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인 우영이가 태어난 것은 2000년이다. 원래 예정일 보다 한 일주일 정도 일찍 태어나 2000년 8월에 태어났다. 첫 아이라서 그런지 우엉맘과 신경을 많이 썼다. 조금만 이상하면 병원에 가고 별일이 아닌데 헐레벌떡 뛰어 오는 우리 부부를 보고 의사는 항상 "첫 아이시죠?"를 되 묻곤 했다. 첫 아이인 우영이는 어렸을 때 '예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길가다 보면 우영이의 손을 잡고 따로 오는 여고생, 아이가 예쁘다며 사진찍는 아가씨들, 우영이 사진을 구해 아는 언니에게 주는 육아실 선생님[1]등등.

언제 걸을까 싶었던 녀석은 인천으로 이사가자 걸어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다. 2002년에 인천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나이는 두세살 정도 됐을 때였던 것 같다. 삼산동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이때부터 걸어가겠다고 졸랐다. 그래서 결국 삼산동 지하철역에서 이전에 살던 삼보 아파트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큰 아이인 우영이는 쑥쑥 자랐지만 둘째는 생기지 않았다. 우엉맘이 처녀 때 물혹 수술을 했고 이때 나팔관 하나를 제거했다고 한다. 따라서 첫 아이도 걱정을 많이 한 상태였다.

둘째가 늦어지자 친가와 처가 모두 에서 둘째에 대한 압박이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나 역시 바라던 둘째는 생기지 않았다. 가지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니고 또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가 더 생기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튼 계속해서 아이가 생기지 않자 우엉맘은 둘째 갖는 것을 포기하고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엉맘의 몸매는 점점 더 처녀 시절 몸매에 가까워 졌다.

우엉맘: 오빠, 이러다 재수없게 임신하는 것 아냐?

기껏 살을 뺏는데 이때 아이가 들어서면 다이어트가 쪽나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한 소리였다. '재수없다'는 말에 삼신할미가 열이 받은 듯 바로 아이가 들어섰다. 이 아이가 바로 둘째 다예다. 다이어트를 해서 몸 상태가 좋아지고, 또 둘째를 포기함으로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에 들어선 아이이다. 아무튼 이렇게 엄마의 다이어트를 방해하고 들어선 다예의 예정일은 우리 혼인 기념일 다음 날이었다.

아이가 들어서자 우엉맘은 인천 지역에서 제왕절개 수술 비율이 가장 낮은 산부인과를 찾았다. 이런 산부인과를 찾은 이유는 상당히 많은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 보다는 제왕절개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흘러 둘째 예정일에 다가왔다. 그리고 산부인과를 다녀온 우엉맘은 평상시와는 달리 밥을 먹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막을 들어봤더니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3Kg도 안되고 예정일이 두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예정일이 거의 다됐지만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안했다. 산부인과에서 예정일까지 소식이 없으면 일단 병원에 와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일단 예정일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혼인 기념일 새벽. 우엉맘이 급하게 나를 깨웠다.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것. 결국 우엉맘과 산부인과로 갔다. 첫 아이는 진통이 온 뒤 두시간 정도 뒤에 낳았기 때문에 둘째도 비슷하게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장모님께 우엉맘을 맡기고 산부인과 1층 로비에서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있는데 장모님께 급하게 연락이 왔다. 벌써 분만실로 들어갔다는 것. 결국 헐레벌떡 분만실로 가니 다예는 이미 머리가 빠져 나오고 어깨까지 빠져 나온 상태였다.

산부인과마다 분만실을 운영하는 방법이 다른데 이 산부인과는 탯줄을 아빠가 자르도록 하는 산부인과 였다. 의사분의 지시대로 탯줄을 잘랐다. 그런데 분만실에서 아이는 완전히 찬밥이었다. 탯줄을 자르고 의사분이 다예의 다리를 잡고 꺼꾸로 들자 입안의 양수를 토해냈다. 그러자 의사분은 다예를 꺼꾸로 든 상태에서 분만실 침대 옆의 작은 침대에 다예를 휙 던져놨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던지는 것 같았다.

또 의사분이 다예를 아이 침대로 옮길 때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신기하게 다예는 울지 않았다. 의사에게 항의할 수도 있지만 분만실에서는 산모가 가장 중요하고 또 심하게 부딪힌 것 같지 않아 그냥 분만실을 나왔다. 분만실 밖에 초조하게 기다리시던 장모님은 왜 아이가 울지 않는지 물어보셨다. 나도 울지 않는 다예가 이상했고 푸르스름한 다예가 걱정이기는 했지만 양수를 토해내는 것을 봤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때 터진 우렁찬 아이 울음소리.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병실로 가니 조금 뒤 우엉맘이 왔고 이어 다예가 강보에 쌓여 왔다. 우영이는 처음 태어났을 때 피부는 조금 쭈글 쭈글 하고 머리는 꼭 화성침공에 나온 외계인같았다. 엄마의 자궁을 통과하며 머리가 눌린 듯 머리 모양이 꼭 꼬깔같았다. 여기에 남들 보다 훨씬 큰 눈을 뜨고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지구에 처음 온 외계인 처럼 보였다. 반면에 다예는 너무 토실 토실했다. 아무리 봐도 막 태어난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고 덩치도 상당히 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주전 "3Kg도 안된다"는 다예는 무려 4Kg이 었다.

자연분만이기 때문에 우엉맘은 다음 날 퇴원을 했다. 그리고 엄마 젖을 좋아해서 무려 네살까지 엄마 젖이 아니면 먹지 않던 우영이는 신기하게 이날 부터 엄마와 떨어져서 자고, 또 젖도 먹지 않았다. 우영이도 어린 마음에 동생이 생기고 엄마를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참고로 우영이는 지금도 아이치고는 동생에게 상당히 양보를 잘하는 편이다.

이렇게 태어난 다예는 며칠 뒤 황달기가 있었다. 원래 엄마 젖을 먹으면 황달기가 나타난다. 따라서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황달기가 심해지는 것을 보고 결국 다예를 병원에 데려갔다. 문제는 이때가 설 연휴 때라 문을 연 병원이 없었다. 결국 인천 시내 곳곳을 수소문해 다예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나니 마음이 좋지 못했다. 3일 정도 뒤에 병원에서 퇴원한 다예는 황달기가 상당히 호전되어 있다.

태어난 지 한달 정도 됐을 때 다예의 사진이다. 보통 백일까지는 토실 토실 살이 찌는데 이때도 살이 꽤 붙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큰 아이에 비해 둘째가 애교가 훨씬 많다. 그 이유는 큰 아이에게 가있는 관심을 빼았야 와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미 큰 아이를 통해 아이의 특성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부모는 어지간하면 반응을 잘 안하기 때문이다. 다예도 이런 것을 아는 듯 울어서 떼쓰는 때는 거의 없었다. 또 울어도 바로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울것처럼 해서 간을 본 뒤 반응이 없으면 조금 참다가 '앙'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타입이었다.

아무튼 다예는 아이 때는 그리 예쁘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보통 여자처럼 생긴 남자 아이가 크면 잘생긴 얼굴이 되고 남자처럼 생긴 여자 아이가 크면 예쁜 얼굴이 된다. 다예도 처음 태어났을 때는 꼭 남자 아이 같았다. 그래서 우영이는 '여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다예는 '남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2]. 따라서 어렸을 때는 예쁜 얼굴로 사람을 혹한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사람을 혹했다.

다예 백일 사진이다. 이때는 상당히 토실 토실하다. 지금도 이 모습이 약간 남아있지만 요즘 사진과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많이 난다.

둘째에 여자라서 그런치 다예는 눈치도 빠르고 애교도 좋다. 집에서는 엄마를 못살게 굴 정도로 떼를 쓰고 이 덕에 크게 혼난적도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다예를 대신 봐준 동네 아주머니들은 다예가 아주 말을 잘듣고 귀여워서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즉, 다예를 떼를 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역시 인천 살 때 일이다. 우엉맘이 친구를 만나러 가려고 하자 다예가 계속해서 떼를 쓰고 있었다. 다예가 좋아하는 "뽀로로를 보여준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엉맘이 문을 열고 나서려고 하자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막고 울고 있었다. 이때 다예를 강제로 끌어 앉고 우엉맘이 나가도록 했다. 그런데 울며 떼를 쓰는 다예. 그러면서 하는 말을 보면 다예가 얼마나 빨리 상황을 파악하는지 알 수 있다.

다예: 엄~~~ 뽀로로!!!

엄마가 나가지 못하도록 엄마를 부르며 울다 문히 닫히자 엄마의 차선책인 "뽀로로를 보여달라"고 한 것이다. 다예가 뽀로로를 무척 좋아한 탓도 있지만 그 만큼 상황 판단이 빠르고 포기가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예는 뽀로로를 아주 좋아한다. 울다가도 뽀로로를 틀어주면 울음을 그친다. 현관앞에 있다가 뽀로로 소리가 나면 뛰어온다. 지금도 우영이 변기에 앉아 뽀로로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출처: 다예 첫돌]

다예는 보행기를 타지 않았다. 칭얼 칭얼 보챌 때 보행기를 태우면 보행기를 밀고 엄마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편하다. 그런데 다예는 보행기에 올려 두면 오히려 싫다고 울었다. 따라서 다예는 대부분 보행기를 타지않고 기어 다녔다. 돌이 다가왔도 여전히 기는 다예를 보며 "저 녀석 돌에는 걸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예는 기다가 바로 섰다. 그것도 돌이 되기 한달 전쯤 서더니 금방 걸어 다녔다. 따라서 돌 때는 상당히 잘 걸었다.

다예는 오빠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보고 따라서 유치원을 다니고 싶어했다. 그러나 아직 어려서 유치원에는 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2006년 충주로 내려온 뒤 또 다예는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당시 네살이라 유치원에 가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다예가 계속 가고 싶어하고 또 1월 생이라 다섯살 반을 보내면 될 것같아 이때부터 다예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보통 아이들은 처음에는 유치원에 가고 싶어하지만 유치원에 며칠 다니면 이내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항상 엄마와 함께 있다가 장시간 엄마와 떨어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이때는 아이가 울든 말든 억지로라도 유치원차에 실어 며칠 보내면 이래 유치원에 적응한다. 우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네살 때 유치원에 보낸 뒤 며칠 뒤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보내지 않을 속셈도 있었다.

그런데 다예는 유치원에 너무 열심히 갔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유치원에 가고 심지어는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까지 유치원에 갔다. 늦잠을 자기 때문에 조금 늦게 일어나 유치원에 늦게 가기는 해도 지금도 매일 매일 유치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유치원에 가기 싫은지 물어보면 항상 답은 '아니'라고 한다.

다예의 첫 재롱잔치 때 찍은 동영상이다.다예의 유치원을 다녀 온 우엉맘이 다예가 유치원에서 "예쁜손", "인사"와 같은 구호를 외치는데 목소리가 너무 우렁차다고 한다.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봤지만 첫번째 국악 공연에서는 다른 아이가 구호를 외쳤다. 다예가 너무 어려서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으로 알았는데 아라비아 공주 복장을 한 다예가 "예쁜손", "인사"를 여성회관이 떠나 갈정도로 크게 외쳤다. [출처: 다예의 재롱잔치]

다예가 커가면서 이제 또 걱정이 하나 생겼다. 다예는 네살 때 다섯살반을 다녔다. 따라서 이대로 진행되면 7살 때 학교에 가야한다. 내가 자랄 때와 달리 초등학교에도 왕따가 많은 세상이라 생일이 빠르다고 해도 선뜻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힘들었다. 학교를 보내지 않는다면 1년을 더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다예는 1년 더 유치원에 다니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결국 유치원 선생님과 상의했다. 유치원 선생님은 다예는 학교에 가도 아주 잘할 것이라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잘한다고 한다. 또 이것 저것 무엇을 하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초등학교에 보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보통 1~2월생이 한해 먼저 학교에 입학하는 제도가 사라진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정확히 이 제도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입학생을을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출생한 사람을 뽑았지만 1월부터 12월 생까지를 뽑는 것으로 바뀐 것 뿐이다. 따라서 입학하기 전해 10월 경에 조기입학 신청을 하면 이전처럼 1~2월 생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며칠 전 다예가 컴퓨터 방으로 찾아 왔다. 유치원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는데 올거냐는 것이다. 가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제 다예의 재롱을 보는 마지막 해라는 생각이 들어 없는 시간을 쪼개 다예 유치원에 다녀왔다. 그런데 항상 작아 보이던 다예는 다른 유치원생들과 함께 서자 의외로 작은 키는 아니었다. 유치원생들이 대부분 다예보다 한살이 많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해도 비교적 큰 키였다. 다만 얼굴이 작아 더 작게 느껴지는 듯했다.

조금 늦게 들어갔다. 그런데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또 작티로 사진을 찍는 중 다른 분이 중간을 가리려고 해서 사진이 조금 흔들린다.

처음에는 남자 아이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이 섞여서 춤을 춘다. 그런데 다예는 공주병 환자라 손부터 예쁘게 보이고 또 예쁘게 추려고 무척 노력한다. 여기서 보면 다예가 같이 춤을 추는 아이 중 다예가 가장 크다.

다예는 안하면 안하고 하면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여기서도 비슷하다. 다른 것은 일절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불고 연주하는데만 열중이다.

전날 작은 음악회에서 해설을 한다고 해서 무슨 이야기인가 싶었다. 이 동영상처럼 두명의 아이들이 해설을 하고 나머지는 춤을 춘 뒤 들어간다. 다예의 해설은 대타로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공연이다. 장구를 치는 다예는 장구에 푹 빠진 것처럼 장구를 친다.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외치는 것을 보면 정말 장구에 빠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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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쁜 아이 사진을 걸어 두면 예쁜 아이가 태어난다는 속설 때문이다. 
  2. 그래서 여자 아이를 '남자냐'고 묻는 질문을 받으면 오히려 좋아하는 것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