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불허하는 체벌

조금 두려워 진 녀석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윗 창틀을 꼭 잡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걸래 자루를 뽑아와 그 상태에서 녀석의 엉덩이를 매질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기 바란다. 1층도 아니고 3층이다. 맞다가 손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에 걸래 자루로 팔을 완전히 뒤로 젖혀 때린다고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 것은 체벌이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선배들에게 화학 교사였던 진도라는 선생님[1]에 대한 얘기는 얼핏들었다. 전반적인 견해는 가르치는 것은 괜찮지만 인간성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첫 화학 수업 시간이었다. 화학에 대해 짧게 설명한 선생님은 화학에서 주기율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역설했다.

화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로서는 선생님이 아무리 강조한다고 해서 느끼지 못하는 이상 지나가는 얘기일 수 밖에 없다. 교육을 해본 사람은 잘 알고 있겠지만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의 자질 보다는 배우는 사람의 자질에 더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주기율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던 선생님은 다음 시간까지 모두 주기율표를 외어 오도록 시켰다. 지금처럼 교권이 떨어진 상태는 아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주기율표를 외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비슷했다. "안걸리면 되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수업을 들었다.

수업에 들어오자 마자 출석을 부른 뒤 한 녀석을 호출했다. 문제는 이 녀석은 60명 중에 한 55등 정도 하는 녀석이 었는데 재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못 외울 녀석을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재수없게 이 녀석이 걸렸다.

어차피 공부는 신경을 쓰지 않는 녀석이라 당당하게 "못 왜우는데요?"라고 했다.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당시 다니던 학교의 유리창은 통유리였다. 창 위에서 아래까지 가로 막대가 전혀 없다. 따라서 창문을 열고 손을 위로 올려야 간신히 윗쪽 창 틀에 손 닿는 그런 커다란 창문이었다. 또 교실은 3층이었다. 화학 선생님은 차분히 말했다.

창위로 올라가

몇 대 맞고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녀석은 다소 의외였지만 이런 일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므로 아무 생각없이 창문으로 올라갔다. 다시 화학 선생님이 말했다.

떨어질지 모르니 꼭 잡어

조금 두려워 진 녀석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윗 창틀을 꼭 잡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걸래 자루를 뽑아와 그 상태에서 녀석의 엉덩이를 매질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기 바란다. 1층도 아니고 3층이다. 맞다가 손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진다. 여기에 걸래 자루로 팔을 완전히 뒤로 젖혀 때린다고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 것은 체벌이 아니다.

보통은 엄살을 부리느라 한대 맞고 엉덩이를 만지지만 그럴 틈도 없다. 그렇게 10대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수업이 시작됐다. 이 공포 분위기 때문에 교실은 정말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서 화학 선생님이 다시 한마디 했다.

다음 시간까지 모두 외워라. 다음에는 20대다!

반에서 꼴등하던 녀서까지 모두 외웠다. 화학을 공부해본 사람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고등학교 화학은 주기율표만 알고 있으면 거의 공짜로 배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일 때문에 나도 화학에서는 답을 틀려본적이 없다. 대학교때도 고등학교 때 실력만으로 화학 점수를 모두 받았다. 모의고사를 보면 화학 점수만은 우리 학교가 가장 좋았다.

단 한차례 매질의 효과다[2].

그러면 과연 이런 교육이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창 틀에 매달려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면서 매를 맞던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 역시 화학을 잘하게됐다. 그러나 설사 그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이런 교육을 시키고 싶지는 않다.

왜? 사람은 성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니까.
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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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래 이름은 '현도'이지만 다들 진도(개)라고 부른다. 
  2. 손무의 일벌백계(一罰百戒)가 떠오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