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망하면?

흔히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우리 의식의 틀속에는 '삼성, 대기업과 이건희, 재벌'을 동일시 하는 의식 조작이 수십년간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망해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삼성이 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희가 망하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헌법 위에 '위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건희와 같은 재벌 일가가 망하는 것 뿐이다. 삼성 불매는 삼성이라는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을 우리사회 절대 악인 재벌로 부터 찾아 오자는 운동일 뿐이다.

삼성불매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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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사기당해 수조원의 가치를 가진 회사를 잃고 가정까지 무너진 조성구 대중소기업상생회장(전 얼라이언스 시스템 대표). 10여년간 삼성과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조성구 회장이 이털남에 출연해서 "상생까지는 필요없다. 살생이나 하지 마라!"는 외침은 이 사회에 뿌리 박힌 삼성(재벌)의 악행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생각한다. 조성구 회장이 운영하던 얼라이언스 시스템과 삼성에 어떤 사기를 당했는지에 대한 기사는 세계적인 벤처기업 얼라이언스시스템의 비애에서 읽을 수 있다. 또 이털남의 조성구 특집을 들어 보는 것도 괜찮다.

[이털남: 삼성은 벽이라더라, 조성구의 못다한 이야기], [사진출처: 공정위는 대기업의 방패?]

나는 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치성이고 또 하나는 상품성이다.

나는 삼성 제품 보다는 삼성이라는 기업, 삼성이라는 기업 보다는 그 사주 이건희를 싫어한다. 삼성 제품을 산다는 것은 부정 부패한 또 하나의 권력에 뒷돈을 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성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이 것이 내가 삼성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한 이유이다. 나는 제품의 품질에는 이런 정치성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정관에 이윤추구와 함께 사회환원을 명시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두번째로 내가 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상품성이다. 나는 삼성을 싫어하기 전 부터 삼성 제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써본 삼성 제품 중 내 마음에 든 제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전자제품을 가지고 놀기 좋아했다. 따라서 전자제품을 구매하면 어떤 제품이든 매뉴얼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해 본다. 그런데 신기하게 삼성 제품은 매뉴얼대로 모든 기능이 동작하는 제품이 단 하나도 없었다[1].

되지도 않을 것을 뭐하러 하나?

삼성 불매 운동을 하면 항상 듣는 이야기가 "되지도 않을 것을 뭐하러 하느냐?"는 이야기이다. "대기업 불매 운동의 성공 사례 하나만 들어달라"는 사람도 있다. 틀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내 선배 중에 등산을 아주 싫어하는 선배가 있다. 조그만 야산도 싫어한다. 그토록 산을 싫어하는 이유를 물어 보면 답변은 아주 간단하며 합리적이다.

어차피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

역시 틀리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어차피 쌀걸 뭐하러 먹지?
어치피 죽을 걸 뭐하러 살지?

이 말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라는 논리나 "어차피 죽을 걸 뭐하러 사느냐?"는 논리나 논리상 차이는 별로 없다. 그러나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등산의 논리와는 달리 산다는 것에 대한 논리는 대부분 논리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등산의 논리'에서는 결과만을 보고 있지만 '삶의 논리'는 이미 과정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라고 하는 사람은 등산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등산을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고통 보다는 정상에서 맞보는 희열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내려온다"는 뻔한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오르는 것이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죽는다"는 뻔한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이 더 크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되지도 않을 것을 뭐하러 하냐"는 사람도 똑 같다. 이런 사람치고 사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해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되지도 않을 것 같았던 많은 일들이 소수의 시도와 다수의 노력, 그리고 서로의 행동으로 가능하게 됐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된다', '되지 않는다'는 해보고 난 뒤에 결론을 내려도 늦지 않다.

살아 보지도 않고 "어차피 죽을 걸 뭐하러 사냐"는 사람은 없다. '죽는다'는 뻔한 결과를 알고 있지만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 보다는 산다는 아름다운 투쟁을 하고 있다. 내가 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결과 보다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할 것인가?

나는 386 세대다. 시위 때문에 1년 내내 학교를 쉰 적도 있다[2]. 여의도 철새로 진화한 과 정확히 같은 세대다. 6.10 항쟁이 있던 그때 대학생이었고 다른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짱돌을 전경에게 던지던 그 많은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내가 학생 운동에 직접 참여한적은 없다. 학생운동의 비영속성을 그 현장에서 그대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학생회장정치입문의 지름길이었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 중 학생회장 출신이 상당히 많다.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은 한때 육사를 갔다. 그리고 한때는 학생회장을 했다. 독재권력과 학생운동의 맥이 같아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생운동이 수순한 독재투쟁에서 벗어나 정치권력화 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디던 386 세대 부터다. 아니 그 기원을 따진다면 이미 419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독재권력과 학생운동은 독재와 민주의 투쟁이 아니었다. 신군부가 민중에게서 권력을 찬탈했듯 독재권력에서 권력을 찬탈하려는 운동이 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독재와 싸운 419 세대는 수구라는 이름으로 살아 남았다. 전두환 독재와 싸운 386 세대는 그 수구에 기대려다 몰락했다.

언제까지 할 것인가?

419 세대와 386 세대는 여러 가지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투쟁의 떡 고물을 누구 보다 바랬다는 점, 그리고 그 떡 고물을 누구보다 먼저 먹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떡고물 때문에 누구 보다 먼저 썩었다는 점. 개혁이나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개혁을 주도 하는 세력이 가장 먼저 썩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끝을 내고 그 과일도 내가 먹겠다는 생각.

한 사람이 죽어도 그 정신이 살아 남는다면 언제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역사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이 가지고 있는 해악, 그리고 삼성 구매가 주는 폐해만 알릴 수 있다면 언젠가 삼성이라는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는 날이 올 것[3]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내가 아니면 내 자식, 내 자식이 아니면 내 손자라도 그 과일을 먹을 수 있으면 된다.

삼성 제품 사용자를 비난하나?

나는 386 세대다. 그래서 386 세대가 보여준 조직력과 과격함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과격함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력도 과격함도 아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리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행하는 실천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세상을 향해 소리치기 보다는 묵묵히 행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삼성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 입장도 마찬가지다. 나와 함께 해주면 더 없이 고맙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그 사람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아울러 그 사람이 삼성 제품을 광고하고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들 역시 삼성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변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삼성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수십년에 걸친 세뇌 때문이다.

정치권력도 언론권력도 어쩌지 못하는 삼성이다. 이 삼성이 수없이 많은 돈을 들여 온 국민을 수십년간 세뇌시켜왔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걸린 플랭카드를 보며 "우리 주석님 사진을 어떻게 길거리에 걸수 있냐"며 흐느꼈던 북한 응원단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 것이 세뇌가 가진 무서움이다.

이런 세뇌는 폭력이나 강압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이런 세뇌를 푸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세뇌된 허상과 현실의 차이를 끊임없이 알려 주면 된다. 물론 처음에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 차이를 인식시켜 주면 결국 돌아 선다. 이 것이 내가 삼성 제품 사용자를 대하는 자세다.

이씨삼성은 무너질까?

내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올린 것은 2004년 부터다. 그러나 홈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부터다. 홈페이지에는 주로 컴퓨터에 관한 글을 올렸지만 가끔 한마디라는 코너를 통해 내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이때 올린 글로 시계 파는 아저씨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삼성의 AS 방식을 비꼰 글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쓸 당시만 해도 삼성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이런 글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QAOS.com의 회원이지만 삼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블로그의 글은 읽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에는 삼성을 칭찬하는 글 보다는 삼성의 잘못을 지적하는 글이 더 많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이건희 비자금 특검은 뇌물검사와 뇌물판사들에 의해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성과없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이건희 비자금 폭로는 이씨삼성이라는 굳건한 성의 해자를 메우고, 성벽의 일부를 부수는데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정치권력도 언론권력도 손대지 못했던 절대권력의 한축이 무너졌다고 본다. 이씨삼성의 영화는 절대 이재용에게까지 이어질 수 없다.

관련 글타래


  1. 이 부분은 "내가 사용해 본 삼성 제품"이라는 글로 따로 올릴 생각이다. 
  2. 지금 기억으로 1학기 중간고사 전부터 학내시위로 수업거부가 있었다. 2학기는 무능교수 추출 때문에 학기내내 수업거부를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교수라는 직종은 상당히 편한 직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3. 이전의 내글에도 있지만 삼성이 망해도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또 더 중요한 것은 망하는 것은 삼성이 아니라 이건희다.