해산됐을 것이다.
힘있는자, 권력을 가진자에 대한 경찰의 숭배는 종교에 가깝다. 그래서 사건이 터지면 주변에 판, 검사나 높은 사람을 찾게되는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 경찰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보곤 한다. 경찰에게 주먹질을 하는 사람, 집기를 부시는 사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밉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 경찰의 이런 모습들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경찰이 이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박봉인지는 모르겠지만 박봉에 어려은 대민업무를 싫다고 하지 않고 하는 그런 경찰도 있다. 그러나 경찰이 욕을 먹는 것은 언제나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경찰의 냄비 근성 때문이다[1].
예전에 같이 일하던 후배가 말레시아로 갔다. 완전한 이민은 아니지만 국내의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갔기 때문에 이민에 가깝다. 말레시아로 간 후배의 말에 따르면 말레시아는 국내보다 치안이 잘되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말레시아 국민은 경찰을 존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경찰을 존경하고 싶다. 남들은 하기 힘든 위험한 일을 한다. 범인을 잡기 위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잠복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울러 대하는 사람이 모두 범죄자인 경우가 많으니 사회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런 경찰을 존경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한화 짐승연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경찰은 언제나 재벌의 개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한화 짐승연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될지는 너무 뻔하다.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보다는 낫다. 압수 수색을 하면서 시간까지 알려 주고 직원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압수 수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어제 소개한 미국은 가짜다라는 책에도 우리 경찰과 미국 경찰을 비교할 수 있는 얘기가 나온다. '말대로 따르지 않아 마약 판매상으로 몰릴 뻔한 경험', '말대로 따른 덕에 바보 취급을 당한 경험'. 똑 같은 기준에 똑 같이 행동을 해도 우리의 경찰과 미국의 경찰의 반응은 달랐다.
담배꽁초와 순경
나쁜 버릇 고쳐야지!
우리 나라에 돌아와 예전처럼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신분증을 찾으니 미국 생활 중 잃어버려 재발급받기 위해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근무시간 중 잠시 시간을 내어 사진을 찍고 급히 사무실로 돌아오는 중 건널목에서 녹색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늘한 겨울 바람에 몇 안되는 사람들만이 어깨를 움츠린 채 한산한 오전의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곳 종합청사 앞의 대기 신호가 긴 것은 예전과 다름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담배를 꺼내 피웠다. 미국생활 중 잠시 끊었던 것이 도착 후 나도 모르게 예전의 담배 중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기 신호가 청색으로 바뀌어 피던 담배를 끄고 보도를 건넜다. 건너는 순간 순경이 뒤쫓아와 담배꽁초를 길가에 버렸으니 딱지를 떼겠다고 한다. 그 순경은 나에게 호통을 치며 "멀쩡한 사람이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나.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이 거리가 청결하지 못하다." 라는 둥 훈계를 했다. 이 순경은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나의 나쁜 버릇을 고치겠다고 대답했다. 빨리 딱지를 뗀 후사무실에 돌아가 하다만 일을 끝내야 하는데 훈계는 계속되고 있었다.
길가에 꽁초를 버리는 나쁜 버릇은 뉴욕에서 생긴 것이다. 그곳에 처음 도착해 길가에서 꽁초를 버릴 쓰레기통을 두리번거리면서 찾았던 기억이 난다. 좀 이상하게 여겼지만 쓰레기통은 어디에도 없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 봉지를 담는 통들이 간혹 길 구석에 있어도 우리처럼 담배꽁초를 버릴 수 있는 쓰레기통은 어디에도 없다.
그 뒤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거리낌없이 보도나 차도에 버리고는 흩날리는 빨간 재가 네온사인 불빛과 어우러져 아름답다고까지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뉴욕에서의 나쁜 버릇으로 여행 중 다른 도시나 시골에서 미국인의 핀잔을 받기도 했다.
뉴욕차 넘버를 보고 다가와 "여기는 뉴욕이 아니니 함부로 버리지 말라." 며 눈살을 찌푸린다. "뉴욕에 사는 사람은 공중도덕이 바닥이고 돈에 걸신이 들린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니 이 마을에서는 조심하라." 는 충고도잊지 않는다.
떠올리던 기억을 멈추고 훈계를 그치지 않는 순경에게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정중히 말하고 빨리 딱지를 끊어달라고 하니 그때서야 볼펜을 꺼내 들고 신분증을 요구한다. 신분증이 없어 대신 비밀취급 인가증을 제시했다.
순경은 인가증의 사진과 나를 몇 번인가 대조하더니 뭔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머뭇거리다 사무실이 어디냐고묻는다. 바로 앞의 종합청사를 가리키며 저기 12층에 사무실이 있다고 대답했다.
순경은 "미처 몰랐다.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 고 머쓱해 한다. "지금 물어 보니 대답하는 것 아니냐 급하니 빨리 처리해 달라." 고 했다. 이번 기회에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하니까 봐 달라고 할 필요도 없다. 그는 갑자기 빨리일 보시라며 경례를 하고는 황급히 뒤돌아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은 담배 버리기 단속날이었다.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몇가지 점을 느낄 것이다. 권위주의 사회의 한 단면이다.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하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위에서 군림하여 착취하려는 아주 나쁜 근성이다. 우리의 권위주의 전통이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이 점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뿌리깊은 농업사회의 전통이 없는 미국은 어떠한가. 거기도 사람이 사는 사회이고 위계질서가 있으니 권위주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권위의 원천이 전문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다르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직급이 요구하는 기술과 경험 등 전문성을 갖추면 상위직을 맡아 그 조직을 이끌고 부하를 통솔한다. 연공서열 의식은 없고 나보다 고도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니 상관에게 복종하고 따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강한 자 앞에서 한없이 비굴하고 약한 자를 밟고 누르려는 행태가 우리처럼 심하지 않다. 철저히 '일중심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풍토에서 나에게 밴 권위주의 행태로 미국 생활에서 고초를 겪었던 경험이 있다.
함흥차사가 준 교훈
미국은 토요일도 휴일이라 보통 금요일의 분위기가 우리 나라의 토요일과 비슷하다. 휴일인 토요일을 앞두고 저녁 늦게 여행을 떠나거나 아니면 시내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새벽 늦게까지 시간을 보낸다. 음식점과 술집은물론 연극 공연이나 영화 상영 등 행사가 있는 장소는 토요일 새벽까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느 금요일 퇴근 후 집에 들러 청바지에 셔츠로 갈아입고 약속 장소로 갔다. 오늘은 맨해튼에서 예술의 거리로 통하는 소호(Soho)에서 식사하고 밤구경을 하기로 했던 터이다. 저녁 식사로 두 시간 여를 보내고 장소를 옮겨 다른 친구와 합류하기로 했다. 합류하기로 한 술집을 찾으러 배회하다 운전하던 친구가 차를 한쪽에 멈추고 장소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고 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오 분 정도 지났는데 함흥차사이다.
시동을 건 채로 갔으니 금방 오겠거니 생각하며 하품을 했다. 창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경관이 차안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뒤로 젖힌 시트를 바로 잡으며 창을 열고 무슨 일이냐 물었다. 경관은 나오라는 손짓으로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서면서 하는 말이 손을 머리에 하고 차에 기대라는 것이다. 시종 내 눈을 열심히 살피고 있었다.
이 경관은 시동이 걸린 차의 조수석에서 시트를 젖히고 자고 있는 나를 보고 마약에 취해 있지 않나 의심을품고 조사하려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이 거리의 벤치에 앉아 있을 때 까만 흑인이 다가와 '원하느냐?'고 물어 와 당황하는 나에게 옆에 있던 친구가 이 근처는 마약 거래가 성행하는 우범지대라고 귀띔해 준 일을 상기했다.
손을 뒤로하고 차에 기댄 내 몸을 더듬는 경관에게 "나는 전화 걸러 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이다. 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다." 급한 마음에 영어가 뒤엉켜 나왔다. 경관은 내 말에 관심이 없다는 듯 흉기가 없음을확인한 후 느긋한 자세로 순찰차의 컴퓨터로 차량번호를 조회했다. 그러고는 "어디에 사느냐. 운전자는 어디에있느냐. 언제부터 여기에 서 있었느냐." 등의 질문을 퍼부었다.
여전히 나를 마약중독자로 취급하는 것에 당황하여 "나는 전화 걸러 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이다. 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다. 나는 Columbia 법대를 다니는 학생이며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순경은 내 말을 들은 채 만 채 내 자세를 해제시켜 주기는커녕 목석처럼 같은 질문만 다시 반복했다. 그리고 더욱 나를 의심하는 눈치다. 쉽게 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어떻게 의심을 푸나 생각만 가득하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편안한 자세로 돌아와 학생증을 제시하고 경관이 요구하는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했는데도 의심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그러던 중 전화 걸러 간 친구가 돌아와 벌어진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경관에 말한다. 그의 첫마디는 "나는 이 차의 운전자이고 이 사람은 내 친구이다." 였다. 그러고는 경관의 질문을 기다렸다. 경관은 "언제 이 장소를 떠났으며 어디 다녀왔나. 그전에는 어디 있었나." 질문을 하고 신분증을 요구했다. 순경의 질문에 꼬박꼬박순서대로 답하고 난 후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우리는 정직한 시민이라고 한다. 그 중에 나는 마약 중독자가 아니다 라는 말은 없었다. 경관은 이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는 의심을 푼 듯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었다.
내가 어떤 점에서 잘못 처세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경관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먼저 나를 변호하기 위해 몇 마디 지껄인 것이 경관의 의심을 산 것이다.
미국에서 경관을 만났을 때 또는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할 때 등 누군가에 의해 심사 당하는 위치에 있을 때 조심할 일이 있다. 상대방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우선 충실히 하고 그 다음 자기 사정을 얘기하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그래야 빨리 끝나고 의심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인과 다른 행태로 비추어져 의심을 살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사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하여 같은 질문만 하루에 수백 건을 하기 때문에 답변의 내용과 억양을 보면 금방 상대를 파악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상인들의 반응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의심이 풀릴 때까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미국에서 정상인의 반응은 상대의 질문에 답하고 나서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관이 과속하는 시장 차를 정차시키고 질문을 던질 때 그 대답을 충실히 한 후 자신이 시장이라는 것을 밝혀야한다. '지금 시속 몇 마일로 달렸느냐?' 라는 경관의 질문에 '나는 시장이다.' 라고 바로 나오면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상대방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양해가 된다. 심지어는 두 사람이 서로 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 시에 출장 오면서 공항의 입국 심사에서 삼십 분을 보낸 기자가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목소리로 "내가 신문기자라 밝히고 신분증을 제시했는데도 어디서 묵느냐고 묻고 호텔 예약을 조회하는 등 까다롭게 굴어 혼이 났다. 미국의 입국 심사가 왜 이리 까다롭냐. 미국에는 이상한 놈들도 많다."고 계속 투덜댔다.
그는 심사원의 질문에 차례로 답하지 않고 "나는 신문기자이다." 라고 묻지 않은 말을 먼저 해서 의심을 샀던것이다. 단지 절차가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일단 의심받았기 때문에 계속 질문이 이어졌고 그래서 삼십 분을 허비한 경우다. 자신이 기자라고 하면 빨리 통과되리라 오산하고 오히려 혹을 붙인 셈이다.
미국식으로 적응했던 나는 청사 앞에서 경관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하고 나서 나중에 신분을 밝혔더니 오히려 의심을 받게 되었다. 의심을 받지 않는 정상인의 반응 순서가 그 나라의 문화 풍토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 권위주의 풍토에서는 자신이 권세나 돈이 있다는 것을 일단 내세워야 대접받고 민주적인 풍토에서는 내세워 봤자 그것 자체로서 큰 득이 없는 것이다.
- 여기서 얘기하는 냄비 근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쉬 끓고 쉬 식는다는 뜻이 아니다. 던킨에 분노한 사람은 모두 냄비에서 설명한 것처럼 없을 때는 요란 떨다가 밟으면 찌글어 지는 냄비 근성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