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조선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조선 왕조가 가진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드라마나 식민 사관에 기초한 많은 교과서의 영향이기도 했다.

따라서 비교적 식민 사관의 영향을 덜 받은 고대사, 그것도 3국 시대 이전의 고대사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시절 밤을 새워가며 읽던 책은 전자 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에게는 의외일지 모르지만 단기고사, 규원사화, 한(환)단고기와 같은 책들이었다.

중국을 평정한 치우 천황, 우리나라 최초의 문자였다는 녹도문, 한글의 뿌리가되었다는 가림토, 당시 남들은 들어본적도 없는 역사가 내가 알고있는 역사였다. 요즘은 치우라고 하면 붉은 악마의 휘장에도 나오고 모 작가의 치우천황기도 있으니 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요즘 읽은 책은 조선 왕 독살 사건이다. 매형이 서점을 하고 요즘은 매형 집에서 숙식을 하다보니 매형 집에 굴러다니는 책을 자기전에 읽게 되는데 이렇게 읽은 책이 조선 왕 독살 사건이다.

책 내용 외에 부차적인 정보에도 관심이 많다보니 저자의 약력에도 다소 관심이 갔다.

이덕일 숭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북항일군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단이라는 공간적 한계와 전문연구서라는 매체적 제약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열린 가슴으로 인식한 역사 연구의 성과를 대중과 함께 나누는 작업으로 한국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그가 쓴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는 한국사의 핵심 쟁점들을 명쾌하게 풀어내어 독자들의 폭발적 인기와 더불어 많은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단 저자의 약력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숭실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이었다. 나도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기 때문이다. 조선의 역사 중에서 '유독 독살 사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었다.

  1. 대윤과 소윤,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제12대 인종) - 이질 증세와 주다례
  2.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속에서 (제14대 선조) -중풍과 찹쌀떡
  3. 현실과 명분의 와중에서(소현세자) - 학질과 의관 이형익
  4. 사라진 북벌의 꿈(제17대 효종) - 종기와 어의 신가귀의 산침
  5. 예송시대에 가려진 죽음(제18대 현종) - 복통과 뜸 치료
  6. 이복형제의 비극(제20대 경종) - 게장과 생감 그리고 인삼차
  7. 개혁군주의 좌절(제22대 정조) - 홧병과 연훈방
  8.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군주(제26대 고종) - 해외 망명 계획과 식혜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왕 독살사건은 조선의 왕 중 독살설에 휘말려 있는 총 8왕의 독살사건[1]을 다루고 있다. 정조의 독살 설이야 워낙 유명한 얘기이고 그 이외의 왕들에 대한 독살설 역시 아주 생소한 얘기는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고종에대한 평가였다. 고종이라고 하면 치마폭에 휩싸인 무능한 군주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고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처럼 무능한 군주가 아니라 정치적 수완이 상당하며, 정국에 대한 인식이 뛰어난 군주로 그려지고 있었다(물론 격동기를 살아가기에는 그 한계가 분명한 군주였다). 고종의 독살설은 이미 망한 조선을 구하기위해 고종이 중국으로의 망명을 계획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정도전이 꿈궜던 사대부의 나라 조선은 순종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정도전의 꿈처럼 조선은 기존의 어느 왕조와도 다른 나라였다. 신권과 왕권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왕권이 강화되면 신권이 약해지고, 신권이 강해지면 왕권이 약해지는 그런 나라였다.

역사에서 가정을 논하는 자는 바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만약 정조가 그렇게 일찍 죽지 않았다'면이었다. 조선 왕 독살사건은 독자를 잠시 잠깐씩 바보로 만드는,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독자의 유쾌한 상상을 자극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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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덕일의 공은 '역사를 대중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정도다. '조선 왕 독살 사건' 중 독살을 의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례는 소현 세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