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추가

오독하셨습니다라는 글이 다시 트랙백으로 걸려 글을 확인해 봤습니다.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정말 오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던킨에 분노한 사람들을 깐 것이 아니라 이슈에 따른 판단없는 행태를 깐 것이라면 저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읽을 때는 냄비에 관한 제 의견만 참조 해주셨으면 합니다. 글을 수정하는 것이 도리에 맞지만 수정하려고 하니 수정할 곳이 너무 많아 제 의견을 글 머리에 추가합니다.

오늘 블로그를 방문하니 정의의 냄비들이 식고 있다는 글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방문해 보면 알 수 있지만 DC User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DC 사용자로서 던킨 도너츠 건이 수면에서 가라 앉은 것을 보고 던킨 도너츠에 분개해 글을 올린 사람들을 냄비에 비유해 쓴 글[1]이었다.

그런데 과연 냄비라는 말, 냄비 근성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고 쓰는 것일까?

냄비는 일반적으로 솥보다 얇고 뚜겅과 손잡이가 있는 요리기구를 말한다. 그런데 이 냄비라는 용어는 조리 기구외에 다른 의미로 쓰인다. 여자를 부르는 속어로도 쓰이며, 냄비 근성처럼 우리 국민성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냄비는 두께가 얇아서 쉬 끓고 쉽게 식는 속성이 있는데 우리 국민이 이슈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 쉽게 잊어 버린다고 일본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쉽게 끓고 쉽게 식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의 국민성은 쉬 끓지도 쉬 식지도 않는다. 한 예를 보자. 일본이 36년간 우리를 강점했을 때는 이 36년간 끊임없이 끓어 넘쳤던 것이 우리의 독립 운동이다. 보통 국화는 국민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의 국화는 무궁화이다. 무궁화를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고 져도 또 피는 무궁화라네라는 구절에 절로 동감할 것이다.

반면에 일본을 보자. 일본의 국화는 벚꽃이다. 벚꽃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갑자기 확 폈다가 갑자기 싹 사라지는 것이 벚꽃이다. 즉, 냄비가 쉬 끓고 쉬 식어서 냄비 근성이라고 한다면 이 냄비 근성은 우리 보다는 일본인에게 더 적당한 표현인 셈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우리 국민을 표현하면서 정의의 냄비들이 식고 있다처럼 다른 사람을 냄비라고 부를까? 간단하다. 아직까지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고, 독립한 뒤 권력의 상층부을 친일파가 잡았고 아직까지 이런 친일파의 후손이 떵떵거리며 살면서 우리 국민을 냄비로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냄비들이 식고 있다라는 글을 쓴 사람은 던킨에 분노해 글을 올린 사람을 냄비에 비유하고 있다. 사건의 정황을 알고 하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현재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일은 특정 사건을 이슈화하는 정도이다. 여기까지가 한계이다. 그리고 이런 이슈를 여론화하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그런데 그 언론이 침묵하고 있다. 왜? 던킨을 비호해서?

던킨은 블로그에서 이슈화 되기 전에 고발자와 던킨이 합의[2]했다. 다만 고발 내용이 너무 심각한 상태라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뜨겁게 달군 주제였다. 그리고 던킨 측이 블로그의 글을 삭제하자 이번에는 던킨과 블로거의 싸움으로 비화됐다.

이 상태에서 던킨 측의 공식 해명에 블로그의 글을 삭제 요청한 부분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또 해명서에는 식약청의 서류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이상황에서 계속 던킨 측의 제조 과정을 문제 삼으며, 끝까지 글을 올려야 하나?

DC 사용자의 몰개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 박지윤 아나운서를 죽인 것도 DC 막장 갤러리가 그 근원이다. 던킨에 분노한 사람이 냄비라면 DC User는 모두 양아치이다. 아닌가?

냄비 근성에 대한 또 다른 생각

쉬 끓고 쉬 식어서 냄비 근성이 아니다. 냄비를 사용해 보면 알겠지만 익힐 음식이 없으면 무척 시끄럽게 끓지만 밟아 버리면 바로 찌그러지는 것도 냄비의 속성이다. 즉,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 우리나 경찰에게 볼수 있는 것도 냄비 근성이다.

관련 글타래


  1. 글 선두에 '글 추가'로 이 점에 대한 내 생각을 밝혔다. 
  2. 던킨의 문제는 공식적인 단체에서 조사, 최종 결과를 보고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