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고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 지는 내 지론인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과 술을 적게 마시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역시 전자에 속한다. 소주와 맥주의 최고 기록은 소주는 댓병 반(약 2홉짜리 소주 10병 반 정도)이고 맥주는 2'0000CC였다. <사진: 소주 됫병>

술고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얼마나 술을 좋아하는 지는 내 지론인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1]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과 술을 적게 마시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나는 역시 전자에 속한다. 소주와 맥주의 최고 기록은 소주는 댓병 반(약 2홉짜리 소주 10병 반 정도)이고 맥주는 2'0000CC였다.

소주를 댓병 반을 마시게된 사연은 이렇다. 독산동에 살고 있던 친구 생일이었다. 나는 일이 있어서 원래 약속 시간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한 잔씩 걸치고 섯다[2]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술을 한 잔도 못얻어 먹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행이 나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선반 밑에 있던 과실주를 들고 나왔다.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술이었는데 이걸 과실주로 알고 약수터에 사용되는 바가지로 한 잔씩 떠서 마셨다. 안주는 다행이 닭볶음(닭도리탕)[3]이 남아 있었다.

나만의 권주가

한잔 꺽새 그려
또 한잔 꺽새 그려
꽃나모 가지꺽어
수놓고 꺽새 그려

이렇게 두항아리를 모두 비웠다. 그래도 술이 약간 부족해서 방에서 섯다를 하고 있는 친구를 불렀다.

도아: 야 술더 없니?
친구: 저기 두 항아리나 있잖아.
도아: 다 마셨는데.
친구: 뭐? 소주 댓병 두 병을 다 마셔?

그랬다. 원래 한 항아리는 빈 항아리였고 나머지 한 항아리에 담겨있던 과실주는 지들이 다 먹고 술을 찾을 나를 생각해서 소주 댓병을 두병 사와 두 항아리에 부워 놓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술버릇 두 가지가 있다. 말하기잠자기이다. 따라서 할 말이 없으면 바로 잔다. 워낙 급히 먹은 술, 거기에 대작한 친구의 서너배를 더 마셨기 때문에 자는 중에 취해 버렸다. 섯다해서 돈을 딴 녀석이 한턱 쏜다고 독산동 마부[4]라는 나이트를 가자고 했다. 취중 비몽사몽 가서 잡은 자리가 소리도 빵빵한 JBL 대형 스피커 바로 앞이였다. 과한 술에 니글 거리는 속, 거기에 빵빵 울려대는 음악.

순간 뱃속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화산처럼 마신 술이 역류했다. 혹자는 분수같다고 하고, 또 혹자는 거대한 용이 불을 뿜는 것 같다고도 했다. 상상해 보라. 댓병 반의 술이 화산처럼 분출되고, 이렇게 쏟아진 술이 나이트장 스테이지를 점령하는 웅장한 장면을. 물론 나이트장은 놀라 도망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함께 술을 마신 친구 녀석은 다른 친구 발을 베고 자다 내가 토한 자리에 그대로 머리를 들이 박았다. 다행히 독산동에 사는 친구가 그 동네 유지(동네 깡패 중 꽤 끝발이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라 나이트장 일은 간단히 무마됐다. 결국 나와 함께 술을 마신 친구, 이 친구의 발베게를 해준 친구만 길을 나와 동네 음악 다방을 갔다.

음악 다방

당시 가장 흔한 것이 음악 다방이고 독산동에는 공장에서 일하러 상경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음악 다방 DJ 말도 다소 험했다. 다방에 온 손님(주로 여자 손님)을 불러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DJ가 노래를 부르면 손님이 동물 울음소리를 내는 게임이었다.

DJ: 닭장 속에는 암탁이
손님: 꼬끼요. 꼬끼요.
DJ: 부뚜막에는 고양이
손님: 냐~옹, 냐~옹
DJ: 석쇠 위에는 고등어가
손님: %$#*

DJ: 아 그것도 몰라요. 대신 불러봐요
손님: 석쇠 위에는 고등어가?
DJ: 앗 뜨거, 돌아 눠야지. 앗 뜨거, 돌아 눠야지
손님들: (폭소)
독자들: (기립박수)

다시 다른 손님을 불러서 같은 게임을 진행한다.

DJ: 닭장 속에는 암탁이
손님: 꼬끼요. 꼬끼요.
DJ: 부뚜막에는 고양이
손님: 냐~옹, 냐~옹
DJ: 도살장에는 암소가
손님: 음메~~~, 음메~~~
DJ: 이 양반 미쳤나. 도살장에 간 소에 왜 그렇게 울어요. 대신 불러봐요?

손님: 도살장에는 암소가?
DJ: (목을 한켠으로 틀며, 독살 스런 표정을 지은 뒤)
DJ: 죽여봐. 이새끼야. 죽여봐.
손님들: 또 폭소

이런 게임을 보다가 피곤에해서 다시 친구 집에 가서 잤다. 술을 이렇게 마셨으니 저 녀석 내일 아침에 죽을 것이라는 친구들의 희희낙낙 거림을 뒤로한채.

다음날 오전 6시.

눈을 떴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열병을 앓고 난 뒤, 시원한 새벽 바람을 마시며, 그 차거운 공기를 폐 깊숙히 들여마셨을 때 그런 느낌이었다. 자는 놈덜을 모조리 깨우고 동네 한 바퀴를 나는 듯이 달렸다.

Continue: 맥주 2,0000CC를 마시게 된 사연...

홉, 되, 말

홉과 되는 부피를 재는 단위였다. 1홉은 한 줌의 양, 되는 홉의 10배, 말은 되의 열배가 되는 양이다. 소주병은 보통 2홉, 4홉과 됫병으로 구분했었다. 2홉이 현재 우리가 접하는 일반적인 소주병이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말술'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말' 즉 되의 열배를 마시는 사람 또는 술을 의미한다.

관련 글타래


  1. 대학교 때 일이다. 작은 수첩에 그날 발생한 일을 간단히 적어놨다. 다음해 작년에 무슨일을 했는지 궁금해 수첩을 뒤졌다. 365중 314일에 술마신 얘기가 적혀있었다. 문제는 지금도 이렇다는 점이다. 
  2. 허영만의 타짜를 본 사람은 알 수 있지만 당시 최고의 도박은 섯다였다. 아울러 나 역시 밑장 보기, 밑장 빼기, 패섞기를 조금했다. 6명이 섯다는 하는데 짱땡, 칠땡, 사땡, 일땡이 나왔다. 원래 내게 장땡을 돌리려고 한 패인데 실수로 내에게 일땡이 와 버렸다. 그래서 바로 죽었다. 
  3. 더 자세한 내용은 문화주권 찾기 - 하나을 보기 바란다. 
  4. 종로 화신 백화점 옆에도 마부라는 일인당 천원이면 들어갈 수 있는 나이트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나이트와 똑 같은 정책으로 운영되는 마부가 독산동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