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태어나도 가질 수 없는 민족

세계 축구 흐름과 동떨어진 안방 호랑이 한국

차범근호는 월드컵 전까지 주로 약체들과 평가전을 가졌다. 그나마 적수라고는 일본이 전부였다. 당연히 거의 모든 평가전에 승승장구했다. 또 모든 언론은 이런 차범근호를 추켜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아예 16강은 따논 당상인인 것처럼 보도했다.
<사진: 한국 축구 국가대표 마크>

영웅이 태어나도 가질 수 없는 민족

세계의 축구 흐름과는 동떨어진 안방 호랑이. 차범근호는 월드컵 전까지 주로 약체들과 평가전을 가졌다. 그나마 적수라고는 일본이 전부였다. 당연히 거의 모든 평가전에 승승장구했다. 또 모든 언론은 이런 차범근호를 추켜세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아예 16강은 따논 당상인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리고 벌어진 최종 평가전. 월드컵에 떨어진 중국을 불러 들였다. 공한증의 중국을 불러들여 승리한 뒤 기분 좋게 월드컵에 참석하려는 치졸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벌어진 중국과 마지막 평가전. 독기를 품은 중국은 평가전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거친 몸 싸움을 해왔고 이때 황선홍을 비롯한 상당수의 주전 공격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최종 월드컵 결과. 맥시코전 1대 3패, 네덜란드전 0-5패. 결국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이 진행되는 도중 경질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차범근 감독에 대해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언론은 이제 차범근 감독 죽이기 선두에 섰다. 결국 차범근 감독은 모일간지에 이미 기고했던 축구계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인 승부조작에 대해 언급하다 중국으로 쫓겨간다.

이때가 98년이었다. 언론의 이런 마녀사냥에 대해 '차범근, 당신은 영원한 내 영웅입니다'라는 글을 쓰려고 했었다. 물론 결국 못썼다. 그리고 2002년 차범근 감독은 명해설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평생 축구장에 살았고, 또 평생 축구장에 살기를 원한 차범근 감독의 해설자 복귀는 반갑기 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웠다.

16강? 웃기지마!

당시 우리나라 축구의 수준은 절대 월드컵 16강을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축구협회는 장미빛 청사진외에 보여 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축협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국민들에 보여주기 위해 약체와 평가전을 했다. 그리고보잘 것없는 실력으로 16강에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을 가지게 했던 것은 바로 언론이었다. 그 꿈이 잔인하게 무너지던 날, 축협과 언론은 희생양을 찾았다. 그리고 한 축구 영웅을 더 잔인하게 죽여 버렸다. 이 것이 당시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허정무호를 보면 차범근호와 너무 닮아 있다. 과거 히딩크호가 보여 주었던 강한 허리를 이용한 중원의 압박, 쉴새없는 움직임으로 공간을 주지 않는 모습은 요즘 우리나라 축구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다. 98년 차범근호처럼 일단 하프라인을 넘겨 지르고 골문 앞에서 우왕좌왕하다 기회를 놓친다. 여기에 상대의 기습 공격에는 번번히 뚫린다. 2002년 우리나라의 축구가 보여 주었던 빠른 공수전환과 강한 중원압박, 운동장을 종횡으로 누비는 움직임은 현재의 대표팀에서는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런데 히딩크 시절, 히딩크의 한국 이름이 오대영이라며 비아냥을 퍼붓던 언론은 허정무호에 대해서는 갖은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어제 허정무호는 잠비아에 2대 4로 패했다. 아직 고지에 적응되지 않은 탓이라고 한다. 또 이것을 보고 불안한 출발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잠비아는 피파랭킹 84위다. 또 아프리카 월드컵 예선에서 1승 2무 3패의 전적으로 6경기 동안 2골을 넣고 5골을 먹은 팀이다. 물론 이 결과만으로 잠비아를 약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히딩크호의 상대처럼 누구나 강호라고 인정할 수 있는 팀은 아니다.

히딩크의 한국 이름은 오대영?

2001년 한국 대표팀 감독으루 부임한 히딩크는 홍콩 칼스버그컵에서 노르웨이에 2대 3으로 패했다. 또 파라과이에 승부차기로 간신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프랑스에 5대 0으로 패했다. 특이 프랑스는 지단등 주전 멤버가 빠졌고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치루어진 경기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했다. 그러나 충격 받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분명한 실력차'였다. 그리고 이 실력차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히딩크호는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이후 맥시코에 2대 1승, 오스트레일리아에 1대 0승을 했지만 8월 체코와의 원정 평가전에서 또 다시 5대 0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어 2002년 원정 평가전에서 우루과이에 2대 1 패, 미국과 캐나다에 2대 1 패, 쿠바에는 무승부를 기록하는등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리고 2002년 3월 이후 터키와 0대 0 무, 핀란드에 2대 0 승, 코스타리카에 2대 0 승리를 거두었고 스코틀랜드와는 4대 1의 대승을 거둔다. 잉글랜드와는 1대 1 무, 최종 평가전에서는 전년도에 5대 0의 치욕을 안긴 프랑스에 2대 3으로 아깝게 역전패한다. 이때 '히딩크는 한국팀이 이제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음을 당당히 밝힌다'.

히딩크 시절 축구 대표팀의 평가전 성적은 좋지 못하다. 또 여론 역시 아주 좋지 못했다. 체코에 패하자 히딩크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며 국민과 언론은 특유의 마녀 사냥을 시작했다. 그나마 히딩크에 우호적이었던 한겨레신문까지 "히딩크 경질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기사를 올렸다. 히딩크가 아니라 차범근, 허정무였다면 이때 경질됐다.

당시 축협회장이었던 정몽준이 적극 옹호함으로서 경질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몽준이 적극 옹호했는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축협으로서도 이도 저도 못하는 계약 조건 때문에 울며 겨자를 먹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히딩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히딩크가 보여 준 더 큰 가치는 바로 '우리축구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히딩크 이전에 "한국 축구는 체력은 좋은데 기술은 떨어진다"였다. 그러나 히딩크는 정 반대의 평가를 했다.

기술은 좋은데 체력은 떨어진다?

전세계적으로 양발을 자유자제로 구사하는 축구선수는 많지 않다. 제기차기 덕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은 외국 선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발을 자유자제로 구사한다. 이 것 하나만 봐도 한국 축구선수들은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에 체력은 턱없이 떨어진다고 평했다. 90분 축구장을 뛰어다니기 위해서는 힘의 집중과 분배가 필요한데 한국선수들은 열심히 뛰기만 할 뿐 이런 힘의 집중과 분배가 부족하며, 결과적으로 후반이 되면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진 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딩크는 무조건 뛰는 선수가 아니라 기회를 봐서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간을 창조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한국의 월드컵 축구팀에 대한 평가는 인디펜던트지에 실린 출국 전문 컬럼니스트 제임스 로튼의 한국, 겁쟁이 축구를 망각 속으로 밀어내다는 글에 잘 나와 있다.

한국 축구는 근본적으로 공격적이며 대충 차는 긴 볼에 어떤 공간도 허용치 않는다. 그것은 쉴 새 없이 달리기를 요구하며, 따라서 볼을 가진 선수가 늘 패스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식의 축구는 지난 금요일 35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둔한 플레이를 펼친 잉글랜드를 그토록 편안하게 쫓아냈던 10명의 브라질팀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잠비아전 패배가 달가운 이유

축구는 우리나라의 국민스포츠이다. 작년 WBC에서 온 국민들이 열광했다. 그러나 WBC의 열광은 절대 월드컵의 열광에 미치지 못한다. 정확히 어떤 경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연장전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이탈리아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천으로 막 이사했을 때라 아는 사람도 없었다. 열심히 월드컵 축구를 보다 터친 함성.

골인!!! 고올인!!!

아파트가 들썩이는 듯한 느낌, 여기저기서 터지는 대한민국과 차량의 경적소리. 전국이 들썩였다. 정말 한반도 전체를 들었다 놓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구 보다 축구에 더 열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야구보다 먼저 친해진 경기이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장비 없이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 축구다. 그 공 하나에 참 여러 명이 놀았다. 또 과거 은사님이었던 학교 축구 감독님에 따르면 "축구하는 아이들 중 부유한 집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1]. 야구만 해도 야구 장갑과 야구 방망이등 어느 정도 사는 집이 아니면 뒤를 봐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축구가 계속 부진하자 히딩크를 다시 불러오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난 이런 의견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 언론냄비 근성 때문이다. 히딩크가 승승장구할 때는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 용비어천가를 부른다. 그러나 히딩크가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이내 하이에나로 돌변, 히딩크를 역적으로 만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난 히딩크를 영원히 우리축구의 은인으로 기억하고 싶다.

내가 반대한 두번째 이유는 이미 우리축구 역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력은 계단과 비슷하다. 느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순간 한 단계가 올라가 있다. 그리고 또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계속되지만 그때 멈추지 않고 노력하면 또 한 단계가 올라간다[2]. 우리는 이미 월드컵 4강을 경험했다. 국민들의 눈높이도 올라갔다. 또 선수 개개인의 실력도 히딩크 이전 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이제 남은 것은 히딩크가 우리 축구에 던저준 화두만 풀면된다.

선수들의 실력도 나아졌고 이제 세계축구의 흐름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남은 것은 하나 뿐이다. 우리 스스로를 아는 것이다. 우리나라 축구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월드컵까지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된다. '월드컵 축구팀에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공정한 평가다. 승리는 월드컵에서 하면 된다. 프랑스와의 5대 0 패배는 2002년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낳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말하는 냄비 근성

난 냄비 근성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아울러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이야기 하는 냄비 근성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냄비 근성과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냄비 근성은 '쉬 끓고 쉬 식는 특성'을 말한다[3].

그러나 내가 말하는 냄비 근성은 다르다. 덜거덕 덜거덕 쉴 사이없이 시끄럽게 굴다가 밟아 버리면 찌그러져 버리는 특성을 말한다. 바로 우리 언론의 모습이다. 약자는 하이에나 처럼 물어 뜯고 떠들다, 강자가 나타나면 바로 꼬리를 내리고 찌그러지는 하이에나 언론. 난 우리나라 언론이 이런 냄비 근성을 버려야 진짜 언로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련 글타래


  1.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중학교 때이니 벌써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2. 공부도 비슷하다. 
  3. 일본인이 우리 민족을 폄하하기 위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국화만 가지고 비교해도 쉬 끓고 쉬 식는 민족은 일본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