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 3. 588(창녀촌) by 도아
1233?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닐 때 일이다. 군대에 갔다와서 나 보다 조금 늦게 취직을 한 친구 녀석이 찾아왔다. 명함을 받아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니 '588-YXXY'였다. 588이라는 국번이 있는 것도 신기하고 기억하기 쉬운 울타리 번호라
"도아: 야. 전화번호 죽이는데. 그런데 정말 588이라는 국번도 있네."
"친구: 응. 더 죽이는 번호도 있는데 보여줄까?"
588 창녀촌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588
수많은 창녀들이 모여사는 곳
18만 창녀 중에 아다 하나 없으니 너무 너무 원통해
...
(이하 중략, 내용이 조금 야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노래이다. 술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장난처럼 불렀던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를 바꾼 일명 노가바[1]이다. 지금은 허름한 거리로 바꼈지만 청량리동 588은 전국 창녀촌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곳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588의 대부격인 모 인사가 거리를 떠돌던 여자들을 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588의 시초라고 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살고 있던 집은 휘경동(휘경 여고 근처)이었는데 청량리를 갔다온 친구 두 녀석이 "청량리에 가면 무척 예쁜 누나들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것이 588에 대해 들은 첫 기억 이었다.
588 탐방
결국 588을 탐사하기로 하고 친구들과 중량천 뚝방을 따라 청량리로 갔다. 전농동 로터리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르지만 운동 삼아 중량천 뚝방을 타고 가다가 중랑교에서 시조사 쪽으로 가서 다시 청량리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 밤중이라면 불야성을 이루고 있겠지만 간 시간이 점심 무렵이 조금 지난 시점이라 조금 일찍 손님을 받으려는 아가씨들과 여기 저기서 어제의 일로 수다를 떠는 아가씨들이 많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살이 다보이는 옷을 입은 아가씨들을 봤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어린 눈에도 정말 예쁘고 날씬했다.
부끄러운 눈으로 힐끔 힐끔 아가씨들을 처다보면 그러는 모습이 재미있는 듯 손짓하는 아가씨, 조그만 녀석이 별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듯 째려보는 아가씨등 예쁜 여자는 모두 여기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가씨들을 보면서 가고 있던 중 갑자기 웬 아가씨가 튀어나오며 허리띠를 잡는 것이었다.
도아: 왜 그래요?
그녀: 누나가 이뻐해 줄께.
도아: 됐어요?
도아: (불현 듯 친구 놈들이 아가씨한테 붙잡히면 학생이라고 얘기하라는 생각이 났다)
도아: 저 학생인데.
그녀: 학생은 조ㅈ도 없니?
도아: (끌고가서 돈을 뜯어가려는 것으로 잘못알고) 저 돈 없는데요?
그녀: 이구,,, 어제 부터 재수없게.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사히 588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는 588은 피해가는 동네 중 하나가 되었다. 한참 뒤 588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지만 돈으로 여자를 산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피해다녔다.
1233?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다닐 때 일이다. 군대에 갔다와서 나 보다 조금 늦게 취직을 한 친구 녀석이 찾아왔다. 명함을 받아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니 '588-YXXY'였다. 588이라는 국번이 있는 것도 신기하고 기억하기 쉬운 울타리 번호라
도아: 야. 전화번호 죽이는데. 그런데 정말 588이라는 국번도 있네.
친구: 응. 더 죽이는 번호도 있는데 보여줄까?
녀석이 건네준 것은 거래처의 명함이었다. 그런데 이 명함의 전화번호를 보고 거의 기절할 뻔했다.
02-588-1233
국번이 588인 것도 신기한데 1233이라니... 한참을 웃고, 이 번호를 사용하는 사람은 588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고, 1233의 의미를 알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집이 장안동이다보니 지금도 가끔은 588 앞을 지나게된다. 예전의 화려함은 온데간데 없고, 초라한 시골 골목처럼 바뀌었다. 일부 아직도 영업하는 집도 있지만 대부분 문을 닫았고, 업종을 전환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한때 588에서 둥기를 해본 친구 녀석의 얘기로는 588의 윤락녀가 모두 납치에 의해 강요된 윤락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윤락을 직업으로 선택한 경우도 많고 독하게 몇 년 하고 자그마한 점포라도 손에 쥐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윤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식한 독재자가 국민을 창녀로 만들 듯, 창녀라는 이름은 무식한 남성들이 만들어낸 수치스런 직함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공창을 두자는 모 의원을 보면 (저런게 지도층이니 이 나라가 잘될리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588, 지금은 단지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된다."
- 요즘도 줄임말이 유행이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도 줄임말이 유행이었다. '노가바'는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의 줄임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