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짜리의 첫 시, 단풍잎과 빨간색 by 도아
감수성이 풍부한 다예
다예는 둘째다. 또 왼손잡이다. 이렇다 보니 첫째와는 다른 점이 많다. 잔머리를 잘 굴리고 눈치가 빠르다. 반면에 왼손잡이라서 그런지 감수성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좋다. 오늘 소개하는 시는 다예가 쓴 첫시다. 그런데 생각 보다 시를 잘 썼다. '조용한 가을'이나 '시끄러운 여름'이라는 표현은 의외로 시적이다.
다예의 첫시
단풍입이 빨갔다.
빨간 것이 단풍잎이면 빨갔게 물드린 산과 나무들
불처럼 빨간 단풍잎이 조용한 가을을 보낸다고
시끄러운 여름 단풍잎이 빨개서 가슴이 불타 오르는 것 갔다.
빨간 풍경이 푸른 풍경 보단 아름답다.
푸른 풍경도 좋지만 빨갛케 물드린 경치가 빨갔다.
그래서 그 푸른 경치가 빨간 경치로 바뀌고
초록색인 단풍잎이 빨간 단풍잎으로 바뀐개 꼭 마술 갔다.
그렇지만 빨간 단풍잎이 마치 하늘에서 떠러지는 것갔다.
그래서 하늘에 네린 빨간 잎이 단풍잎이라면
온세상이 빨간색 나라가 될 것이다.
아직 맞춤법을 잘 몰라 여기 저기 오타가 눈에 띄지만 표현은 상당히 시적이다. '조용한 가을'이나 '시끄러운 여름'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다예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다. 그러나 아직 7살이다. 1월생이라 조금 일찍 입학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조금 의문이었다. 다예는 나이에 비해 말을 잘하고 눈치가 빠르다. 또 잔머리를 아주 잘 굴린다. 벌을 주면 큰 아이는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눈물을 흘리며 고지식하게 벌을 선다. 그런데 다예는 벌주는 사람만 사라지면 이내 딴 짓을 한다. 이런 잔머리라면 학교 생활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조기입학 하기 전 상담한 유치원 선생님도 조기입학해도 잘 적응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제 다예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거의 1년이 다되어 간다. 얼굴이 작아 몸도 작아 보이는 다예. 과연 얼마나 잘 적응할까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잘 적응한다. 선생님과 다른 아이의 학부모에 따르면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에 인기도 좋다고 한다. 그런데 '다예는 공부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큰 아이는 무엇을 해두라고 하면 알아서 한다. 그러나 다예는 혼나면서도 끝까지 안하려고 든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이 엄마가 빨간펜을 하라고 시켰다.
하기 싫은 녀석은 마지못해 눈물을 펑펑 흘리며 빨간펜을 풀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울면서 안하려고 하던 문제 풀이를 아주 빠르게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제는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도 익숙한 듯 글을 쓰는 속도도 빨랐다. 아이 엄마는 "다예가 수학을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 1학년 수학을 푸는 속도도 아주 빨랐다. 생각하지 않고 답을 쓰는 듯했다. 여기에 국어 실력은 더 좋았다. 본문이 꽤 긴편인데 초등학생이 읽는 속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리 읽고 풀었다. 결국 국어와 수학 문제를 푸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여분에 불과했다.
아무튼 이렇게 문제를 푸는 다예가 너무 신기해서 아이 엄마에게 이야기하니 아이 엄마의 반응은 조금 시큰둥하다. "빨리 풀면 뭐해, 맞아야지". 혹시나 싶어 다예가 푼 문제를 들고 답을 확인해 보니 국어/수학을 합쳐 하나가 틀렸다. 우영이는 알면서 실수하는 문제도 많은데 다예는 이런 실수도 별로 없었다. 아무튼 조금 의외였다. 왼손 잡이인 다예는 그림과 글에는 재능이 있다. 반면에 계산은 조금 느리다. 그런데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수학문제 역시 척척 푸는 것이 아무래도 신기했다.
자존심 덩어리 다예
다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하다. 따라서 설사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누가 가르쳐 주면 상당히 싫어한다. 따라서 다예 공부를 봐줄 때는 다예가 잘 하지 못한다고 섣부르게 알려 주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다예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다예 스스로 모른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예가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공부 그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모른다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공부든 숙제든 먼저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의외로 일단 시작하면 상당히 잘한다. 어제도 비슷하다. 어제 숙제는 원고지에 가을에 대한 시를 써오는 것 같았다. 아이 엄마가 원고지를 가져다 주었지만 다예는 숙제를 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 엄마가 몇번씩 신경질을 내고 엄마의 등쌀에 못이며 마지못해 쓴 시가 오늘 소개하는 단풍잎과 빨간색이다. 그런데 시를 보니 의외로 상당히 잘쓴다. 또 지우개로 지우고 쓰고를 반복하지만 쓰는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여기 저기 맞춤법이 틀린 곳이 보인다. 그러나 글은 상당히 시적이다. 특히 "불처럼 빨간 단풍잎이 '조용한 가을'을 보낸다"는 표현이나 "'시끄러운 여름' 단풍잎이 빨개서 가슴이 불타 오르는 것 갔다"는 표현은 조금 의외였다. 보통 아이들은 직설적인 표현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왼손잡이라서 그런지 둘째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족 누구도 가지지 못한 감성을 다예는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공부에 신경쓰지 않는 다예
얼마 전 다예가 성적표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성적이 상당히 좋다. 또 좋은 성적에 다예도 한껏 고무되어 있다.
얼마 전 아이 엄마가 초롱반 선생님(방과후 수업)을 만난 이야기들 들려주었다. 시험을 보는데 "다예가 문제의 절반도 풀지 않고 시험지를 냈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 보니 시험 시간에 딴짓을 하다 시험 문제를 못푼 것이다. 이런 상황이면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다예를 앉혀 두고 나머지를 풀게했다. 그런데 잠깐 사이 다예가 모든 문제를 다 풀었다는 것이다. 초롱반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 모두 처음에는 다예가 조금 부족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다예가 "머리가 좋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시험을 볼 때도 딴짓을 많이 한다. 수업 시간에도 비슷하기 때문에 "다예 담임 선생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다예의 담임 선생님도 "다예가 똑똑하다"고 한다. 시험을 엉터리로 봐서 처음에는 성적이 좋지 않지만 마음먹고 시험을 보면 성적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성적이 좋은 덕에 학교에서 다예의 나이가 밝혀진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다예는 나이가 7살로 어린데 공부도 잘한다"고 한 덕분이다.
조숙한 다예
처음에는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휴대폰을 들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예는 휴대폰을 들고 무척 열심히 무엇인가 작업을 했다. 그리고 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요즘 아이들이 조숙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표현이 그렇다. 아이 엄마와도 잘 주고 받지 않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 문자는 내가 보낸 문자에 대한 답 문자였다. 그런데 휴대폰을 사용한지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 갖은 이모티콘을 다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